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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나 Mar 22. 2023

엄마, 나도 합창단 하고 싶었어.

소녀의 합창단 도전기

잘했어. 이 정도면 대회에 나가도 되겠다.


소녀는 동요를 사랑하는 11살. 초등4학년이었다.

각종 동요창작대회가 열리던 시절이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마저 어린이 동요제가 쏟아지던 시절이었다.

서점에 가면 각종 동요제의 악보책이 깔려 있었고 어린이들 사이에선 동요를 즐겨 부르던 시절이었다.


 소녀는 매주 토요일마다 성악 수업을 들었다. 피아노학원에서 매주 토요일에만 열리는 특강이었는데 소녀는 토요일이 무척 기다려질 만큼 설레어했다. 큰 그랜드피아노가 놓여있는 피아노 학원 로비에서 긴 머리 휘날리며 연주하고 있는 예쁜 선생님과 같이 동요를 부르고 배우는 시간이 정말 마냥 좋았다. 선생님은 내 목소리가 맑고 청아하다고 칭찬을 많이 해 주었고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생겨서 정말 행복했다. 소녀는 이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성악의 길로 가야 하는 건가라는 미래를 생각하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열리는 동요대회에도 소녀는 열심히 준비해서 참가했다. 그 시대에 유명한 동요가 아주 많았는데 소녀는 그중에서 가사가 아련한 동요가 좋았다. 그런 동요에 감정을 이입해서 불러서 인지 동요대회의 결과도 좋았다. 마침 지역 내에서 합창단을 만든다는 소식을 선생님께 전해 들었다. 소녀는 합창단에 지원하고 심사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심사날 소녀는 친구와 함께 버스에 올라타 겨우 그곳을 찾아갔다. 한 번도 엄마 없이는 버스를 타본 적이 없었지만 친구와 함께 꿈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마냥 즐거웠다. 마침내 차례가 되어 무대에 올랐다. 소녀는 최선을 다해 손을 가슴 앞에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좌우로 저어가며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아주 예쁘게 불렸다. 소녀는 무대에서 떨지도 않고 즐기는 무대체질이었다.   

  며칠 후 우편으로 통지서가 날아왔는데 결과는 합격.

소녀는 정말 꿈만 같았다. 합창단에 들어가면 예쁜 단체복 치마에 하얀 스타킹과 까만 구두를 신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마침 소녀의 긴 머리도 파마를 한지 얼마 안 돼서 반 묶음 스타일을 하면 딱 어울렸다.

 하지만 소녀의 엄마는 합창단 생활을 반대했다. 비용도 많이 들어가고 거리도 멀어 버스를 타고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기엔 힘에 부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소녀는 세상이 떠나가라 눈이 퉁퉁 불도록 울었다. 내 실력은 이렇게 좋은데 엄마는 인정해주지 않고 못 하게만 한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결국 소녀는 합창단 생활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쁜 옷을 입고 노래는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언젠가는 다시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아마도 그러한 미련이 남아서였을까. 소녀는 못다 한 꿈을 이루기 위해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교내 합창단 생활을 했다. 결국 예쁜 옷은 단정한 교복으로 대체되었지만 소녀는 단원들과 함께 하는 노래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에 행복했다. 무대에 올라서 같은 반주에 화음을 쌓으며 딱딱 떨어지는 음들에 대한 희열이 있었다.

무대 아래에서 우리를 보는 반짝이는 눈빛들과 노래를 듣고 나서 받는 박수가 짜릿했다. 

 고등학교 때는 독하디 독한 선배들에게 혼나가면서 합창 대회를 준비했다. 그 당시에는 선후배 규율이 매우 엄격했고 학교 측에서도 그것을 암묵적으로 지켜주길 바랐다. 그 과정마저도 힘들었지만 우리 학년끼리 더 뭉칠 수 있어서 좋았다. 선배들에게 호되게 혼나가며 힘들게 했던 합창 연습이 끝나면 편의점에서 허한 배를 채워줄 저녁을 사 먹었다. 그때 사 먹던 컵라면과 볶음김치의 맛은 아직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다.




가끔씩 그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미소 짓게 된다. 지금에 와서 나에게 남은 건 그 행복했던 시간들, 모습들이 내 삶에 더 좋은 원동력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을 보던, 우리들에게서 반짝반짝 빛이 나던 시절들 평생 못 잊을 것이다.



어쩜 그때 내가 그 길이 나의 길이라고 굳게 믿고 노력했다면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있었을까?



사진출처 - pixabay,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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