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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Oct 12. 2021

저는 꽃길만 걸어온 교사입니다.

교사에게 꽃길이란


"샘은 꽃길만 걸어온 교사잖아요."


동료들은 늘 나에게 이렇게 이렇게 말해왔고 나 역시 은연 중에 난 그동안 꽃길만 걸어왔노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난 참 운이 좋은 교사라고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느 날 회사원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하자 그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네가 무슨 꽃길만 걸은 교사야? 고생길만 걸은 교사지."


그러고 보니 직장 생활에서 꽃길만 걸었다는 건 주로 일 적게 하고 월급은 많이 받는 삶을 의미했다. 예컨대 늘 칼퇴할 수 있고 업무량은 적지만 월급은 많이 받는, 소위 꿀 업무를 맡는 걸 일컬어 "꽃길"이라 불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내가 걸어온 길은 꽃길과는 거리가 멀었다.

10년 넘게 특목고에서만 근무한 탓에 칼퇴는커녕 일주일에 3~4일은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고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에게서 시도때도 없이 오는 연락에 퇴근 후 늦은 밤이나 주말에도 휴대폰을 확인해야 했다. 수업 준비에 대한 부담도 일반고에 비해 훨씬 더 큰 편이었으며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도 혹시 오류가 있거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여 등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초긴장 상태로 전전긍긍하곤 했다. 대학 진학지도나 학생 상담에 쏟는 에너지도 반고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중학교로 발령난 최근 3년도 결코 쉽진 않았다. 워낙 부모들의 관심과 학구열이 높은 동네라서 학생 한명 한명에 대해 신경을 훨씬 더 많이 써야 했다. 학교 규모가 작아 교사 1인당 배당되는 행정 업무도 많은 편이어서 3년 내내 야근을 밥먹듯이 하곤 했다.

결국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좀 더 늦게까지 일하고 좀 더 많은 시간을 업무와 수업 준비에 투자하고 에너지도 더 많이 쏟아온 셈이었다.

회사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친구의 말대로 꽃길은커녕 고생길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딱 하나 좋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아이들이었다.

교사가 되고 처음 발령받은 첫 근무지는 비평준화 지역의 성적 우수한 고등학교였는데, 그곳에서 근무했던 5년 동안 난 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기쁨과 감동을 다 누렸던 것 같다. 신규 교사의 열정으로 매일 밤 10시까지 일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고 월요병 따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던 5년이었다. 정 많고 순수하면서 공부에도 관심 많은 아이들은 나에게 교사된 기쁨을 넘치도록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내가 가르친 이상으로 성장했고 오히려 나의 제자가 되주어서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훌륭했다.  

그 후, 10년 넘게 만나온 특목고 아이들이나 현재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 아이들 역시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다들 수행평가 0.1점에 벌벌 떨 만큼 성적에 예민하고 교사에 대한 기대수준도 높았지만, 대신 그만큼 가르치는 보람과 즐거움이 있었다. 열심히 가르친 만큼 아이들은 달라졌고 성장했다. 관심을 쏟으면 쏟은 만큼 아이들은 그 마음을 알아주었다.

비록 시골 아이들처럼 순박하진 않았지만, 더없이 유순하고 지켜야 할 선을 지킬 줄 알았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꾸준히 연락을 이어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sns 등을 통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어엿하게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뿌듯함도 컸다.

돌이켜보면 처음 교사가 되고 지금까지 20년이라는 시간동안 난 늘 이런 아이들만 만났고, 아이들 때문에 마음을 다치거나 험한 상황을 겪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야말로 "꽃길"만 걸어온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교사에게 '꽃길'이란 업무량도, 업무 시간도, 월급도 아닌 "학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지금껏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 했고 업무량도 상당한 편이었으며 수업 준비나 시험 출제에 대한 압박도 심한 학교에서만 근무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있게 "난 꽃길만 걸은 교사"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운좋게도 좋은 학생들만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들 때문에 마음 상하고 화나고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겪는 일 없이 오히려 가르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학교야말로 교사에겐 꽃길이었다.


이처럼 세상과는 조금 다른 기준으로 "꽃길"을 정의하는 교사의 직업에 감사하며, 동료와 경쟁하기보다는 손 잡고 함께 가야 성장할 수 있는 교직의 성격에 안도면서 오늘도 소풍가듯 출근을 준비해본다.

결국 세상은 더불어 살아야 하며 '사람'이 가장 큰 힘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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