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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Jan 05. 2020

시간의 구분선이 없었더라면

어제, 목감기 증상으로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지난번에 같은 증상으로 처방 받았던 약이 그닥 효과가 없었던 기억 때문에 썩 내키진 않았지만, 늦게까지 진료를 하는 병원이 여기밖에 없었기에 도리가 없었다. 

진료실에 들어가 증상을 얘기한 끝에 덧붙였다. 


- 지난 번 처방해주셨던 약이 별 효과가 없었어요. 이번엔 좀 다르게 처방해주세요.

- 지난번이요? 음.... 작년 11월에 오셨었는데요???


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 당황함을 아마 의사 선생님도 눈치채셨을 것이다. 기껏해야 두세 달 전이라고 생각했는데, 1년 전이라니.... 내 기억 속의 시간은 대체 어떤 속도로 지나가고 있는 걸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더디 간다고 투덜댔던 어린 시절의 그 체감 속도가 여전히 생생한데, 어느새 난 시간의 속도를 채 따라잡지 못해 휘청거리기 일쑤인 어른이 되어버렸다. 친구들과 만나면 늘 노후대책과 건강 이야기만 하는 빼박 중년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려 1년 전에 다녀온 병원을 몇 달 전에 다녀왔다 착각할 만큼 시간의 체감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19년도 그렇게 휘리릭 지나버렸다. 


그래도 2019년은 나에겐 참 의미있는 해였다. 

매년 초마다 올해는 꼭 논문을 쓰겠노라 덧없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던, 내 오랜 짐이었던 학위논문을 드디어 끝내면서 공부와는 굿바이를 고했고, 논문이 끝나자마자 폭풍 작업에 돌입하여 '디스 이즈 타이완' 4차 개정판도 무사히 출간되었다. 덕분에 꽤나 가벼운 마음으로 2020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시간의 구분선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뿌듯했든지, 망쳐버렸든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니 말이다. 만약 시간의 구분선조차 없었더라면 점점 가속도가 붙는 시간의 체감 속도 앞에 쉬는 시간도 없이 정신 못차리고 끌려갔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우왕좌왕 하다가 문득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만나게 되겠지....

하지만, 시간의 구분선 덕분에 우리는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볼 수도 있고, 이전의 허접한 나를 버리고 다시 새롭게 리셋할 기회도 주어지며 오롯이 '지금 여기에서 Here&Now'에 집중할 수도 있으니, 이야말로 우리를 한뼘 더 성장시켜주는 고마운 존재임이 틀림없다.


2020년이라는 구분선 앞에 서니 새삼 마음이 경건(?)해진다. 올 한해 진짜 잘 살아봐야겠다 다짐도 하게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새해에 이런 저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곤 했지만, 이젠 거창한 계획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하게, 그리고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바빠도 여유롭게 내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고 싶다. 부디 환경에 기죽지 않고, 내 마음을 잘 돌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며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2020년, 우리 올 한해도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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