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집 근처 길거리에서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나의 옷차림을 조롱했다. 늦은 밤이었고, 나는 린넨 와이드 팬츠를 입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원한 와이드 팬츠였다. 앞에 걸어가는 남자 둘을 앞질러 가는 그 순간, 그들은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요즘 여자들은 와이드 팬츠가 유행인가 봐? 옛날엔 스키니진이었는데~~"
명백히 나의 바지를 보고 하는 이야기였다. 나와 그들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으므로, 나에게 그 이야기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다. 그런데도 그렇게 이야기 한 건 내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늦은 밤이었고,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심지어 상대는 남자 둘이었고, 집 근처였기에 나는 반격할 수 없었다. 네가 뭔데 내 옷차림을 평가하고, 조롱하느냐고 따질 수 없었다. 그랬다간 나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테니까 나는 못 들은 척 집으로 향했다. 그전보다 좀 더 빠른 발걸음으로. 그러다 든 생각 '내가 만약 마동석이었다면, 그들은 나에게 그렇게 무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며칠 후, 자려고 누웠는데 창밖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술 마신 아저씨가 또 주정을 부리는구나 하고 내다봤는데,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여자였다.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아서 정확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아서 신고를 망설이고 있던 찰나에 때리는 소리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손을 달달 떨며 112를 눌렀고,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눌러가며 경찰에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이 오기까지 더 이상 그가 여자를 때리지 않기를 속으로 빌고만 있었다. 내가 나가서 말릴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았다.
다행히 금방 경찰이 왔고, 그는 술 마시다가 싸운 것뿐이라며 변명했다. 지랄이다. 하여튼 그는 열심히 변명하다가 내가 사는 집을 손가락질하며 무언가 말했고, 그 순간 나는 겁먹었다. '여기 사는 사람이 신고한 거 아니냐고 묻는 건가? 보복하려는 거 아니야?'라는 걱정이 들어서 창문에서 멀리 떨어져 숨어 있었다. 그는 취했고, 내 방의 불은 꺼져 있었기에 어디서 신고했는지 찾을 수야 없었겠지만, 그 순간 나는 보복을 두려워했다. 그렇게 숨어있던 탓에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가벼운 훈방 조치로 끝났을 테지. 그러다 또 마동석을 떠올렸다. '내가 만약 마동석이었다면, 여자가 맞기 전에 나가서 막았을 텐데'
근육질의, 비장애인의 그는 (심지어 남성의 '형님'으로 추앙받기까지 하는 그는) 이렇게 종종 여성의 가설에 등장한다.
'내가 만약 마동석이었다면, 이렇게 조롱당하지 않을 텐데'
'내가 만약 마동석이었다면, 이렇게 못 본 척, 못 들은 척 지나가지 않았을 텐데'
여자들이 택배나 배달을 시킬 때, 받는 사람 이름에 '곽두팔'과 같은 거친 느낌의 이름을 넣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공격당하는 일을 살면서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허구의 이름을 걸고, 허구의 상상을 한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존재라면, 좀 더 강해 보이는 존재라면 같은 일을 겪었을까?
나의 피해의식이면 좋겠다, 차라리. 그러나 이건 보통의 이야기이다. 현실 속 여성들이 겪는 보통의 두려움이고, 보통의 가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