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그린 나이트>의 결말 및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십 대가 넘어서부터 웬만한 영화가 아니고서는 열광하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업으로까지 삼고 있으니 영화를 볼 때 '이 부분이 좋은 반면, 이 부분은 아니다'라고 분석하게 된다. 다 좋은 영화도 없고, 다 나쁜 영화도 없다. 딱 세 씬. 정말 죽이는 장면 세 씬만 있으면 내 기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왜? 그 영화를 홀딱 반해버리게 만드는 조건이니까.
그래서 요즘은 그동안 못 보고 지나쳤던 영화를 보거나, 오래전에 내가 좋아했던 영화를 다시 보며 내 취향을 재정립 중이었더랬다. 그러다 며칠 전 업무 이야기를 주고받던 동료가 메신저 도중에 뜬금없이 '피디님 영화 <그린 나이트> 강추'라는 것이다. 얼마나 추천하고 싶었으면 갑자기?!
낯선 제목이라 당장 포털 사이에 검색을 했더니 강렬한 포스터와 함께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정보가 뜬다. 다행히 초록색 밤이 아니라 초록색 기사였다. 왜 다행이었냐 하면 나는 약간의 서양 중세와 시대극 덕후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매년 겨울 개봉하는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보며 자란 세대이기도 하고 말이다. 특히 아서왕 이야기? 사랑하지. 아서왕 이야기 중에는 가이 리치가 연출한 깡패 버전 아서왕 <킹 아서>를 좋아한다. 다만 <그린 나이트>는 아서왕의 후계자이자 조카, 가웨인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는 해당 문화권이 아닌 우리에게는 낯선 이야기였다. 단,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영화 <고스트 스토리>로 날 1시간 동안 당황시켰던 감독이어서 영화의 톤이 어떨지는 대충은 예상이 되었다. 갑자기 모험심이 불타올랐다.
크리스마스에 녹색의 기사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의 연회에 찾아와 게임을 제안한다. 자신의 목을 내리치는 사람에게 부와 명예를 주겠다는 것이다. 대신 1년 후의 크리스마스에 자신을 찾아와 똑같이 목이 잘려야 한다. 무용담이 필요했던 젊은 가웨인이 이에 응하고 아서왕은 그저 게임일 뿐이라고 충고하며 자신의 검을 빌려준다. 하지만 녹색의 기사는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목을 내밀고 가웨인은 조건을 알고 있음에도 녹색의 기사의 목을 참수해버린다. 기사는 떨어진 자신의 목을 들고 녹색 예배당에서 1년 후 가웨인을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말을 타고 떠난다. 가웨인은 기사로서의 명예를 위해 약속을 지키러 녹색의 기사를 만나러 가야만 한다. 약속대로 자신 역시 목이 참수되어 죽는 여정을 향해 가는 것이다.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은 녹색의 기사의 게임은 영웅 서사, 신화 서사를 연상케 하고 결국 인물, 가웨인을 시험에 들게 만든다. 하지만 가웨인은 원전에서 알려져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영웅도 아닐뿐더러 아직 기사도 아니다. 고상하지도 않고 방탕하다. 치사스럽고 쪼잔하다. 우리가 영화에서 늘 보아오던 위대한 여정을 떠나 영웅이 되어 돌아올 자가 아니다. 영웅담을 가지고 돌아오라고 마지못해 내몰린 보통의 사람이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슬슬 여정을 떠나라고 아서왕은 종용한다. 위업을 달성하라고.
가웨인이 두려움에 떨며 말한다. "제가 위대한 자가 아닐까 봐 두려워요."
그리고 가웨인은 실제로 성 밖에서의 수많은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는 동시에 여정 내내 받은 것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고, 도덕성에 결함이 있으며, 여인의 유혹에 넘어간다. 이 장면의 연출이 예술이다. 녹색 예배당을 반나절 근처에 둔 성에서 머물게 된 가웨인을 성주의 아내가 유혹한다. 그녀는 녹색의 기사에게 해를 당하지 않을 마법의 녹색 허리띠를 만들었다고 하며 자신의 허리에 감고 있다. 마법을 믿냐는 말에, 가웨인은 믿는다고 말한다. 허리띠를 가지고 싶냐고 묻자, 절박하게 갖고 싶다고 말한다. 결국 격한 욕망과 욕정에 사로 잡힌 가웨인이 그녀의 허리에 두른 허리띠를 끊어버린다. 다양한 메타포를 품은 녹색 허리띠를 가지고 수치심을 느낀 가웨인은 바로 녹색 기사를 만나러 간다.
신비로운 녹색의 예배당에서 녹색의 기사는 예배당과 일체가 된 것처럼 졸고 있다. 이윽고 시간이 다가오자 그가 일어서서 게임을 마치기 위해 도끼를 들어 올린다. 하지만 가웨인은 잠깐! 이라면서 시간을 달라고 한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안 되겠다고 하면서 달아난 가웨인은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후의 그의 인생이 몽타주로 펼쳐진다. 왕으로 즉위하고, 애인을 버리고, 새 왕비를 들이고,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백성들에게 신망을 잃고, 국가는 쇠락했다. 이윽고 적국이 성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직전이다. 가웨인은 그때서야 한 번도 벗지 않고 있던 녹색 허리띠를 뜯어내고 목이 댕겅 잘린다.
그리고 이 장면은 판타지 장면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가웨인은 아직 도망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녹색 허리끈을 푼다. 준비가 되었다고 하는 그를 보고 녹색의 기사는 용감한 기사라고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녹색의 기사가 도끼를 들어 올리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원작과 달리 각색된 그린 나이트에서는 가웨인은 결국 녹색의 기사와의 약속을 지키고 명예를 지키면서 진정한 기사가 되는 죽음을 택한다. 죽는 장면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아마도 마지막 장면 다음에 블랙이 되면서 목이 잘리는 것이 이야기의 완결이라고 생각한다.
녹색의 기사에게 죽지 않고 돌아가서 삶을 산 후에 죽든 녹색의 기사에게 지금 죽든 결국 죽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그 몽타주 장면은 너무 아름답게 만들어졌지만 잔혹했다. 가웨인의 얼굴에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니 언젠가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라고 해야 할까. 수치심을 안고 기사 임명을 받고 왕으로 즉위했고, 애인에게서 아이를 빼앗고 그녀를 버려야 했고, 전쟁을 이끌어야 했고, 왕좌에 앉아 있지만 성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성주의 아내는 말했다. 초록은 생명의 색이지만 동시에 부패의 색이다.
욕망의 붉은색이 지나간 흔적엔 초록이 남는다고. 즉 초록은 생명이기도 하지만 죽음이기도 하다.
그 판타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비전. 아마도 녹색의 기사의 도끼 앞에서 가웨인의 머릿속에 스쳤을 비전은 너무나 허망했다. 삶의 많은 것들, 축복들, 욕망과 사명이 이루어진 들 무슨 소용일까. 결국에 찾아오는 것은 죽음이다. 어쩌면 애초에 가웨인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녹색의 기사가 게임을 제안했을 때부터 그의 목을 내리치지 않았으면 됐었다. 등가교환 조건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방 때리고 끝났으면 됐을 걸 굳이 목을 쳤다. 그 끝은 죽음 혹은 부패 끝에 참수뿐이다. 가웨인은 선택했다. 자신을 지켜준다고 하는, 삶이라 상징되는 초록 허리끈을 풀어낸다. 결코 부패하고 퇴락하고 영락하여 다른 이에게 참수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명예롭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하여 죽음으로 기사가 된다.
그리하여 왜 이 영화가 나의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인가? 아직 8월인데 너무 섣부른 것 아닌가?
1.
영화 <고스트 스토리>가 남은 한 시간을 두 시간으로 느끼게 만들었다면 이 영화는 130분을 두 시간 채 안 되는 영화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분명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영화는 아닌데 영웅담을 비틀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구조가 계속 흥미를 자극한다. 미장센과 이 감독만의 톤 앤 매너가 너무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그 모든 요소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아주 절묘하다. 동시에 위트가 있어 마냥 무겁지도 않다.
2.
무엇보다 좋았던 건 아무래도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서두에 던진 이야기는 그런 것이었다. 영화를 봐도 완전히 열광하는 영화를 만나는 건 이제 쉽지 않다는 것.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내 마음 안에 받아들이는 영화의 테마가 바뀌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조를 느낀 건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부터였던 것 같고, 올해는 영화 <노매드 랜드>가 그랬다. 삶은 복잡하고 불가해하고 부조리하다. 혼돈이다. 극적이지 않을 뿐이지 온통 들끓고 뒤섞여 있는 늪 같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들이 나에게 위안을 준다.
3.
나는 필멸의 존재이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 죽음 앞에서 생이란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알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만큼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을 직시하는 것이란 결국 본인이 유한한 존재 즉 한계가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한다. 죽음을 직시해야만 스스로를 괴롭히는 에고와 집착과 욕망을 다스릴 수 있고, 용감해질 수 있다. 마치 허리띠를 벗고 목을 내놓은 가웨인처럼.
4.
사실 녹색의 기사도 가웨인의 여정도 모두 가웨인의 어머니가 세팅한 무대다. 물론 아들이 녹색의 기사의 목을 칠 줄은 몰랐지만. 가웨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이쯤 했으면 됐으니 돌아오길 바랬다. 그럴듯한 영웅담 하나 가지고 왕위를 물려받길 원했을 테니까. 하지만 가웨인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영웅담이 아닌 죽음으로 끝나는 자신의 진짜 영웅담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결국 자신의 길은 누군가가 봤을 때 보기 좋거나 명예로운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진실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처럼 내게 해석되었다. 설령 그것이 죽음일지언정. 속임수와 거짓과 수치는 결국 찾아올 죽음이 심판하게 될 것이다. 가웨인이 잠깐 사이에 본 비전처럼.
5.
그리하여 모든 면에서 이 영화 <그린 나이트>는 2021년 올해 내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숱한 '보통사람' 중 하나인 나도 영화를 보며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필멸의 존재이기에 우리의 삶 속에 모든 선택에 용기를 낼 수 있으며 그렇게 자신 만의 영웅담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추천해준 동료에게 감사를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