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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Nov 09. 2020

노트가 사라졌다

대체 그 교재 노트는 어디로 갔을까?


3시간씩 5회, 총 15시간동안 진행된 상담 관련 연수였다.

참여자가 10여 명에 불과한 소규모 연수이긴 했다. 그러나 인근 학교에서 상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교사, 강사, 상담사 등 참여하 구성원도 다양했고, 회차마다 온오프라인을 달리하여 이루어지는 블렌딩 연수였기에 연수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건 공이 꽤 많이 들어갔다.


다행히 연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어느새 연수 마지막 날.

마지막날 연수는 DBT(변증법적 인지행동치료) 오프라인 실습으로 내가 진행을 맡았다.

지난 회기 연수 때 배운 DBT 강의를 복습해보는 시간이었는데, 마침 내가 DBT 기술훈련집단 과정을 이수했기에 실습 리더를 맡게 된 것이었다.

DBT 과정을 수료했다고는 하나, 나 역시도 DBT 리더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참고하면서 진행하기 위해 DBT 훈련 과정에서 공부했던 교재를 챙겨갔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책이 아닌, 기술훈련집단 과정을 이수할 때 공부했던 워크숍 교재였다. 물론 거기엔 내가 인간복사기처럼 받아적은 필기 내용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한 마디로 나의 노력이 담긴, 나만의 필살기 노트인 셈이었다.


그 노트 덕분에 연수 진행을 무사히 끝냈고, 마지막으로 간단한 연수평가회를 하기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서둘러 이동을 하느라 가져갔던 교재 노트는 그냥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간담회 장소로 이동하면서 교재를 테이블 위에 두고온 게 생각났지만, 어차피 연수 장소가 1층이었고 우리 교무실이 3층이니 다음날 출근길에 챙겨서 올라가면 되겠다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들러서 간사 선생님께 어제 두고 간 DBT 교재를 찾으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간사 선생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제 내가 챙겨간 게 아니었냐고 되물으셨다. 테이블 위에는 어제 남은 실습지 몇 장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단다.


머리가 하얘졌다.

혹시 내가 챙겼는데 기억을 못하나 싶어서 가방을 뒤져보았으나 교재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어제 이동하면서 바로 교재를 두고 온 게 생각났으니 내가 챙기고도 잊었을 리는 만무했다.

혹시 밤 사이에 누가 다녀갔나 싶어서 물어보았으나 어제 연수가 끝나자마자 바로 문을 잠궜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을 가능성도 희박하단다.

설령 누군가 들어왔다 해도 그 교재를 가져갔을 리는 없었다. 언뜻 보기엔 전혀 특별할 게 없는, 그냥 스프링 제본으로 된 노트였으니 말이다.

  



고민 끝에 그날 연수에 참가한 분들께 긴 메시지를 보냈다.

그 교재 노트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저의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 저에겐 너무너무 중요한 책이니 혹시라도 가방을 챙기다가 실수로 휩쓸려 들어간 분이 있다면 꼭 연락을 달라고 간절하게 마음을 다해 메시지를 썼다.


하지만 답신은 오지 않았다.

연수 장소를 샅샅이 뒤지고 또 뒤졌지만, 교재 노트는 없었다.

혹시 내가 챙겨놓고 깜박 잊은 건 아닐까 싶어서 직장, 집, 내 가방까지 찾고 찾고 또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나의 모든 공부 내용이 깨알같이 기록되어 있는 노트는 그렇게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노트를 되찾으려면 5주에 걸쳐 공부했던 DBT 훈련집단 과정에 다시 참여하여 다시 인간 복사기처럼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일주일이 지난 후, 다시 한층 더 간절하게 메시지를 보냈으나 끝내 답은 오지 않았다.




대체 그 노트는 어디로 갔을까?

정말 연수 참가자 중 한 명이 가져갔을까?

아직까지 난 그렇게 믿고 싶진 않다. 설령 누군가 가져갔다 해도 실수로 휩쓸려 들어갔을 거라고 믿고 싶다.

물론 내가 무의식적으로 챙겨놓고는 어딘가에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누군가가 다른 노트로 착각하여 가져갔거나 테이블 위 쓰레기를 치우면서 휩쓸려 버려졌을 수도 있다.

가능성은 여러 가지이나 결론은 하나, 노트를 결국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 노트만 생각하면 심장이 조여들만큼 속이 상한다. DBT를 공부하는 내내 정말 열심히 필기하고 정리했는데, 그 모든 시간과 노력을 통째로 도둑맞은 기분이 든다.


물론 앞으로 세상 살면서 더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을 텐데 그깟 노트 하나 어버린 게 그렇게 속상할 일이냐고, 그 정도는 그냥 쿨하게 넘길 수 있지 않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잃어버린 노트를 떠올리면 숨이 턱 막힐 것처럼 속상하고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그 노트 때문에 밥을 못 먹거나 잠이 안 오는 수준까지는 아니니 말이다.  

그저 이번 일이 장차 살면서 만날 수도 있을 더 큰 사건에 대한 예방주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는 아무리 안전한 장소라도 소중한 물건을 두고 나오는 어리석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겠다 다짐해본다.


비록 그 댓가가 다소 아프긴 하지만, 이로써 나는 또 한 번의 위기 대처 면역력을 갖게 되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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