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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이 Jul 09. 2021

바로 지금 여기

어린이를 위한 12가지 행복 채우기 연습 <행복>을 읽고

 

 내가 살던 곳을 떠올리면, 도랑을 낀 울퉁불퉁한 골목길이 보인다. 그 골목길로 들어서면 치렁치렁한 전선줄을 달고 있는 전봇대가 간격을 두고 서 있다. 그 전봇대 위에는 방을 내놓는 공고나,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종이가 바람에 너덜대고 있거나, 누구하고 얼레리 꼴레리 했다는 낙서가 하트 표시하고 같이 어지럽게 적혀 있다. 아파트가 아니고 단독주택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 앞에는 큰 공터가 있다. 마치 난 그 공터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우리 집을 들랑날랑할 수 있는 아이와, 할 수 없는 아이를 구분해가며 텃세를 부렸다. 엄마가 막걸리를 넣어서 개떡을 하거나, 어쩌다가 카스텔라를 만들어주면 집 앞 공터는 여지없이 내 왕국이 되곤 했다.


 그곳에는 자치기를 하기 위해 파 놓았던 한 뼘 남짓 긴 구멍이나, 구슬치기를 하느라고 땅 위에 박혔던 구슬 자국들이 깊게 파여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공터의 나무는 우리들의 가위, 바위, 보의 메아리를 온몸에 새기며 자라 가고 있었다. 허리에 힘주고 엎드렸던 말뚝박기, 바지 무릎을 닳게 만들었던 땅따먹기, 좋은 돌을 찾아서 삼만리 했던 비석 치기, 신발에 땀냄새 베개 했던 망가 망가 망가 씨, 산골짜기 다람쥐 등의 고무줄놀이, 달리기 연습을 하게 만들던 얼음땡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렇게 놀이하며 묻혔던 손때를 공터 모래나, 벽돌에 묻히곤 했다.개구쟁이~로 끝나는 노래가사 같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집 담을 빼꼼히 넘겨 보고 있던 장미덩굴들. 그 담장 너머에 우리 집이 있다. 큰 녹색 대문을 열면 큰 마당이 있다. 그 마당 구석에 엄마가 들랑날랑하며 정성껏 닦아주던 항아리들이 놓여 있다.


  날이 좋은 날이면 항아리 뚜껑을 잠깐 열어 놓기도 했는데, 그중에 고약한 젓갈 냄새 때문에 코를 막으며 옥상으로 도망을 갔다. 옥상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면 질박하게 동그란 항아리 안에, 빨간 햇덩이를 닮은 고추장, 흙빛 구수한 된장, 칠흑 같은 어둠을 담은 간장, 갯벌 모래톱 같은 젓갈들이 제 빛깔을 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맛스러워 보이는 배불뚝이 항아리가 아주 정겨웠다.


  그 옥상에서 바깥세상을 내려다보면, 크고 작은 물탱크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널려 있는 빨래 사이로 저마다의 사연을 숨긴 바람들이 자락자락을 스미며 지나간다. 햇빛에 반사되어 광을 내고 널려 있는 고추들, 마른 무의 말랭이들, 아이들 저녁 밥상을 메워줄 나물들이 몸을 비틀면서 나뒹구는 모습도 보인다.


  우리 집 뒤쪽으로 임신한 여자 형상의 산도 누워 있다. 그 산 아래로 비탈진 곳에선 한 겨울에 아이들이 얼음썰매를 탔다. 나도 포대자루를 들고 가서, 지금 아이들 눈썰매 같은 단맛 나는 스릴을 즐기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부르튼 손이며 다리의 멍자국에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 산, 봄에는 쑥을 캐러 가기도 했고, 여름엔 톰소여의 모험처럼 동굴을 파러 가기도 했고, 가을엔 낙엽을 주우러 가기도 했었다. 사계절 내내 그 산자락 그늘에서 읽었던 책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얘기해주기도 했다.


  우리 집 앞쪽으로 보이는 높은 굴뚝은 목욕탕의 것이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온 식구가 목욕을 갔는데, 엄마는 목욕비를 줄이려고 막내를 아기처럼 포대기에 싸서 업고 가시기도 했다. 나는 들킬까 봐 마음을 졸이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 알면서도 은근히 속아주던 주인아줌마 인심에 웃음이 난다. 때밀이 수건으로 순서대로 때를 박박 밀고 나면 수영장에 온 것처럼 아이들은 탕 안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모든 허물을 벗어던지고 놀았던 미끈한 기억. 그 기억은 매번 조명을 받은 듯 환한 살빛으로 빛을 낸다.


 멀리 보이는 곳에는 시장이 있다. 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 빈병이나 신문지를 가지고 가서 호방 엿 가위질을 구경하며 먹었던 호방 엿. 주름진 얼굴과 칭칭 감은 목도리를 하시고 국화빵을 굽고 있던 밀가루 아줌마, 목청 좋게 아이스께끼를 외치던 꺽다리 아저씨, 떨이 떨이 떨이를 경쾌하게 춤추며 외치는 와와 장사꾼 그리고, 혹시나 별미를 얻어먹을까나 싶어서 짐을 들어준다며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헤매 다니던 시장 골목들.


 그렇게 묻혔던 세월 속 풍경이 되살아났다. 빛바랜 어린 시절이 낡은 앨범에서 한 장씩 넘겨지는 듯하다. 그 동네를 떠올리니 함께 노래 부르며 담벼락에 낙서했던 고사리 같은 친구 손, 누구야 놀자 목청껏 불러댔던 친구 이름, 관심 있는 아이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후다닥 도망치던 비밀스러운 달음박질, 이사 간다고 쏟아냈던 닭똥 같은 눈물이 가슴을 적셔온다.


 그때의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 산은 아직 아기를 낳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의 얘기를 엿듣던 아름드리 그 나무는 베어지지 않고 푸르게 키가 크고 있을까?



 <행복>을 보고 나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자신의 마음에서 퍼올려지는 기억들이 나를  행복하게 할 때가 있다. 그 추억을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고 있는 것이다. 그런 행복력은 하루의 길목, 길목에 심어 놓은 이정표를 도달하는데 힘이 되어 준다.


 소소한 일상에서의 추억을 간직해내는 힘, 그것도 행복할 수 있는 힘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글들을 자주 쓰는 것 같다. 기억으로 쓰는 하늘이 저녁놀같고, 기억으로 쓰는 바다가 해돋이 같을 때, 그  기억들이 내 삶을 눈부시게 윤택하게 만든다. 그래서 좋은 기억을 자주 떠올리는 버릇이 있나보다.


 이 책에서 마음 챙기기란 마음을 나 자신, 그리고 세상과 연결하는 일이라고 한다.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챙기기 위해서는, 자신을 세상하고 연결하는 마음 챙기기를 해야 진정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일이 된다는 것을.. .행복은 소중히 여기는 순간을 늘려 갈수록 커진다.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 나가고 기억해나가면서 더욱 많은 행복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하루를 보내려고 한다.


그림책 아래에 씌여진 질문들이 나를 되돌아 보게 했다.

'내가 누군가를 미소짓게 했나?'

'내가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나?'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함께 행복을 만들어 가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사진 : 자람이       커버;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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