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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이 Nov 15. 2020

청년 백수의 하루

이름보다는 

닉네임이나 별칭 속에 숨어 지내던 어느 날,

습관처럼 이력서가 서류 탈락을 하지 않고 

1차 면접 통보가 왔다.


흔들리는 서울행 기차에서 

친구의 악수를 따라 들어간 두더지 방 귀퉁이

검게 곰팡진 얼룩과 나란히 누워

나지막이 불렀던 노래가 이불이 되었다.


지독한 하수구 냄새가 아침을 깨우면

신선한 하품 대신에 느끼한 헛구역질이 

밤새 눅눅해진 과자를 집어삼켰다.


숨을 내쉬면 기관지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가

집 없는 들고양이 울음소리와 섞이어 

하수구 구멍 홀로 들어갔다.


오픈 채팅방에서 나만의 고립감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만남의 연결 고리를 의식해 

채용 탈락의 고배마신 이력들을 미리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채팅방 공지가 된 취업 박람회에 입장했으나 

계속 겉돌고 있는 나를 훑어보며

양복 정장을 입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루에 한 두 끼를 삼각김밥과 요구르트로 때우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직 방을 구하지 못했다.


마을버스 종점에 도착하자 운전사는 밭은 침을 내뱉으며 

 밖에서 비싼 돈 쓰지 말고 어서 집에 들어가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포클레인은 내가 살았던 한옥집 속살을 깨물어서 

번쩍번쩍한 네온 간판을 껴안았다.


독서실에서 침낭을 빌려 새우잠이 들면 

청소부 마포 걸레가 자명종 시계 되어 침낭을 내쫓았다.


등에 딱딱한 짐 하나 메고 

길 위에 누운 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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