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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Mar 23. 2024

사상이 달라도 대화할 수 있을까?

<사상검증 구역: 더 커뮤니티>가 던진 것들

사상이 달라도 대화할 수 있을까?

평소 나와 사상(특히 젠더)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꺼렸고, 열심히 피해왔다. 대화를 해봤자 피곤하고, 싸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경험적으로도 그랬고… 생각해 보면, 대화를 피했다기보다는 싸움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더 커뮤니티에선 의견 충돌이 너무나 당연한 환경이다. 시간은 없고, 모든 논의가 이들의 생존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 대화 한다.

이들의 대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자기주장을 아주 잘 말한다는 점이다. 나름의 논리와 근거를 갖춰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한다. 그러니 대화가 가능한 거겠지? 처음엔 다른 생각이어서 경계하면서 듣다가 이야기를 들으며 ‘그치, 그 말도 맞네'하고 끄덕이게 된다. 나와 반대편의 주장도 듣다 보면 ‘방식이 다를 뿐이지, 공동체 주민을 지키기 위한 것은 똑같은 것이구나'처럼 이해하게 되고, 나랑 같은 편의 주장을 듣다가는 ‘아, 근데 이건 좀 논리가 약하긴 하다'처럼 비판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심지어 익명 채팅에서도 젠틀하게 진짜 토론을 한다. 현실 속 익명의 공간에선 다들 ‘조롱과 비웃음’이 디폴트 토론이 거의 이뤄지기 어렵다. 따라서 익명의 젠틀한 토론은 왜곡된 현실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메라로 채팅하는 모습이 촬영되고 있고, 시청자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다 알려지기 때문에 완전한 익명은 아니다. 당연히 날 것 그대로의 익명 채팅 자체가 어려웠던 게 아닐까 싶다.  


소제목을 의문형으로 쓴 것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더 커뮤니티의 출연자들처럼 자기주장을 잘 말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기도 하고, 현실에선 대화 자체에 권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대화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사회적 배경과 권력이 모두 제거된 특수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경험적으로도 대면해서 대화를 나눠도 진창 속에서 평행선을 각자 달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에 확신하기 어렵다. 다만, 시청자로 하여금 ‘대화할 수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결론 내렸던 것을 ‘대화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형으로 바꾼 것 자체에 큰 의의가 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난 직후엔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피해왔던 것을 반성하기도 했으나, 누구나 그렇듯 나름의 납득 가능한 이유가 있기에 자책하진 않는다.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고 난 후,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으니까.


모종의 사건을 겪으며 그들에게 나는 먹잇감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불가하다고 결론 내렸고, 모르는 이와 얘기를 나누며 언뜻 생각이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재빠르게 거리를 두고, 속으로 ‘상종도 못할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과의 대화를 차단한 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이 프로그램을 보고 그들과 대화를 해야겠다는 대단한 결심이 서진 않는다.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적어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물어볼 수는 있겠다. 서로의 ‘왜’를 파고들다 보면,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고, 나나 그들이나 얘기하면서 스스로 오류가 있는 부분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대화인 것 아닐까. 그러나 공격성이 배제된 대화가 가능할 것인가… 그게 걱정되고 궁금하다.



어디에나 소외된 자는 있다

유난히 발언을 많이 하고 목소리가 큰 참여자들이 있다. 대부분의 논의에서 발언하고, 나머지 참여자는 이들의 공방을 눈치 보며 지켜보고 있는 식인데, 현실적이었다.


특히 발언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엘리트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점도 흥미롭고 징그러운 포인트였다. 자기주장을 잘 말하도록 훈련되어 있다는 것은 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는 의미이고, 눈치 보지 않고 바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이 어느 정도 사회적 권력이 높은 이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바로 거침없이 발언할 수 있었을 것.


종신 리더(일종의 대통령)를 뽑는 절차가 있는데, 각 후보가 지지 세력을 얻기 위해 유세를 해야 하던 때 있었던 사건을 같이 소개하고 싶다. 출연자 A를 지지하는 B에게 사람들 마음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서 “소외된 이들이 있다. 이들이 소외된다고 느낄 것이다. 다음 논의부터는 네가 좀 조용히 있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B도 인정하며 “조용히 있어 줘야겠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조금 엘리트주의의 징그러움이 느껴졌달까… 자신도 모르게 발언을 많이 한 것에 대한 자각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해줘야겠다’고 말한 부분에서 이들을 시혜적으로 보는 듯해서 그가 가진 일종의 권력이 느껴졌다.


목소리를 거의 듣기 힘들었던 출연자들을 보면서 이 모습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딜 가나, 하다 못해 작은 모임에 나가도 목소리 큰 사람들이 그 자리를 주도하니까.



당사자의 경험이 배제된 논의는 안 하느니 못하다

출연자들은 1명을 제외하고 연봉 5천만 원 이상을 버는데, 이 사실이 공개되고 난 후 ‘빈곤의 가장 큰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라는 명제로 익명 채팅을 한다. 이 토론은 정말 재미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 누구도 빈곤에 대해 알지 못하는 채로 빙빙 도는 얘기만 했기 때문이다. 또는 빈곤을 겪는 당사자를 아예 배제한 채, 거시적인 관점의 이야기만 주고받으며 전혀 설득되지 않는 주장들이 이어졌다.


이 토론을 지켜보고 있던 출연자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는데, 정말 필요했던 메시지다.

“빈곤 문제에 있어서 가장 답답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빈곤에 대한 논의가 너무 자주 빈곤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


“아까 저녁 먹을 때 우리 연봉이 공개된 것 보고 놀랐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빈곤에 대한… 이전보다 훨씬 디테일이 부족한 토론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계급 문제가 저에게 너무 중요한 이슈라 참여할까 말까 하다가 결국 감정적이 될까 하지 않았는데 참여해서 더 많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듭니다”


“복지제도가 이렇게 잘 되어있는데 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냐고 물으신다면… 복지제도가 있다는 정보를 모르기 때문이고, 누군가 나를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고, 주민센터가 문을 여는 시간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이고, 복지제도를 쓰려면 내 명의의 통장이 있어야 하는데 압류된 상태이거나 신용불량자이거나 혹은 이 문제를 해결할 때 사용할 인터넷이, 컴퓨터가 없어서 등… 다양한 상황들이 제겐 떠오르네요.”


당사자의 경험이 배제된 논의는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잘 보여줬던 에피소드였고, 나 역시 많이 반성했다. 나도 쓸모없는 얘기를 참 많이 하고 다녔구나. 특히 복지 전공자로서, 비영리기관에서 복지 사업을 기획하던 실무자로서 가졌던 오만함이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람은 입체적이다

우파지만, 이주민 수용에는 우호적인 출연자를 보며 특히 이 생각을 많이 했다. 우파라면 당연히 이주민에 닫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놀랐는데, 그가 이민자로서 겪었던 차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주민에 우호적인 것이었다. 경험은 사상을 이긴다.


어떤 사람과 사상이 안 맞는다고 느낄 때, 거의 손절하는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손절해 온 사람들 중 젠더적으로는 나와 맞지 않았지만, 또 다른 사상 차원에서는 같은 결의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상이 다르다고 해도 특정 이슈에 있어서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한 가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 자체를 잘라내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꽤나 극단적이었던 거구나.

                    


보면서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을 후루룩 적어 보았다. 더 멋들어지게 공들여 쓸까 싶다가 그러다간 영영 글을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일단 던졌다.


이 프로그램은 분명 "왜곡된 현실"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들이 있다. 그래도 시청자에게 생각해 볼 만한 질문들을 던지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콘텐츠임이 분명하다. 좋은 콘텐츠를 만든 이들에게 부러움 섞인 박수를 보내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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