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2024
극장마다 상영시간 극악인데 마침 코엑스 갔을 때 시간이 맞아떨어져서 정보 없이 관람. 애초 이 영화는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를 위한 기획이었고, 기획에 의미를 느낀 야쿠쇼 코지가 함께 하게 되었으며, 빔벤더스 감독은 후에 연출로 합류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요즘 인간의 똥오줌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 보는 컨텐츠마다 이런 소재가 등장해서 이 무슨 기묘한 인연이 행렬인가 하고 느끼는 중. 아우슈비츠부터 (그 어떤 영화에서도 똥오줌을 묘사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화장실 언급이 불필요한 애니메이션 <던전밥>에서도.
먹는 것에 대해 다룬 <더베어> 시즌3 정주행을 마친 것까지 합치면 대충 공통점이 보인다. 먹는 것, 배설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핵심이자 가장 심오한 부분이기 때문이고, 내가 요즘 가장 인간적인 컨텐츠들에 끌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화는 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의 매우 철저하고 단조로운 루틴을 두 시간 내내 보여준다. 물론 항상 같지 않고 조금씩 변하는데 그때마다 히라야마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얻게 된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의 히라야마의 클로즈업을 보는 순간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히라야마 씨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퍼펙트한 나날!'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는 낮잡아볼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같은 루틴을 유지하는 일상은 평온했으나 이 평온을 만들어낼 때까지 그가 얼마나 치열하고,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처럼 자신을 위해 완벽에 가깝게 만든 삶조차도 사실은 영원하지 않다, 결국은 시간에 혹은 사소한 무언가에 무너지기 십상이라는 것을 끝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때 나는 하루를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내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이처럼 삶이 요동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그럴 일은 결단코 없다. 영화에서는 부단히 오늘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처절한 인간적 결의가 느껴졌다. 근원적인 불안을 계속 마주하면서도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결의.
대사라곤 거의 없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역시 조카에게 했던 말이다. 지금 바다를 보러 가자는 조카에게 히라야마는 다음에라고 대답한다. 조카가 다음에 언제라고 묻자, 히라야마는 대답한다.
“다음에는 다음에. 지금은 지금”
지금 이 순간을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곳에 머무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도 인생의 다음은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영화 기획에 있어 다큐멘터리적 요소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해 보자고 영감을 주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상업 기획 영화(하이콘셉트)가 지나치게 코드화된 것에 대해 점점 회의적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기 때문. 제 존재하는 사람을 등장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기획자, 감독, 배우 모두. 관객은 조만간 ‘진짜’를 찾게 될 것이므로.
+ 포스터는 좀 더 내가 느낀 영화의 핵심에 가까운 것으로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