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토끼섬 탈출

by 자람이


송도 센트럴파크 토끼섬은 호수 한가운데 외딴섬이다. 육로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대여하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토끼들을 가깝게 볼 수 있다. 그나마 코로나 때문에 배 운영이 중단되었다. 먹이를 주는 스티로폼 뗏목이 전부다.

토끼들을 암, 수 섞어 놓으니 손쓸 틈 없이 아기토끼들이 태어났다. 암, 수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중성화 수술이라도 해야 했다. 토끼는 태어나서 4개월이 지나면 바로 번식을 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임신이 가능한데, 새끼는 많으면 6마리씩 태어났다. 그러니 늘어나는 토끼 수를 공단 사육사들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름은 공단 사육사이지만 이들은 조경 담당자들이다. 사육사라는 호칭은 하루에 두 번 먹이를 주기 때문에 붙여 주고 있다. 함께 키우는 사슴 사료를 토끼들에게 주었다. 겨울에는 매서운 한파에 시달렸다. 물그릇이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였다. 여름에는 물 부족으로 헐떡였다. 100여 마리 토끼들에게 물그릇이 고작 두 개뿐이었다.


2012년부터 토끼섬을 운영했으니, 그동안 수 백 마리가 죽어왔다. 언론이 보도를 하니, 100여 마리 중 40마리는 다른 공원으로 보내졌다. 민원 제의가 빗발치자 행해진 조치였다. 토끼섬에 남겨진 33마리 중 16마리가 또 죽었다. 지금은 18마리 정도가 살아남았다(2020년 겨울).

그동안 갇힌 토끼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몸을 내 던지며 먹이 싸움을 했을지, 생존을 위해 얽히고설킨 토끼들의 생존경쟁 흔적이 몸에 덕지덕지 남았다. 몸 떨림, 근육 상실, 흐릿한 눈빛 등의 증상이 일상이 된 토끼들은 털이 빠져서 흘깃 보기에도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온몸을 비틀면서 뛰어다니는 토끼도 있었다. 오늘 먹고 마실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살아남았으니 넋두리를 쏟아내 죽은 토끼들의 항변을 대신해야 할 것 같은데,


“죽은 토끼들은 관행대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그 어떤 넋두리도 토끼뼈다귀 같은 소리일 뿐이었다.


8년 동안 토끼의 죽음을 일상으로 처리해오고 있다. 토끼들은 영역에 대한 다툼이 커서 큰 부상을 입기 쉬웠다. 게다가 먹을 것이 부족해져서 그 인공섬을 빠져나오고자 탈출을 시도하는 토끼들이 많았다. 낮은 울타리를 구멍을 내거나 뛰어넘기도 하고, 땅을 파서 물에 익사하기도 했다. 섬에 내버려 두니 공무원들은 편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외면하기 딱 좋은 섬이었다. 사람들이 그곳에 발이 닿는 관광을 할 수 없었다. 대여하는 배를 타고서야 토끼섬을 관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솜사탕이나 어린이 홍삼 팩을 마시는 아이들과,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을 든 사람들은 토끼섬을 관광했다. 토끼들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본능적으로 토끼들은 침을 질질 흘렸다. 입에서 거품이 났고, 배에서는 꼬륵 소리가,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이럴 때 엄마토끼는 아기토끼들에게 생존비법을 전수해야 했다. 그래야 이 토끼섬에서 제대로 살아남을 수가 있을 것이었다. 실제로 먹지 못할 때마다 엄마토끼는 이런 상상을 하며 버티어 왔었다. 상상 말고는 먹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엄마토끼에게는 없었다.


“상상해봐!

‘촵, 촵, 촵’ 시원하게 물을 꿀꺽이고,

발에 샛 초록이 물들 정도로 풀밭을 뛰어다니는 상상을,

풀을 뜯어먹다가 풀향기에 취해서 신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호수의 물고기들이 놀라서 내빼는 상상을,

그런 풀숲에서 숨바꼭질하고 있는 친구들을 상상해봐.

친구들을 찾아내면 ‘찾았다!’를 외치는 거야. 상상만 해도 재미있겠지?

가슴을 펴고 마음껏 웃어대면 그 웃음들이 풍선처럼 하늘을 날아오를 거야.

상상 속에서는 마음껏 먹을 수 있단다.

그럼, 실컷 물도 마실 수 있단다. 아기 토끼들아! 상상의 힘으로 버티고 또 버텨야 해”


그런 상상을 하던 아기 토끼 한 마리는 너무 목이 탔다. 저 멀리 땡볕에 물처럼 빛나는 것이 보였다. 분명 희끗희끗한 것이 물 같았다. 흐느적흐느적 비실비실 반짝이는 것을 향해 다가갔다. 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나면 내일은 먹이통에서 흘려진 먹이를 주워 먹을 힘이 솟아날 것만 같았다.

어른토끼들이 순식간에 먹이를 해치우는 틈새 사이, 그릇 밖으로 흘려진 먹이를 잽싸게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조금만 더 빨리 달렸으면 사료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저 물도 뺏길지 몰라서 전력을 다해 달려야 했지만, 어제 사료를 먹지 못해 제대로 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 뛰었다. 물이닷! 물이닷!

헉, 막상 가보니 그것은 물이 아니라 돌멩이였다. 섬 어디엔가 계속 물이 흐르고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아기토끼들도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먹이통에 헛발질을 하다가 힘이 빠져 제자리에 푹 쓰러졌다. 관광하는 사람들을 텅 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귀엽다는 듯이 토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토끼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나가는 인사가 아니었다. 싱싱한 풀이나 물이 필요했다. 생존을 위한 넉넉한 먹이가 필요했다.


“100 여 마리여도 물그릇은 2개가 관행입니다. 물그릇을 더 놓으라는 지시는 없었습니다”

사육사는 책상 행정의 지시를 이행하고 있었다



토끼섬 건너편, 높은 빌딩 벽들엔 곱게 물든 불꽃들이 번졌다. 빌딩 벽에 불빛이 어우러져 호수에도 화려하게 퍼졌다. 너무나 따뜻해 보였다. 저 따뜻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송도 토끼섬 건너편 사람들은 가끔씩 간지럽다는 듯 깔깔대고 웃으며 스쳐갔다. 처음에는 그 해맑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희망 고문이었다. 낮에 잠을 깬 토끼들은 떼 지어서 울타리를 따라 뱅뱅 돌기도 했다. 그 웃음을 따라가면 이 토끼섬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은 금세 어딘가로 빠져나가고 없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사람들의 소리는 호수의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휑하게 사라졌다. 색깔을 잃고 이리저리 나뒹굴어서 울퉁불퉁해진, 빈 먹이 그릇을 노려보며 토끼들은 사육사의 먹이 시간을 기다렸다.


하루 2번 사료를 들고 오는 사육사의 뗏목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토끼들의 귀는 동시에 쫑긋해졌다. 그리고 그 뗏목이 지나가는 소리 따라 귀들이 방향을 틀었다. 누군가가 리모컨으로 조정이나 하듯이 토끼들의 귀가 사육사를 따라갔다. 멀리서 보면 단체로 싱크로나이즈드 하는 발들처럼 똑같은 방향으로 귀들을 쫑긋 댔다. 그야말로 배고픈 귀신이 들린 토끼들이었다.

적자생존이었다. 어른토끼들의 갑질과 횡포로 약한 새끼토끼들이 죽는 것을 한 두 번 보았던가. 공생을 할 수 있는 먹이 양이 아닌 것이 문제였다. 때로는 대장토끼의 선택에 따라, 아기토끼들이 희생 대상이 되기도 했다. 덩크슛하듯 맹렬하게 속도를 내어 온몸을 내리꽂는 몸싸움을 하여, 저마다의 아기 토끼들이 먹을 시간을 벌어야 했다. 몸싸움에 밀린 허약체질의 아기토끼가 살점이 뜯기어 상처가 남는 것이 문제였다. 상처가 깊어지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줄도 모르게 죽었다. 시체 썩은 냄새가 골치를 찔러, 남은 토끼들은 낮에 편안하게 잘 수가 없었다. 살아남은 토끼들의 몸은 점점 동그랗게 말렸다. 그러면 얼굴은 몸속으로 숨어들었다. 몸속으로 얼굴을 숨겨도 냄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체를 보는 것도, 시체 냄새가 나는 것도 공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만 뜨면 새로운 토끼들이 태어났다.


언젠가 개미 소독약을 먹고 발버둥 치던 토끼들이 호수에 뛰어들었다. 구름처럼 탱탱 불어 터진 토끼들이 호수에 둥둥 떠다녀도 사육사들은 한꺼번에 일 처리를 하려고 그랬는지, 계속 일 처리를 지연시켰다. 익사한 토끼들을 보다가 잠이 들면, 꿈속에서 죽은 토끼들이 구름처럼 부풀어서 토끼섬 거인이 되어 덮치곤 했다.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다. 꿈에서라도 죽은 토끼들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때 어떤 토끼가 발을 굴렸다. 심장에서 쿵쾅대는 불안함이 안간힘을 다해 버둥치다가 땅을 내리치며 쿵쾅댔다.

“쿵! 쿵! 쿵! 쿵!” 죽은 토끼들을 애도하는 장례식 같았다.

발이라도 구르지 않으면 다시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많은 토끼들이 저절로 소리 맞추어 발을 굴렸다. 지난날의 수많은 죽음 앞에 무력한 스스로를 탓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반복되는 죽음 앞에, 무력함을 되새기는 것도 사치이고 낭비였다. 떠다니는 토끼 시체들을 사람들이 치워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쿵! 쿵! 쿵! 쿵!”

다리를 땅에 내리치면서 ‘죽어서라도 좋은 곳에서 행복하길’ 애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쿵! 쿵! 쿵! 쿵!” 그 소리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져야 해! 그렇게 가슴도 내리쳤다. 흐르는 눈물을 꾹 닦아냈다. 꿋꿋하게 발을 구르는 토끼들은 힘을 주느라 이를 세게 악물어, 입이 삐뚤어지다 틀어졌다. 발을 구르면 구를수록 눈이 번쩍거렸다. "쿵! 쿵! 쿵! 쿵!" 사육사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관행대로 며칠에 한 번 죽음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사육사는 연수구청 책상 행정의 지시를 이행하고 있었다


입술이 쪼그라들고 굳게 다물어졌다. 그제야 바람에 떨고 있을 아기토끼들 생각이 났다. 아기토끼들은 서로에게 이불이 되어 기댄 채 잠이 들었다. 배가 고팠지만 그래도 잠이 들었다. 잠이 드는 것이 고통을 잊는 좋은 방법이었다. 우수수 칼바람이 부니 용종공원으로 생이별을 한 아기토끼들이 생각났다. 엄마 토끼 털이 소름 돋게 뻗쳤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고통이 몸을 찔러댔다. 욱신하게 고통이 커지니, 뼈 끝에 전율이 오싹했다. 부서진 몸이 내지르는 고통이 온몸을 후려쳤다. 이 토끼섬을 탈출하고 싶었던 다른 토끼들이 울타리에 몸을 던져 틈새를 만들었다. 몸이 좀 나으면 다시 도전하는 것을 반복하는 토끼들을 지켜보다가 며칠 전부터 엄마토끼도 울타리에 몸을 던졌다. 어차피 어둠 속에서 울타리를 부셔대는 소리가 철렁댔다. 그 소리 때문에 엄마토끼는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용종공원으로 옮겨간 아기토끼들에 대한 그리움. 이별의 고통에,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할 때가 많았다.

탈출하고픈 토끼들이 ‘파바박’을 하며 굴을 파는 소리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그 구멍의 끝에는 용종공원으로 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엄마토끼도 밤사이 굴을 파기 시작했다. 딴딴한 흙이라 제대로 굴을 파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자 굴을 파던 발에 피가 났다. 상처가 난 발을 들어 울타리에 문질렀다. 막연하게 울타리를 내리치다가, 출렁거리는 울타리에 울분이 터졌다. 굴이 제대로 파지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울타리를 향하여 몸을 던졌다. 저 울타리를 부딪는 일 말고는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엄마 토끼도 처음에는 앞발을 들어 울타리를 툭툭 치다가, 나중에는 몸통으로 울타리를 내리쳤다. 출렁대는 울타리에 구멍을 내는 일이 굴을 파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았다. 울타리를 향하여 온몸을 던졌다. 탈출할 수 있는 구멍, 이별한 아기토끼들을 보러 갈 구멍을 만들고 싶었다. 울타리를 향해 몸을 내동댕이 칠 때마다 용종공원으로 간 아기토끼들 이름을 번갈아 가면서 불렀다. 사료를 먹기 위해 몸싸움했던 온몸 던지기를 이번에는 울타리를 향해 던졌다. ‘고통이 위로가 되는 순간도 있구나.’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면서 떠나보낸 아기토끼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보상이 되는 기분이었다.

“털썩. 쿵. 털썩. 쿵” 밤새도록 연이어 토끼들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호수 한가득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울타리에 몸을 던질 때마다 땅에 내동댕이 쳐질 때의 소름이 두렵기는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는 더 괴로웠다. 고개를 희번덕거리며 주변을 살펴도 울타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쿵! 하고 땅에 떨어질 때마다 용종공원으로 옮겨간 아기 토끼들이 생각났다. 토끼섬에서 뛰놀던 아기토끼들의 생생한 표정, 말투, 몸짓이 생생했다. 헤어진 아기토끼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다시 새로운 독기가 생겼다. 구멍, 구멍이 필요했다. 당장 울타리에 구멍이 있으면 토끼섬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토끼들은 번갈아 가면서 울타리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어느 곳인가 약한 부분이 찢겨 나갈 때까지 계속 몸을 던졌다.


조그만 오두막은 대장토끼네 일당이 독차지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막사라도 설치된다면 좋겠다.

밥그릇을 차지하려면 기술과 힘이 필요했다. 아기토끼들은 죽을힘을 다해 뛰어도 밥그릇을 차지할 수 없었다.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면 손발이 저리고 오므라들었다.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온몸이 헐떡대다가 저녁이 되면 움찔움찔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땡볕과 한파를 피할 비닐하우스라도 만들어 달라고 민원을 넣었다고 했다. 그러나 몇 번의 민원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먹이는 관행대로 주고 있습니다.”

사육사는 인천 시설관리공단 책상 행정의 지시를 이행하고 있었다.


먹이통의 몸싸움에 숙련된 토끼들은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었다. 사료는 하루에 2번 주기 때문에 넉넉하게 먹을 시간이 없었다. 먹고 나면 금방 배가 고파지는 게 이상했다. 먹을 것을 찾아서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결국 어둑해진 하늘에 떠있는 달이 눈에 들어왔다. 토끼들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 달은 어쩌면 저렇게 빵처럼 배부른 모양을 하고 있지?"

“치, 뭘 제대로 모르는 구만. 달은 점점 커져서 둥근 빵이 되었다가 점점 얇아져서 하늘을 마음껏 떠도는 배가 되지. 정말 부러운 달이야”.

“별도 마찬가지야. 별마다 날개가 달려서 제 마음대로 나타났다 사라지지. 이 지옥 같은 토끼섬에

갇혀 있으니 달도, 별도, 새도, 나무도, 바람도 모두가 부러워. 그렇지 않아?”


제대로 먹지 못한 토끼들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대답할 힘도 없었다. 엄마토끼는 구멍을 크게 내기 위해 몸을 던지곤 했던 울타리가 보이는 곳에 쭈그리고 앉았다. 대장토끼 일당의 횡포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먹고 나서 뿜 뿜 외치는 헛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배고파서 쌕쌕 대는 아기 토끼들이 들썩들썩하는 떨림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몸을 가만히 붙이고 엄마의 숨소리 따라 조금씩 숨 쉬는 소리가 편해질 때까지 엄마토끼는 아기토끼들과 체온을 나눴다.

드디어 멀리서 스티로폼 뗏목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2번 사육사는 토끼들에게 사슴 사료를 주었다. 엄마 토끼는 몸을 솟구치듯이 올리려고 했지만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며칠밤 구멍 내는 일을 하며 상처가 심해졌다. 자신과 아기토끼들을 바라보고 있는 대장 토끼를 올려다보았다. 대장토끼와 일당들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엄마 토끼네를 향하여 이빨을 드러내며 경고를 보냈다. 힘없이 약하게 태어난 것이 죄였다. 이 헐벗은 세상에서 아기토끼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엄마토끼의 엄마가 그랬듯이, 아기토끼들을 지켜낼 것이다. 치열한 영역 싸움은 토끼들의 숙명이었다.

신음소리가 거친 숨소리를 갈랐다. 툭툭 끊어지는 숨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생명줄을 뚝뚝 끊어내는 것 같았다. 너무나 극심한 고통 때문이었다. 탐스럽게 호수에 비쳤던 구름도 안개에 가려지고 있을 때 엄마토끼는 호흡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며칠 동안 ‘파바박’ 굴을 파는 일로 발이 피범벅이 되었고, 탈출하기 위한 울타리와의 싸움에 몸이 찢어졌다. 점점 상처를 이겨 내기가 힘들었다. 마침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눈에 농양이 생겨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엄마토끼는 아기토끼들을 위해 몸싸움을 할 자신이 없었다. 오늘은 다른 토끼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오직 대장 토끼를 견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버티기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속 생각하면서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 나뒹굴었다. 일단 대장토끼 주변으로 몸을 말아서 굴렸다. 굴리면서 엄마 토끼는 결심을 했다. 사육사가 토끼섬에 도착해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먹이통까지 사육사의 남은 걸음 수를 예측했다. 대장 토끼의 위치를 향해 눈알도 무겁게 굴렸다. 이상하게 시간이 멈춘 듯, 억 겹의 시간 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사료그릇에 사육사가 몸을 구부리려는 순간, 엄마 토끼는 대장토끼를 향해 온몸을 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구멍을 향해 있는 힘껏 밀었다. 미처 대장토끼가 버틸 새도 없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어제저녁에 울타리에 큰 구멍을 낸 곳으로 몸을 던졌다. 빠져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아기토끼들은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대장토끼를 안고 호수로 떨어져야 했다. 대장토끼가 버둥거렸지만, 모든 것을 안고 가는 최후의 발악을 당할 수는 없었다. "풍덩" 억 겹의 시간도 함께 호수로 가라앉았다.


튕겨 오른 물장구가 복사꽃잎처럼 부드러웠다. 뭉게구름 그림자가 엄마 토끼를 감쌌다. 허우적대는 대장토끼와는 달리 엄마토끼는 울타리 끝에 앉아 있는 잠자리가 보였다. 그 잠자리 날아가는 곳에 눈길을 주니, 푸르른 허공은 잠자리 날갯짓을 따라 활기를 뛰었다. 바람이 부니, 꽃향기도 허공을 날아다녔다. 금빛 햇볕을 따라 하늘을 오르던 꽃향기들이 춤을 추듯 엄마토끼 호수를 떠돌았다. 꽃향기들은 알고 있었다. 대지의 속삭임 따라, 바람의 노래를 따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제 엄마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기토끼들은 무사히 사료를 먹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아기토끼들은 이 토끼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걱정을 하던 순간, 엄마토끼의 눈에 구름이 떠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저 구름을 뚫고 보름달에 오르리라. 몸을 날려 하늘하늘 바람을 타고 저 보름달에 오를 것이다. 아름다운 금빛의 길을 따라 푸르디푸른 계수나무 있는 보름달에서 금빛 동아줄을 아기토끼들에게 내려 줄 것이다. 달에다 집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아기 토끼들과 천년만년 풀을 먹으면서 살 것이다. 풀을 다 먹을 때쯤 물도 실컷 마실 것이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아기토끼들과 콧노래를 부를 것이다.’


“거 참, 풀 맛있다.”


“거 참, 물도 맛있다.”


엄마 토끼는 아기 토끼들과 달에 올라서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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