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서희 Nov 16. 2020

내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

예민 만렙 1인의 친구관계 분석기


얼마 전, 즐겨 찾는 카페에서 게시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친구 많으세요?"였다.

어느 날 문득 돌이켜 보니 마음을 나눌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것 같다면서 다들 그런 건지, 아니면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올린 지 얼마 안 된 글이었음에도 이미 꽤 많은 덧글이 달려있었다. 놀라운 건 덧글의 80% 이상이 "나도 친구 없다"는 내용이었다는 사실. 자주 만나는 친구가 있긴 하지만, 그 친구랑 정말 친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맘 편히 만날 수 있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 혼술 혼밥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등, 나도 친구가 없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친구'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의 깊은 마음속 얘기까지 다 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내 편이 되어줄 거라 확신할 수 있으며, 아무 때나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친구'라고 한다면 나 역시도 친구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내 깊은 마음속 얘기를 할 땐 조심스럽고, 어떤 상황에서든 내 편이 되어주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만나고 싶을 땐 미리 연락을 해서 약속을 정하고 만나니 말이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세태가 변한 건지 몰라도 만나는 친구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거기에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면서 약속 없는 주말도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약속이 없었던 지난 주말, 소파에 앉아 카톡의 친구 목록을 훑어보았다.

오늘 저녁에 만나자 편하게 불러낼 만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문득 조금 외로워졌다.

20, 30대에는 국회의원 출마하느냐는 얘기를 들을 만큼 친구들 만나기 바빴는데 그 친구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난 어느새 이렇게 친구가 줄어들었을까 조금 쓸쓸해졌다.




01. 분명해지는 나의 호불호

예전의 나는 친구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높은 사람이었다.

친구가 나를 조금 서운하게 해도 참았고 친구와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 여겨져도 어떻게든 관계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애를 썼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친구 욕심(?)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젠 코드가 잘 맞지 않는 친구와는 관계를 유지하려 굳이 애쓰지 않게 되었고, 친구가 나를 서운하게 하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 내 마음을 살피게 되었다. 예전에는 모든 친구와 관계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 늘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제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에게만 마음을 다하고 싶어졌다.

내 마음을 궁금해 하지 않는 친구를 애써 붙잡고 싶진 않게 된 것이다.     




02. 분명해지는 친구들의 호불호

내가 밥 한번 먹자 전화를 해도 그는 번번이 상황을 봐서 자신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관계를 딱 끊은 건 아니지만, 연락할 때마다 늘 시큰둥하게 대답하더니 결국 서서히 연락이 뜸해졌다. 그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드러난 갈등이나 의견 대립이 있었던 게 아닌지라 내가 싫어졌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물어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친구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가끔은 이유 없이 까임(?)을 당하기도 한다.

물론 이유가 없다기보다는 이유를 모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만약 그게 관계를 끊을 만큼 크다면 내가 기꺼이 고칠 의향이 있는데, 그걸 물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그냥 어영부영 관계가 끝나버릴 때가 있다.      


한편 나의 말실수나 오지랖으로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미안하다고,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내가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고 사과함으로써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텐데, 나이가 들수록 굳이 이해하거나 용납하려 애쓰지 않는 친구들이 늘어갔다. 보란 듯이 연락이 뜸해지는 친구를 보면 마치 ‘이제 너랑은 만나고 싶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듣는 것 같아 조금 슬퍼지곤 했다.

어쩌면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런 메시지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3. 세상이 변했어.

그렇다. 세상이 달라졌다.

인터넷에 '관태기(관계 권태기)'란 말이 자주 등장하고 친구와 연락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혼밥 혼술을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굳이 인간관계에 시간과 마음을 쏟고 싶지 않다고 토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친밀한 관계보다는 필요할 때 만나는 느슨한 관계를 선호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직장에서도 사적인 부분을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고 주말에도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 분위기이다. 1년에 딱 한 번 만나도 오래 만났으면 친한 사이란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40대가 넘어서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정말 어렵다는 얘길 참 많이 들었는데, 거기에 이런 세태 변화와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면서 새로운 친구는커녕 기존에 있던 친구와도 소원해질 지경이 되어버렸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달라진 세상에서 마음 나눌 찐 친구가 없다고 씁쓸해하는 사람도 덩달아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요즘 '친구'의 정의도 점점 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무조건 '의리!'를 외치는 게 친구였지만, 이제는 그저 만나면 즐겁고 꾸준히 서로 안부를 묻고 평생 인연을 이어갈 수 있으면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아주 가끔 만나지만, 내 속 얘기를 전부 다 하진 못하지만, 나랑 코드가 썩 맞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내 맘 같지 않아 나를 서운하게도 하지만, 그래도 이 친구랑은 평생 만나겠구나, 적어도 만나다가 흐지부지 인연이 끊기진 않겠구나 싶으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과도한 기대도 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건강한 거리를 지켜주면서.     


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지만, 심지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면 친구가 거의 없는 것에 가까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적당히 외롭지 않게 살아갈 만큼의 친구는 있다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사람에게 과하게 기대진 않아도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 함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1인 가구에게 있어서 친구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재산 중 하나이니 말이다.     


인간관계는 저마다의 생로병사 운명이 있어서 절친한 관계였다가 도중에 별다른 일이 없었음에도 자연 소멸하거나 서먹해질 수가 있다.
이때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애매한 채로 놔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도 예전에는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 자꾸 분석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그 관계의 끈을 다시 이어보려고 애썼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나 상대를 위하는 일이 전혀 아니었다.
단지 그 관계에서 내가 부족하거나 나쁜 사람이 아님을, 나는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님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정쩡한 인간관계로 걸쳐놓는 것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 관계로 불편하다 해도 그 이상으로 상대를 직접적으로 화나게 하거나 상처 입히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노트가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