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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Aug 26. 2020

평범하고 당연했던 날들의 소중함

플라시보 효과에 감사하며


원래 툭하면 편도선이 부었고 감기에 걸리면 후두염에서 시작해 후두염으로 끝나곤 했기에 목이 아픈 건 나에게 익숙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목이 살살 아프기 시작한지 2주쯤 지나자 불쑬불쑥 불안이 올라왔다.

'혹시..... 설마..... 아니겠지?'

어떤 날은 목이 따끔거리기도 했다. 열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기침도 전혀 나지 않았으며, 사실은 목이 많이 아픈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자꾸만 마음이 불편해졌다. 괜히 종합감기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도 했고 프로폴리스도 열심히 챙겨먹었지만, 침 삼키기 조금 불편할 정도의 약한 목 통증은 계속되었다.

결국 KF94 마스크를 쓰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겨우 이 정도로 병원에 왔냐는 표정이셨지만, 혹시 목이 더 아프게 되면 먹으라며 약을 5일치나 처방해주셨다.


플라시보 효과는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이비인후과에서 받아온 5일치 약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다음 날 아침, 목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약을 한 번도 먹지 않고 그냥 책상 위에 올려놓았을 뿐인데, 목 아픈 게 씻은 듯이 나아버린 것이다.




이런 세상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올 겨울엔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더랬다. 우리나라와 대만이 면역여권을 협의 중이라는 뉴스를 보고는 적어도 안전한 대만은 갈 수 있겠지 기대도 되었다.

지난 1월에는 치앙마이의 골목을 걷고 있었고, 작년 7월에는 스위스의 알프스를 걷고 있었으며, 재작년 겨울에는 지구 반대편 쿠바와 멕시코에서 낯선 땅을 매일 걸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휴가 때는 당연히 여행을 가는 거라 생각했고, 그 꿈같은 휴가를 기대하며 틈만 나면 싼 항공권을 검색하느라 인터넷을 들락거렸다. 내년 여름엔 비싼 스위스 대신 이탈리아 돌로미티에 가고, 짧은 연휴엔 러시아에 가고, 겨울엔 대만 한 달 살기도 해보자 신나게 계획을 세웠다. 여행 비용을 어떻게 모을까, 여행은 누구랑 갈까를 고민하긴 했어도 이렇게 갈 수 없는 세상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현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건지 미처 몰랐다.

카페에서 친구랑 소소한 얘기로 수다를 즐기고 주말엔 친구와 재미있는 공연을 보러 가며, 배우고 싶은 강좌를 신청해서 들을 수 있는 일상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때로는 헐렁하게 때로는 긴밀하게 조이는 인간관계의 끈을 붙잡고 사는 삶이 행복하면서도 쉽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런 감정의 실랑이가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근심이야말로 행복하면서도 무탈한 삶의 증거라는 걸 이제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우울이나 불안이 높아지고 있으며 어느새 우리는 '혼자'에 익숙해지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마치 '라떼는 말야'처럼 코로나 이전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곤 한다.

한편으로는 예전에 어르신들이 '60세 이후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하셨던 말씀의 의미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코로나 이후의 삶은 덤으로 사는 인생일 것 같은 기분이랄까.  




쇼핑몰을 찾아다니며 마스크를 넉넉하게 쟁여놓아야 마음이 편해지는 강박.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고 가는 곳마다 소독제를 찾는 유난스러움.

조금만 목이 아파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열부터 재게 되는 과도한 불안.

주위에서 기침 소리만 들려도 흠칫 놀라 쳐다보게 되는 예민함.


이런 불편한 감정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들이 내 안에 깊이 체득되기 전에 사라질 수 있을까.




시간이 있을 때는 친구를 만나고 조금 긴 시간이 주어지면 가족이나 친구와 여행을 떠나는 일상의 휴식.

건강을 위해 헬스나 필라테스를 하고, 감성을 위해 멋진 공연을 보고, 지성을 위해 수업을 찾아서 듣는 일상의 에너지.

마스크를 벗고 누구와도 경계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즐거움.

주위에서 기침을 해도 무심할 수 있는 넉넉한 여유.

그저 소소한 근심으로 채워지는 일상.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했던 날들의 소중함을 그것들이 사라진 지금에서야 절감하면서, 그럼에도 오늘 이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되뇌어본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5일치 약 덕분에 목은 여전히 아프지 않다. 놀라운 플라시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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