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라나 Jul 06. 2023

할매~
다음생엔 꼭 여장군으로 태어나이소.

하얀 나비가 된 우리 할매

 기분이 이상하리만큼 우울했다. 나는 그냥 차를 몰고 근처 바다로 향했다.

내 최애 가수의 앨범이 바로 전 날 나와 음악도 감상할 겸 들른 것치곤 매우 심란한 마음이었다.

차에 앉아서 창밖과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냥 노래만 들었다.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저녁을 먹고 둘째를 재우고 나오니 티브이에서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MBC다큐가 방영되고 있었다.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를 그리며 3D로 엄마의 모습을 다시 구현해서 다시 만나는 프로그램이었다. 1시간 내내 그걸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단지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도. 엄마가 고마워서도 아닌 그 이상의 감정이 마음속에 폭풍우처럼 밀려왔다.

 그 사연 속 엄마는 이제는 만날 수 없지만 영혼은 다시 무언가로 옮겨가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곁을 맴돌고 있는 걸 우리만 모를 뿐 그냥 그렇게 무한의 굴레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그냥 그게 삶이고 생명이고 존재인 것 같았다.

그렇게 펑펑 울고 나니 눈이 팅팅 부었다. 눈을 뜨기 힘들 만큼.




 밤 11시가 넘는 시각. 직감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전화였다.

엄마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냥 덤덤했다.

평생을 그렇게 미워하던 할머니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한번 찾아가 보지 않던 무심한 손녀였다.

병원에 계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다른 타인의 얘기처럼 덤덤했다. 그런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부고. 

 아빠는 그날 회식을 하셔서 거하게 취하 셔선 장례식장으로 달려가셨다 했다. 사실 아빠가 더 걱정이었다.

할머니의 연민 어린 자식. 아빠.




 할머니는 여러 자식 중 유독 아빠만 믿고 의지하셨다. 속 된 말로 잘 된 자식이 하나 없었다. 흔히 말하는 사회와 맞지 않는 삐뚤어진 자식들이 할머니에겐 여럿 있었다.

 그러한 탓에 할머니에겐 아빠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지독한 사랑이 엄마에겐 좋게 미치지 못했다. 

엄마는 결혼하면서부터 같은 집에 살면서 지독한 시집살이를 다 받아냈다. 결혼은 했지만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할머니에게 독립하지 못한 아빠는 할머니에게 소위 말하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다. 타 지역에서 시집온 엄마는 그 고충을 털어놓고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런 엄마의 곁에 있는 건 어린 나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나 때문에 살았다는 말이 정말 절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할머니는 엄마에게 가혹하게 대하셨다. 그런 할머니를 나 또한 좋아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항상 미운존재, 나쁜 존재였다. 




 할머니는 참 대차신 분이었다.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셨는데 긴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셨다. 시장 사람들은 할머니를 '몸빼 할매' 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할머니는 시장의 궂은일에 대신 큰소리를 내주고 힘든 곳엔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미시며 시장의 맏언니 정도의 역할을 하셨다.  

 더구나 우리 할매는 동네가 알아주는 주당에다가 골초였다. 동네 아저씨들과 술을 마시면 다들 나가떨어질 정도로 대단했다. 체력은 또 어찌나 좋으신지 매일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여행도 다니시고 모임도 하시면서 일도 열심히 하셔서 장사도 잘하셨다. 신기한 점은 할머니는 글자를 모르면서도 장사는 아주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가격표가 없었으니 부르는 게 값이었겠다마는 큰 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오고 영수증을 작성하고 돈을 거래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으셨을 텐데 그 모든 일을 다 해내셨다. 사람들은 그런 할머니를 여장부라고 칭송했고 아마도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나서 공부를 하셨다면 높은 자리를 해 낼 수 있는 여장군이 되었을 거라고 했다. 



 

 3일의 장례가 끝나고 영락공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참 화창했다. 우리 할매는 복도 많아서 주말 동안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다. 그리고 조용한 월요일. 할머니는 영락공원에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정말 허무했다. 사람의 죽음이 한 줌의 재가 된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아니 알고 싶지 않아서 귀 닫고 살았지만 화장을 마치고 나온 할머니는 정말 작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커 보이던 여장부는 이제 거기에 없었다. 나를 부르던 '주야~'하던 목소리가 생생한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그냥 너무 허무했다.

 아빠는 처음으로 꺼이꺼이 우셨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너무 아프고 쓰라려 나도 꺼이꺼이 울었다.




조그만 절에 할머니를 모셨다. 5월의 햇살은 작은 절을 따스하게 비췄다. 나는 할머니와의 마음속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절을 나서는데 조그맣고 하얀 나비가 우릴 향해 날아왔다. 

 그 후로 종종 의식하지 않아도 하얀 나비는 나에게 찾아왔다. 산책길에, 운전하는 유리창 앞에, 무심결에 걷는 거리에서. 1,2번의 우연이 아닌 아주 여러 번 마치 날 보고 자길 꼭 보란 듯이 내 눈앞을 바로 스쳐갔다.

그게 어느 순간 할머니 같았다. 그냥 할머니였다.

잘 살고 있다고. 이제 우리 부모님 힘들지 않게 하겠노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냥 그 나비를 볼 때마다 기분이 조금씩 나아졌다. 내 옆 어딘가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그냥 유기적인 무언가로 엮인 듯. 그냥 우리의 영혼이 그러한 것 같아서. 때론 안심이 된다.

내가 죽어도 어딘가에서 내가 아는 사람 곁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는 정의가 생겼다.

( 내가 이 이야기를 후에 여동생에게 하자 자기도 하얀 나비가 의식하지 않아도 많이 보여서 신기해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 )


가끔씩 산책하다가 하얀 나비를 찾게 되면서 우리 할매 생각이 난다.

지금은 훨훨 날아다닐 수 있어서 좋으시죠?

곁에서 지켜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다음 생이 있다면 꼭 여장군으로 태어나 이 생에 못 했던 거 다 해보고 사이소. 



사진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돌아서면 그가 생각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