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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나 Mar 29. 2023

반짝 빛나던, 나의 2006년

눈물이 또르륵

 " 이제 자주 좀 만나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와 20대를 같이 보낸 친구들이었다. 서로의 대학 생활과 동아리, 남자친구 관계까지 속속들이 알던 20대에 영혼을 같이 하던 단짝들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을 못 만나서 더 반가운 만남이었다.

 날이 저물어 하늘이 주황빛이던 저녁. 하늘이 예쁘다고 생각하며 라디오를 켜니 음악이 흘러나왔다. 

 

 ♬ 적재 - 반짝 빛나던 나의 2006년.

..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 모든 예쁜 시간들이 보내기 아쉬워서 자꾸 떠올리게 되나 봐     

세상이 하나둘씩 이해되기 시작할 때쯤 더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반짝 빛나던 나의 2006년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이 순간이 왜 난 슬퍼질까 이젠 지나간 나의 2006년.

..


 라디오에서 듣는 음악은 재생하는 음원과 차원이 다른 따스함과 울림이 있다. 그래서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따스한 소리를 좋아한다. 막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데 갑자기 목구멍이 따가워지며 울음이 밀려왔다. 다급히 차를 한적한 좁은 골목어귀에 세웠다. 나의 2006년이 생각났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12의 배수가 되는 나이에 색깔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12살엔 우윳빛, 24살엔 오렌지빛, 36살엔 옅은 파란빛, 48살엔 노란 단풍 빛 60살엔 빨간 장밋빛.


 2006년은 오렌지빛 24살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농구공을 닮은 오렌지빛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치원 교사였다. 어렸을 적부터 하고 싶었던 선생님이란 직업은 초등학생 때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래희망 중 하나였으며 흔히들 선생님을 동경하는 마음에 쉽게 따라 해 볼 수 있는 모델링이었다. 그러한 막연한 마음에 진로를 결정했는데 의외로 나의 적성에 아주 잘 맞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보람된 일이었다. 교실에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나를 주목하는 시선이 좋았다. 내가 새로운 걸 알려주면 아이들은 재미있어하고 나는 그 시간의 주인공이 되어 아이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해 주는 모든 것이 정말 행복했다. 그 시절에 나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뛰어오는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빛에 매료되어 세상을 다 가진 행복을 매일매일 누렸다.

 생글생글 웃으며 수업을 하는 나를 예쁘게 봐주셔서 낮은 연차에도 불구하고 장학수업이라는 것도 하게 되었다. 준비할 때는 매일매일 병원 도장을 찍어가며 다시는 못 할 일이라고 힘들게 준비했지만 많은 분들이 오셔서 내 수업을 참관하고 코멘트해 주는 그 시간이 진정 나의 존재감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고됐다. 원장선생님은 퇴근 30분 전에 회의를 해서 많은 과제를 남겨주고 가셨고 우리는 매일 밤늦게, 때로는 밤을 세가며 그 과제를 완성해야 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아주 많았지만 그땐 그게 법이었고 분위기였다. 초과수당은 커녕 열정페이가 당연히 요구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나만 예쁘게 바라봐주는 남자친구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시선 그대로 예쁘게 봐준다.

그는 학생이었고 난 일을 하니 데이트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잠깐 보겠다며 긴 시간 버스를 타고 와서는 음료를 전해주고 내 얼굴만 잠깐 보고 가는 일이 잦을 만큼 우린 애틋했다. 마음에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든든한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이 넘칠 지경이었다.


 그게 나의 반짝반짝 빛나던 2006년이었다. 뭐 하나 부족함 없이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고 내 일에서는 자부심이 넘쳤고 내 체력도 쌩쌩하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도 참 눈부시게 예쁘던 시절이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 음악이 낯선 노래가 아니었는데도 갑자기 그 시절에 감정 이입이 되어 펑펑 눈물이 나왔다. 아쉽다기보다는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웠다. 당당하고 활발하고 자신감 넘쳤던. 세상 무서울 게 없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세상을 붉게 물들이던 주황빛 노을이 저물고 토닥이듯 은은한 달빛이 집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 주었다.




나의 반짝반짝 빛나던 2006년. 참 고마웠어.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이 넘쳤던 그 시절.
잊지 못할 거야.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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