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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Oct 26. 2021

브런치, 나에겐 아마도 넘을 수 없는 벽

강남역 같은 블로그, 평창동 같은 브런치


낼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안 될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괜히 나중에 쓸데없는 미련이 남을까봐 숙제하듯 벼락치기로 글을 썼다.


문제는 하필 청소년 상담사 1급 자격증 시험이 10월 둘째 주여서 10월 24일 마감인 프로젝트에 응모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사실. 

때문에 원래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은 심리 관련 에세이였지만, 아무래도 심리 관련 글은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공이 많이 들어가는 터라 그 주제로는 도저히 시간이 부족하겠다 싶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차선을 선택하기로 했다. 내가 가장 쓰고 싶은 글이 아닌,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인 여행 주제를 쓰기로 한 것이다. 일단은 프로젝트 응모에 방점을 두고 소위 나의 '나와바리'를 선택한 셈이다.

 

그렇게 급히 써내려간 글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이 글들 중 서너 편이 연달아 Daum 모바일 메인에 소개된 덕분에(대체 어디에 소개되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지만, 통계를 보니 Daum 어디엔가 올라와있는 듯했다) 그동안 한없이 비루했던 나의 브런치 방문자 수에 큰 도움이 되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래로 어딘가에 소개되기는 처음이었다. 눈물나게 감격스러웠다. 




브런치를 시작한지 어느새 1년 남짓 되었지만, 여전히 브런치는 나에게 한없이 낯설다. 그러니 정붙이고 꾸준히 하는 것조차 여전히 쉽지 않다. 

사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건 10년 넘게 운영해온 블로그다. 물론 지금도 가장 익숙한 곳이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블로그가 거대한 광고판처럼 변해가고 바이럴 포스팅이 급증하는 바람에 그저 순수하게 '글'을 쓰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보성 글이 아닌 그냥 '글'을 쓰고 싶을 때마다 브런치를 열곤 했다. 

그렇게 유난스럽게도 두 종류의 플랫폼을 동시에 운영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 블로그는 강남역 같다. 

강남역은 어릴 적부터 내가 가장 익숙하게 놀던 동네였다. 누군가는 그 동네가 정신없고 복잡하다고 손사레를 치지만, 물론 정신없고 복잡한 동네인 것도 맞지만, 적어도 나에겐 강남역이 한없이 익숙하고 편했다. 작은 골목 구석까지도 다 찾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블로그는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각종 바이럴 포스팅이 넘쳐나고 광고성 덧글이 끊임없이 달려 조금 피곤하고 정신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한없이 익숙하고 편한 곳이다. 가끔 소소한 일상 얘기도 주절주절 늘어놓을 수 있고, 그런 글에 공감해주고 응원해주는 이웃이 늘 곁에 있었다.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소통하고 글로 마음을 나누어왔다.

그러하기에 경제적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거가 늘어나는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잘 키워 데이터를 쌓고 제2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보기 위해 '취미'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사람들이 다 모인 복잡하고 정신없는 동네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 시끌벅적한 에너지와 오랜 랜선 이웃들이 있는 강남역 같은 곳이 바로 블로그였다.

 



나에게 브런치는 평창동 같다. 

진짜 평창동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평창동 말이다. 부자들, 사모님들이 사는, 높은 담벼락의, 낯설고 조금은 불친절한 동네. 

브런치는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구독 추가에도 더없이 인색하고 덧글은커녕 공감 버튼에도 한없이 인색한 곳. 아무리 정을 붙여보려 노력해봐도 마치 낯선 부자 동네의 높은 벽을 바라보며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느낌이랄까.


어디 그뿐일까.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는 건 네이버 블로그 메인보다 백만 배쯤 어려워보인다. 짐작컨대 내가 브런치를 하는 동안 내 글이 메인에 소개될 일은 없을 것 같다. 

곰곰히 분석해보면 브런치 메인에 오르는 건 작가 프로젝트 수상 작가거나 에세이 출간 작가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고부 갈등, 투병, 인간관계 단절, 퇴사, 워킹맘 등 임팩트 강한 주제를 다루거나 눈에 확 띄는 강렬한 제목의 글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트렌드 속에서 내 평범한 글이 메인에 소개될 리는 만무했다. 

그러다보니 1년 넘게 브런치를 운영했어도 여전히 구독자 수는 더없이 소소하고 덧글도 없고 공감도 적을 수밖에. 


이처럼 나에겐 그저 낯설고 냉랭하고 높게만 느껴지는 이 브런치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런치를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글'이다. 

몰아치듯 글을 써서라도 기어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게 만드는 이유도 결국은 '글'이다.

나 혼자 노트에 끄적대는 일기가 아닌 바에야 일기장이 아닌 '글'을 쓸 수 있는 오픈된 공간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브런치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다소 정신없긴 해도 늘 시끌벅적 에너지가 넘치는 블로그와는 달리 적막감이 감도는 냉랭한 브런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맘대로 글을 쓸 수 있으니 그걸로 감사하자 다짐하면서 말이다. 비록 읽어주는 사람 거의 없고 덧글로 소통하는 사람 거의 없어도 그저 꾸준히 글을 쓰는 것만으로 내가 성장하고 치유받고 준비되어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그리하여 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이 차가운 브런치에 어떻게든 정을 붙여보려 애쓰며 오늘도 빈 페이지를 채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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