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 Oct 05. 2021

오늘도 일을 마치고

letter no.1

10월부터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달은 시력교정 수술을 받아 눈을 회복해야 하기도 했고 출근 날짜를 받아놓자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진 탓에 활자를 멀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얀 화면 위에 처음 무슨 말을 올려놓으며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또 쓰는 근육이 없어진 것처럼요.


퇴근 후에 얼마나 시간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쓰고 있는 글이니까요. 이 글은 당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자 아직 만나지 않은 당신에게 먼저 띄우는 편지입니다.


사무실 세팅을 끝내고 본격적인 업무  업무 구상을 하면서 오랜만에 충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쩔 수가 없나 봐요. 어쩔  없이 저는  일을 가장 잘하면서 가장 좋아하나 봐요. 저는 현재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아이템을 논의할  있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양하게 경험을 해왔던 저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영화면 영화, 드라마면 드라마. 하나의 고착된 전문성보다는 필드를 넘나드는 유연한 정체성을 가지고 싶습니다.  


이때까진 정해진 공식대로 짜인 판에서 놀았다면 지금은 조금쯤은 화학작용을 기대해볼 법한 가능성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 가능성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열심히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직을 하면서 몇 가지 다짐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은 '말 그릇'이 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말 그릇'은 <말 그릇>(김윤나 작가)이란 책에서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들, 다양성을 고려하며 유연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말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부른다. 말을 담아내는 그릇이 넉넉한 사람 말이다. 말은 한 사람이 가꾸어 온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말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내면이 성장해야 한다.

<말 그릇: 비울 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김윤나


인간관계가 전부나 마찬가지인 일을 하고 있는 저에게 '말'이란 천금의 무게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로 상처 받은 무수한 기억들이 떠오름과 동시에 나는 그럼 얼마나 말을 '잘'했던가를 돌이켜보았으나 처참했습니다. 더 이상 안 좋은 말을 입에 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대화하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안 좋은 말을 들어도 저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인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을 향한 것임을 꼭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재미있고 돈을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누군가를 상처 입히거나 세상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욕심이지만 레이어가 없고 얄팍한 것이 싫기도 합니다.


이러한 다짐들과 함께  의욕적이고 빠르게 일을 진행하는 분위기와 또래 동료들이 있는 이곳에서의 나날들이 기대가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정말로 오랜만에 기다려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