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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Dec 25. 2020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새소년 - <난춘>


얼마 전, 사주 어플로 2020년 사주를 다시 한번 봤는데, 꽤나 그럴싸했다.

"최대한 몸을 사리며 어려움을 피해야 합니다."


아, 어쩐지.

올해 정말 힘들었지. 특히 일터에서 그동안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고통을 받았고, 아직도 그렇다. 12월은 사무실에서 내내 찡그리고만 있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이브날 갑자기 회사에서 틀어준 캐럴을 듣고도, '시끄러워'라고 생각하며 또 찡그린 채로 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하고도 결국 미결 상태로 마무리하고, 집에 오면서 무의식적으로 새소년의 '난춘'을 부르고 있었다.


"그대여, 부서지지 마"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이 부분만 무한 반복으로 불렀다. 이렇게 희망적인 말을 혼잣말로 하고 있다니, 낯설었다. 순간 낯선 감각이 들어서 어? 하고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힘들면 죽고 싶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올해 중반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 같다. 힘든 상황 속에 놓이면 사라지고 싶었고, 내가 그걸 겪어낼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지금은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잘 살려면 일단 계속 살아는 있어야 하니까, 살아내야 하니까 저 가사가 그렇게 마음에 깊이 남았나 보다. 이상도 하지. 코로나 때문에 죽음이라는 위험이 도처에 깔려있고,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분노할 만한 사건도 유난히 많았던 한 해였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삶에 대한 욕망이 크다. 왜?


올해를 돌아보면, 성취와 연결의 경험으로 가득했다. 성취부터 말하자면,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했고, 뭔가 만들어내는 맛에 도취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아주 느슨히 글을 적고, 빌라선샤인 '글 쓰는 페미니스트' 모임에서 편지 형식의 페미니즘 글을 썼고, 최근에는 브런치에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0'의 상태에서 내가 내 뇌를 굴리고, 손가락을 움직여서 무언가 만들어내는 경험은 내게 아주 큰 숨통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내가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줘서 앞으로도 숨을 쉬며 살아나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달까.


이런 성취의 과정에는 수많은 연결 경험이 있었기에 더 의미 있다. 빌라선샤인이라는 일하는 여성 커뮤니티에 들어가면서 내가 만나보지 못한 다양한 여성들과 연결되었다. 우리끼리의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의 일, 생각, 근황, 실용적인 정보 등을 주고받는 것과 그냥 그들을 보는 것 자체로 나도 덩달아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려 깊은 언어로 느슨하지만 다정한 지지가 가득했기 때문에 나도 마음 편히 나와 나의 성취물을 꺼내 보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파고들며 나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엔 '어떻게 해야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지난 몇 년 동안 가득했는데, '잘 살고 싶다. 잘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으로 전환됐던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은 힘들 거다. 일터에서의 나날도, 사회도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으니까. 다만, 부서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 내가 부서지지 않는지도 알게 되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라는 낙관주의를 품고 있다. 새해를 앞두고 늘 '올해보다는 덜 힘들면 좋겠다.'하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호기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나는 앞으로 어떤 걸 만들어내고, 어떤 기회를 잡고, 어떤 삶을 살아갈까 궁금하다.



끝으로 다시 한번 <난춘>의 가사를 읊조려 보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얼레벌레 2020년 회고와 2021년 맞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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