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랜 꿈이었던 브런치를 시작했다.
그동안 브런치 해보고 싶다 노래를 하면서도 막상 현실은 네이버 블로그 하나 운영하는 것만으로 허덕였는데, 오랜 짐이었던 논문을 끝내고 책 개정판도 마무리하고 나니 이젠 비로소 브런치를 시작해볼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다.
글 두 편을 써놓고 떨리는 마음으로 작가 지망을 클릭했다. 다행히 결과는 합격.
운좋게 합격까지 했으니 지금부터는 마음 속에 묵혀두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일필휘지의 기세로 써내려가기만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단 프로필을 쓰는 것도 고민, 매거진 이름을 정하는 것도 고민, url 주소를 쓰는 것도 고민, 키워드를 정하는 것도 고민.... 뭐 하나 쉽게 정해지는 게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나름 인기 많은 브런치들을 좀 둘러보니 다들 매거진 제목은 어찌나 멋지던지, 프로필은 또 얼마나 임팩트 있던지, 글은 또 어찌나 잘 쓰시던지... 시작도 하기 전에 주눅이 들면서 자신감이 급하락했다. 그렇게 한참을 꾸물대면서 프로필과 매거진 등 기초적인 작업을 겨우 끝냈다.
무슨 글부터 쓰지?
허접하나마 대충 집도 꾸몄으니 이젠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해야 하는데, 막상 페이지를 열자 머리가 하얘졌다. 오랫동안 운영해온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늘 쓰고 싶은 글이 넘쳐났는데, 여행 포스팅 외에 마음 이야기를 좀 더 집중해서 쓰고 싶은 간절함으로 이곳 브런치까지 왔는데, 정작 공간이 생기니 무슨 글부터 써야 할지 머리 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뒤죽박죽 엉키는 느낌이었다. 블로그에서는 큰 고민 없이 쓱쓱 잘 써지던 글이 브런치에 오고 나니 단 한 줄 쓰기도 쉽지 않았다. 도대체 왜?
곰곰히 생각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갑자기 글을 쓸 수 없게 만들었을까...
잘 하고 싶은 마음
그렇다. 잘 하고 싶었나보다. 임팩트 있는 글을 써서 짠 하고 한방에 주목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위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모인 브런치이니 나도 뭔가 제대로 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했을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이미 내 글을 좋아해주시는 오랜 이웃들이 적지 않으므로 그곳에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전망이 있는데, 여긴 그런 안전망 따위는 없는 낯선 곳이니 잔뜩 긴장도 되었다.
이처럼 잘 하고 싶은 마음, 낯선 곳에서의 긴장이 내 마음을, 내 손을 멈추게 만들었다.
힘을 빼고 천천히 한 걸음씩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걸. 뭘 하든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공감 받고 싶어서 예민하게 날을 세우고 있는 게 나란 사람인걸. 그러니 그저 힘을 빼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만든 이 한계를 넘기 위해 애를 써보는 수밖에. 시간이 지나 이 공간이 비로소 익숙해질 때쯤이면 아마 이곳에도 심리적 안전망이 생기고, 나 역시도 조금은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그때까진 잘 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글을 쓰며 힘 빼는 연습을 부단히 해보자. 언젠가는 이곳이 나의 가장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