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니와 준하>
7월 초입부터 무더위가 목을 꽉 조여왔다. 남쪽 지방에는 비 피해가 컸으나 서울은 그저 흐렸고 마치 수조 안을 걷는 것처럼 몹시 습했다. 마스크는 고문하기 위해 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날씨가 부쩍 지독해지면 환경오염 탓 때문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어두워진다. 그래도 나는 기억하고 싶었다. 기억해주길 바란다. 먼 훗날의 내가.
성인이 되기 전에 본 영화가 특별한 것은 아무래도 영화를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삶을 살아갈까 상상하고 꿈꿨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본 영화의 장소, 내가 본 영화 속의 삶, 내가 본 영화 같은 사람, 내가 본 영화 같은 순간. 여름을 맞이하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여름'하면 꺼내보여 줄 수 있는 영화가 무엇이 있을까? 머릿속에 수많은 프레임들이 스친다. 너무 많다. 그래도 굳이 꼭 한 편을 골라 누군가에게 영화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전한다면 나는 한국영화 <와니와 준하>를 고를 것이다.
김희선이라는 배우는 당시 영화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불운의 배우였고, 내게도 영화배우로는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상대역인 주진모 배우도 딱히 선호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당시 조승우 배우의 열렬한 팬이었던 나는 영화광이라면 늘 하곤 하는 '배우 필모그래피 섭렵'하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2001년에 나온 이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의 발칙한 '동거'스토리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동거의 인식이 지금과는 천지차이였으니 마케팅 포인트가 될만했다. 실제 개봉 시기보다 더 늦게 본 나에게도 그 마케팅 포인트는 유효했었다. 아무래도 동거하는 연인의 이야기는 미성년자인 소녀에게는 달콤하고 다소 섹슈얼한 판타지였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마케팅에서 내세운 것과는 달리 영화 속에서 동거하는 두 사람은 꽤나 담백하게 살고 있다. 와니, 완희는 감정 표현에 조금 서툰 애니메이터이고, 준하는 출근하는 완희 대신 집안일을 하며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다. 츤데레 냉미녀와 순둥한 대형견 커플이라고 하면 한 번에 이해가 될까?
완희의 직업이 애니메이터임을 착안해 오프닝 시퀀스는 수채화 풍의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되어있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에 있는 (춘천이 배경이다) 정감 가는 단독주택에서 동거하는 연인은 매일 같이 장을 보고 밥을 해 먹는다. 두 사람 다 예술계통의 일을 한다. 둘 다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 것 같지 않지만 행복해 보인다. 그들의 일상은 푸르른 여름 속에서 아름답게 시작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여름을 한껏 품고 내 안으로 뛰어들어왔고 당시 미성년자였던 내게 직업과 사랑의 환상을 가지게 했다.
일찍부터 영화전공을 하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일까. 애니메이터인 완희의 직업이, 완희가 멋있었다. 꾸미지 않은 쿨한 스타일이 좋았다. 마감에 치여 신경질적인 모습이 되는 것도, 자료를 보다가 헤드폰을 끼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도, 몽당연필을 병에 모아두는 것도 멋있었다. 마감을 끝내고 회사 옥상의 평상에 드러누워 버리는 것, 커피를 마시며 동료들과 세상 다 산 것처럼 일 얘기를 하는 것도. 아직 학생인 내게는 꿈이었다. 지금은 지긋지긋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나는 선망했었다. 일이 있는 세상을.
동시에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사랑을 알게 되기를 꿈꾸었다. 와니와 준하 두 사람이 동거하는 2층 단독주택은 원래 완희가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었고 이 집에는 준하가 열 수 없었던 방이 하나 있었다. 완희의 남동생, 영민의 귀국 소식과 함께 그 방의 문이 열리면서 완희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한다. 완희는 그 방과 함께 아픈 기억을 모조리 봉인해 두었던 것이다. 그렇게 칼날 같았던 아픔이 사랑이었을까. 노란 모자를 쓰고 준하를 만나러 가는 기차에서 완희의 밝은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영화의 제목이 와니와 준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이 영화가 멜로 영화이면서 성장영화 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랑을 알게 되기를 꿈꿨다. 하루하루 숨 쉬듯이 쌓아가는 사랑을 알고 싶었다.
다만 나는 일의 세상은 알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완희의 남동생, 영민이 완희에게 하는 대사다. (그리고 영민을 조승우 배우가 연기했다!) 내게 이 대사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느껴졌다. 결국엔 나 좋을 대로 살아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고. 좋아해도 잘하지 못하면 직업이 될 수 없고, 잘하더라도 좋아하지 못하면 계속할 수 없는 것 아닐까. 10대의 내게 30대의 나는 그렇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영민의 말은 그냥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일 뿐이라고.
영화는 여름에서 시작해 과거의 여름을 맴돌다 다시 여름에서 끝난다. 영화 속에 모든 여름의 얼굴이 담겨있다. 눈부시게 청량한 여름, 짜증 나게 더운 여름, 땀으로 숨 막히는 여름, 시리도록 푸른 여름, 장맛비로 떠내려갈 것 같은 여름,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늦여름. 그 모든 여름의 얼굴이 영화의 주인공 와니, 완희의 감정선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동시에 준하와 주변 인물들과도 공명한다.
연인들은 우여곡절을 겪고 결국 준하는 완희의 집을 떠난다. 연인이 떠난 텅 빈 집에 완희는 비를 맞고 돌아온다. 냉장고에는 준하가 남겨놓은 메시지가 붙어있다. 떠나는 중에도 자신의 걱정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 없이 꾹꾹 눌러 담고만 있던 완희가 울음을 터뜨린다. 크게 소리를 내며 주저 앉아 운다. 이제야 자신을 되찾은 듯이. 이제야 깨달은 듯이. 시원한 장대비 소리처럼 시원하고 가슴 아픈 울음소리가 준하를 찾는다. 이 장면은 캐릭터가 헤어진 연인에게 돌아가는 전환점이자 폭발적인 연기로 배우를 재발견하게 해 준 장면이다.
- 언급하지 않은 스토리의 핵심 설정이 절절하다.
- 20년 전의 영화지만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 미술과 음악이 정말 좋다. 보고 나면 영화 속 여름의 풍경이 머릿속을 흐른다.
어떤 계절에 봐야 할 영화란 것이 있을까. 영화란 사람의 기억과 닮아 있어서 결국 본 사람의 기억에 의해 재조명될 뿐이다. 길고 길어서 끝날 것 같지 않은 계절도 결국은 바뀌기 마련이고, 영화 속 인물은 정해진 시간대로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많은 것이 분명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상 속에 그런 것쯤 하나는 우리의 위로가 되어도 좋지 않은지. 그래서 우리는 아마도 내 삶의 몇 시간을 영화에 할애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