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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이 Nov 19. 2020

도토리묵 만드는 할머니

 성채 할머니를 처음 본 것은 재활용품을 내는 목요일이었다.

 그날은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품을 내는 날이었다. 종이와 플라스틱 등을 분류해서 버리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내다버린 낡은  찻상 이모 저모를 뜯어 보고 계셨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주워서 가는 것을 보았다. 누구도  다시 쓸 생각을 하지 않을 상이었지만, 할머니는 그것을 손으로 만든 것이어서 아직은 튼튼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멋적은 웃음을 건네시며 지은 주름살들이 어찌나 포근한지 저절로 나도 웃음을 건넸다.


 이후로 그 할머니는 아파트 여기저기서 가끔 눈에 띄였다. 뭐에 쓰실 것인지 노끈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가져 가기도 하시고, 등산 차림으로 산에서 뭔가를 가지고 내려오시기도 했다.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나는 그 할머니 걸음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언제나 손에는 반찬이 될만한 풋거리가 쥐어져 있거나, 재래 시장에서 사왔을 법한 먹꺼리들이 있었다.


Pixabay


 좀 검소한 할머니겠거니 지나쳐 오던 어느날, 둘째가 어린이집 가는 셔틀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서 그 할머니와 정식으로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날은 날씨가 아직 추운 3월이었다. 그 할머니는

 "성채야! 어서 줄을 서야지! 버스 온다! 저기 " 하셨다. 외손주 이름이 성채였다.

 그 성채란 아이가 지금 우리 둘째의 단짝 친구였다. 둘이 죽이 잘 맞았다. 그래서 가끔 둘째가 그 아이네 집에 놀러가겠다고 졸라댔다. 성채도 좋와하고 할머니도 반가워 하는지라 나는 가끔 아이만 성채네 집에 보냈다가 한참만에 찾으러 가곤 했다. 성채할머니는 고구마도 껍질 채 먹게해서 우리 둘째는 그 이후로 고구마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어야 한다고 얘기하곤 했다.

 

Pixabay


어느날 그 할머니가 나에게 도토리 묵을 한 접시 들고 오셨다.

난 그 도토리묵이 어떤 묵인지 알고 있는지라, 좀 들뜬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아니 이렇게 귀한 묵을 식구들에게나 먹일 것이지, 저한테까지 가지고 오셨어요. 할머니!"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가을 무렵부터 그 도토리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몇 개월에 거쳐 어깨너머로 지켜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이 도토리묵의 재료인 도토리를 만난 것은 성채네에 놀러간 둘째가 어두워져도 오지 않아 데리러 갔던 지난 가을 무렵이었다.

 할머니는 망치로 도토리를 깨고 있었다. 겉껍질이 두꺼워서 까기가 힘들다며 망치로 껍질을 부수고 있었다. 어디서 생겼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산에 등산 갔다가 나무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셨다. 망치를 내리치면서도 어깨가 결리는지 왼손으로 한 번씩 어깨를 치시기도 하셨다. 그저 좀 쉬면 좋을듯 싶은데 잠시도 손을 놓치 못하셨다.

 그날 하루 종일 겉껍데기를 까느라고 손톱 사이가 노랗게 물들었다 하시면서, 커피를 끓여 주겠다고 굽어진 무릎을 힘들게 잡고 일어서려 하셨다. 벌써 쭈욱 펴기 버거운 휜 무릎이 노동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해주었다. 나는 방금 마셨다고 얼른 둘러대면서 말꼬리를 돌리느라고 그릇에 주워 담고 있는 도토리 알맹이에 대해서 관심을 돌렸다.

 그 부지런한 손길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얼핏 얼핏 내비추셨다.  좀 도와 드릴까도 싶었지만, 손톱 사이로 물이 든다며 할머니는 기어이 말리셨다.  금방 아이만 데려 오기가 미안해서  도토리묵을 어찌 만드냐며 할머니께 여쭤 보았더니, 성채 할머니는 한 숨 돌리듯, 망치를 내려 놓으시고는, 그제서야

"휴~" 쉬는 큰 숨을 내쉬더니, 도토리묵 만드는 과정을 얘기하셨다.


 도토리묵은  날씨가 더우면  잘  안된다며 계속 베란다에서 말렸다가 추워지면 만들꺼라 하셨다. 겉껍데기를 깐 도토리 알맹이를 잘 말리면 속껍데기가 바삭바삭 부스러지게 된단다. 그 부스러진 것을 키위로 날려서 정갈하게 알맹이만  물에 담군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리 담그는 일을 15일 동안 해야 한단다.

 빨간물이 생기면 다시 부어내고 맑은 물에 다시 담그고, 또다시 빨간물이 생기면 물을 바꿔주기를

보름 동안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손주들 뒷치닥거리도 해야할 것이고, 맞벌이로 일하러 간 딸을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하시는 데다가, 그도 모자라 손주들 간식비 한다고 집에서 부업도 가져다가 하시곤 했다. 인형 눈을 붙여 주거나, 수도꼭지 링을 끼워 조립하는 부업을 주로 하셨다. 그러는 동안에 도토리 알맹이가 탱탱 불면서 빨간물이 다 빠져 나간다고 하셨다.

  그것을 믹서에 갈아서 고운 자루에 넣어서 짠다고 한다. 그 짠 것을 가라 앉히면 녹말가루가 되고 윗물을 조심스럽게 버리란다. 그리고는 녹말가루를 체를 곱게 쳐서 또 말리란다.

거기까지 얘기만 들어도 난 벌써 만들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듣는 것만도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3분 요리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 그리 요리 해먹으라면 손들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렇게 긴 과정을 통해 얻은 가루는 생각보다 아주 적은 양이었다.

 그 가루를 햇볕 드는 곳에 널어 놓은 것을 보니 정말로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저 고운 가루가 세상에 없는 명약같이 보이네요. 가족들에게 먹이면 정말로 살로 피로 갈 것 같아요. 할머니가  어찌나 공을 들이는지..."

 그러나 도톡리묵을 만드는 과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란다. 헉,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루 한 공기에 물 6컵의 비율로 풀을 끓이듯 불에 올려 쑤어야 한단다. 센불 약한불을 계속 조절해가면서 묽은물을 계속 저으란다. 팔이 아프도록 뻑뻑해도 계속 저어 주어야지, 잘 안저으면 도토리묵이 너무 묽어져서 맛이 없다고 했다. 아무리 되직해도 물을 더 부으면 절대로 안된다며, 그 일이 보통일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약불에 5분 뜸들여서, 불꺼서 2-3분을 두었다가 그릇에 쏟으면, 밑 누룽지는 뚜껑 닫았다가 떼어내면 잘 떼어진다며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말씀 하셨다. 그 누룽지 아까우니 그냥 버리면 절대로 안된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정말 검소하신 분이셨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토리묵을 양념 간장을 끼얹어서 쑥갓, 오이 같은 것과 같이 먹으면 맛있다고 하시면서 국수처럼도 해먹어 보았느냐고 물으셨다.

" 어떻게요 할머니?"

"체 썰어서 도토리묵을  담고, 익은 김치, 오이, 김, 멸치 국물을 넣어서 국수처럼 먹으도 색다른 맛이 나지요" 그렇게 할머니는 나에게 하대를 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건네셨다.


사진 : 자람이


 그리 만들어질 것이라 말씀은 들었지만, 난 그 귀한 도토리묵이 내 차지도 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가루도 얼마 되지도 않았고, 할머니 딸린 식구들도 많은 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토리묵 그릇을 받아 드니, 그냥 먹어도 좋을지 죄송스런 기분이 들었다. 너무 감동스러워 아이들에게 얼른 간장에 묻혀 삼켜 보라고 성화를 부리기도 했다.

늘 몸에 일을 붙이고 사신다는 성채 할머니는 워낙 살집이 없으셨다. 그리 일을 하시니 언제 살이 찌셨겠는가. 딸네에 있으니, 주시는 용돈으로 편하게 손주들과 지내셔도 될 터인데,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볼 때마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빼빼 말라서, 바람에 휘청하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날렵한 몸이지만, 젊은 사람 못지 않은 건강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저런 부지런함이 준 선물인 듯 했다.

  나는 성채 할머니 손을 자주 들여다 보았다. 훔쳐 보기도 하고, 만져 보기도 했다. 패이고 패인 장작더미 같이 울퉁불퉁하게 거친 손. 앙상해져 뼈 속까지 허물어 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자꾸 눈길이 가는 손이었다. 도토리 알갱이 담궈놓은 뻘거죽죽해진 물 속의 손은,  지나온 고생의 기운이 손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닌가 착깎을 일으키기도 했다.


도토리묵이 몸의 유해 물질을 배출 시키는 힘과, 소화 기능을 촉진시켜 입맛을 돋구 듯, 성채 할머니의 손맛은 게으르고 편하게 살아가는 나에게 살맛나는 세상을 느끼게 해주셨다. 아무쪼록 오래 오래 성채 크는 것을 지켜 보면서 사셨으면 좋겠다.


언젠가 성채 할머니가 급하게 슈퍼마켙을 다녀온 사이,  잠이 깬 성채가 맨발로 현관을 뛰어 나오며 할머니 허리춤을 껴안았다.

 "할머니! 어디 갔었어. 난 할머니 없으면 안돼 안돼!"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따라갔던 내가 괜시리 콧등이 시큰했다. 엄마보다 더 살갑게 업고, 살부대끼며  키우셨으니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바로 이 나라의 역사에 밑걸음이 되셨던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던가!  

손주를 껴안고 볼 비비며 뜨겁게 체온을 전해주던

할머니의 몸짓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가족의 모습이 아닌가싶다!


어느날 둘째와 성채가 우리집에서 놀고 있었다.

"성채야 세상에서 뭐가 제일 좋아?"

"난 할머니"

"아니 할머니는 사람이고. 뭐가 제일 좋냐고.난 닌텐도.너는?"

"난 할머니. 할머니말고 다른 거 좋은 게 없어. 빨랑 커서 할머니한테 돈 많이 줄꺼야. 할머니 맨날 돈벌려고 일만 일만 해서 싫어. 그래서 할머니한테 내가 돈 엄~청 많이 줄꺼야."   

그 이쁜 마음이 안스러워 성채를 한 번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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