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도 즐거웠고 책 쓰는 일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뭔가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나이의 앞자리수가 3에서 4로 바뀌던 해, 결심했다. 다시 또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이번엔 나의 원래 전공인 중국어도 아니었고 부캐인 여행작가와도 관련 없는 전혀 새로운 분야였다. 내가 마흔 살에 새롭게 시작한 공부는 바로 심리학, 상담심리였다.
사실 심리학은 나의 오랜 관심 분야였다.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늘 모의 지원학과에 심리학과를 썼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심리학 관련 강의들을 기웃거리곤 했다. 그렇게 심리학에 대한 막연한 관심만 유지하다가 뒤늦게서야 더 늦기 전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자 결심을 한 것이었다.
물론 학교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상담하고 그들의 정서적 어려움을 돕기 위해서 좀 더 전문적인 역량을 갖추고 싶다는 실질적 필요도 있었다. 더불어 여행책이 아닌 문학 에세이를 쓰고 싶은 나의 오랜 꿈에 심리학에 관한 전문 지식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대학원 진학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그 후, 2년 반의 시간 동안 나는 대학원에서 상담심리 석사 과정을 이수했고 논문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 시간은 내 인생에 있어서 단순한 학위 취득 이상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중국어의 매력에 빠져서 대학 4년 내내 중국어만 공부했던 대학 시절처럼 이번엔 2년 여의 시간 동안 상담심리의 매력에 오롯이 빠져들었다. 대학원 수업 외에도 상담심리학회에서 진행하는 학술 세미나를 부지런히 찾아다녔고, 따로 시간을 내어 개인 상담 분석을 받기도 했으며, 다양한 주제의 집단상담에 참여해 나와 다른 이의 마음을 살펴보고 공부했다. 이젠 국민 심리검사가 된 MBTI를 비롯하여 각종 검사도구의 해석이나 심리치료 과정을 배우러 다니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다양한 분야의 마음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나는 내 마음을 좀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방법들을 배울 수 있었다. 때로는 나의 그림자와 무의식적 방어기제를 직면하는 것이 일상을 흔들어놓을 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비로소 조금씩 철이 들어갈 수 있었다.
석사 과정이 끝나갈 무렵 고민이 되었다.
여기에서 공부를 끝낸다는 게 후련하기보다는 아쉬움이 앞섰다. 아직 배우고 싶은 게 많은데, 여기에서 멈추면 이도 저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사과정까지 이어가기엔 현실적인 필요성이 떨어졌다. 석사 과정은 메인 직업과 병행해서도 가능했지만, 박사 과정은 그렇게 적당히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나의 본캐인 중국어 교사나 부캐인 여행작가와도 관련성이 높지 않았기에 굳이 그 힘든 과정에 발을 내딛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박사 과정에 합격할 수 있다는 보장도 할 수 없었다.
멋모르고 시작한 무모한 도전
그러나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은 일단 저지르고 봐야 한다는 나의 신조는 결국 나로 하여금 기어이 박사 과정 지원서를 쓰게 만들었고, 운좋게도 난 박사과정에 합격하게 되었다. 전공은 교육학, 교육 상담 및 심리 전공.
박사 학위를 마치고 나면 먼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심리 관련 에세이를 출간하고, 5~6년쯤 치밀하게 준비하여 명퇴를 한 뒤, 상담 센터나 연구소를 개원하겠다는 야심찬 노후 계획까지 세웠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노후 계획이라며 혼자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박사 과정의 공부는 내가 꿈꾸고 기대했던 방향으로 가주진 않았다. 영어 논문과 원서를 읽고 발표와 토론을 하고 연구방법론을 공부하고 학술 논문과 보고서를 쓰는 등의 코스웍 과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혹독하고 힘들었다. 발표가 있는 시기에는 거의 모든 주말을 반납하고 준비에 매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벽은 영어와 통계였다. 통계학이 심리학을 만나 꽃을 피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통계는 심리학의 아주 중요한 베이스였으니, 300% 문과형 인간인 나로서는 울고 싶을 만큼 넘기 힘든 벽이었다. 영어 논문이나 원서를 읽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중국어에 빠져서 영어 공부를 게을리한 게 뼈아프게 후회될 따름이었다.
나의 무식함을 자책하며 코스웍 과정을 과연 끝낼 수나 있을까 싶을 만큼 좌절과 고난의 시간이 이어졌지만, 박사 코스웍은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대학원 선배 샘들의 위로에 기대어 꾸역꾸역 학점을 채워나갔다.
코스웍 과정을 끝내고 학위 논문을 쓰고 마침내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는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박사과정이 이렇게까지 힘든 줄 알았더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이미 시작한 공부를 중간에서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오랜 시간 가까스로 버텨내어 받은 학위여서 그런지 끝내고 나니 뿌듯함보다는 후련함이 한가득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공부라는 건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로써 교사와 여행작가, 거기에 교육학 박사라는 타이틀까지 추가했으니 이제 내 인생에는 꽃길만 기다리고 있겠구나 기대가 되었다. 나의 후반기 인생은 아무 걱정없이 탄탄대로가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순진한 기대였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
나의 후반기 인생 계획 1단계였던 문학 에세이 출간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여행 작가로서의 경력이 10년 이상이고 나름 베스트셀러 여행서도 두 권이나 있으니 기획서를 내면 바로 채택될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절대적으로 냉정했다.
에세이 기획서를 써서 샘플원고와 함께 7개 정도의 출판사에 투고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준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답변조차 없었던 곳도 적지 않았다. 출간 경력도 있고 박사 학위도 있으니 적어도 한두 군데 출판사와는 미팅을 할 거라 기대했던 건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에세이 분야에서 나의 여행서 출간 경력이나 박사학위 따위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채택될 거라 쉽게 생각하고 컨셉에 대한 고민이나 시장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샘플 원고만 덥석 제출한 게 잘못일 수도 있고, 기획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아예 나의 필력 자체가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 출간에 있어서만큼은 늘 제안을 받는 입장이었고 거절당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 뼈아픈 실패였다. 에세이 분야에서 나는 철저한 아마추어이고 상대적 우위를 내세울 만한 요소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SOS를 청해 만난 실용, 여행서 분야 편집자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브런치를 권해주었다. 그러나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쓰는 블로그와는 달리 마음의 부담을 안고 쓰는 브런치는 글을 쓰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뭔가 잔뜩 힘을 주고 글을 쓰는 느낌이라 번번이 고민만 하다 닫아버리곤 했다.
야심차게 세워놓았던 후반기 인생계획의 1단계부터 막히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주위에선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도 있고 여행책도 쓰는데 뭐하러 쓸데없는 고민을 하냐고 했지만, 난 여기에서 머물기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었다. 고인 물처럼 살지 않고 매일 조금씩 발전하고 있음을, 비커밍의 기쁨을 경험하며 살고 싶었다. 누군가는 나더러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 걸.
힘들게 박사 학위만 따면 꽃길이 열릴 줄 알았는데, 진로에 대한 고민은 그렇게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