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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Jul 16. 2021

욕망의 초록과 비밀

영화 <위대한 유산> (1998)

방과 후 소녀들의 비디오 모임


아직 시내에 나가서 놀기엔 어렸고 용돈도 부족했던 중학생 1~2학년. 나는 심심찮게 "우리 집에서 비디오나 볼까?"라며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양옥 2층 집인 덕분에 2층은 가족들이 저녁에 귀가하기 전, 나와 내 친구들이 독차지할 수 있는 아지트나 다름없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빨간 띠만 아니면 대체로 관대하게 빌려주는 편이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가끔 빨간 띠라도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엄마나 언니가 대신 빌려다 주기도 했다. (이를테면 <지구를 지켜라>나 <올드보이> 같은 것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우리 집안 여자들은 모여서 관람가와 상관없이 비디오를 봤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혹은 어린 딸 혹은 동생이 옆에서 뭘 보고 있든 신경도 쓰지 않았거나.   


그렇게 우리 집에 입성하는 친구들은 나의 추천으로 무조건 이 영화 <위대한 유산>을 보아야만 했다. 이미 학교에서부터 떡밥은 다 깔아놨다. 아주 죽이는 영화가 있다고. 보면 너네도 좋아 죽을 거라고. 아 그런데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사춘기 남자애들이 포르노 영화를 어디서 구했네마네 하며 돌려보며 킬킬거리는 장면의 클리셰.


하지만 나의 추억은 단호하게 그런 빨간 비디오 클리셰가 아니었다고 자부한다. 우리는 여자 중학교의 소녀들이었고, 내가 그렇게 주입식으로 친구들에게 추천한 영화는 무려 진작에 이 영화에 매혹돼서 원작을 보고 싶어 초5 때 지역 도서관의 독서 클럽에서 선택한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원작이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그래비티>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더 말해볼까? 주연배우. 에단 호크, 기네스 펠트로, 로버트 드니로. 게임 끝.


상반신 누드 사진으로 대여할 때마다 민망했던 국내 포스터와 내가 좋아하는 해외 포스터. '핀이 그린 에스텔라'

 

욕망의 초록과 에로틱


이 영화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 두 가지는 강렬하다 못해 집착적인 초록의 미장센과 에로틱이다. 소녀들은 주인공 핀과 에스텔라 아역배우들의 분수대 딥키스 장면부터 숨을 헉하고 삼켰다.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할리우드 아역배우들의 인권이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해 걱정했지만 아름다운 장면임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된 에스텔라가 자신에게 푹 빠져있는 핀을 유혹하는 눈짓, 몸짓, 말투 하나하나가 관능적이었다. 담배를 빌려 피는 모습부터, 갑자기 핀의 집으로 들이닥쳐 옷을 벗고 누드모델을 자처하다 금세 시계를 보고 심드렁하게 옷을 입고 떠나는 모습, 드디어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달아나버리는 불가해함. 에스텔라는 노라 딘스무어 여사에 의해 남자에게 복수하고자 팜므파탈로 철저하게 키워진 존재였고 여기에 놀아나는 핀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소녀들의 입도 바짝바짝 타오르게 했다. 아마도 내가 어렸기 때문에 더 강렬하지 않았을까? 성인이 된 후에 본 여럿 관능적인 영화도 이보다 강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청소년 시절 내게 이해할 수 없는 여자 주인공 2명은 영화 <위대한 유산>의 에스텔라와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였으니까 말이다. 이런 역할을 기네스 펠트로가 맡았던 것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스타였기에 당연한 캐스팅 수순이었을 수는 있겠지만, 노블한 마스크와 일견 냉랭하면서 햇살처럼 따스한 느낌이 배우 자체로 캐릭터를 설명해 버린다. 딘스무어에 의해 뒤틀려버렸지만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그런데도 무력한, 안타까운 그 에스텔라를.



초록은 욕망의 색이다. 자연이나 생명을 연상하게 하는 색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자연이나 생명이나 얼마나 질기고, 집착적이고, 이기적이고, 끈질긴가? 살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욕망의 초록색은 죄수 루스티그가 잠수해있던 바닷물에서부터, 노라 딘스무어의 정돈되지 않은 폐허 같은 저택과, 에스텔라의 의상, 핀의 소품과 스튜디오, 전시장 등에서 끊임없이 묻어있다. 이는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하는 감독의 특징으로 보기보단 원작의 주제의식을 영화적으로 훌륭하게 재해석했다고 보고 싶다. 앞서 언급했지만 사실 찰스 디킨스의 원작 <위대한 유산>을 보고 나는 꽤 실망했다. 설정이 매우 달랐고, 길었으며 너무 교훈적이었다. 영화는 무대를 미국의 어촌과 뉴욕으로 옮겨와 한 여자에 대한 기나긴 사랑에 포커스를 둔다. 그녀를 쟁취하기 위해 성공에 눈이 멀고,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해 준 사람들을 소홀히 하고, 심지어 다정했던 그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을 놓아버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하며 결국 루스티그와 재회하는 과정까지 인도한다.



비밀, 순수를 되찾는 열쇠


영화 초반은 미국의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핀과 에스텔라의 어린 시절이 펼쳐진다. 나는 어렸을 적 이 초반 30분이 유독 좋았다. 청춘 남녀들의 밀당은 너무 어려웠지만 어린 시절은 꼭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과 같은 분위기가 났기 때문이다. 재능 있지만 가난하고 불우한 소년 핀. 남부 미국을 배경으로 미시시피 강이 꼭 나오는 그런 명랑 소년 모험물 같고 꼭 잊지 못할 내 인생의 비밀 친구를 만나거나 아이들끼리 비밀을 공유하는 정취 같았다. 공주님처럼 아리따운 소녀 에스텔라. 딘스무어의 저택이 그랬다. 무엇보다 그 느낌을 강렬하게 주었던 건 죄수 루스티그와의 만남일 것이다. 영화는 아주 영리하게 시작하자마자 핀과 루스티그의 만남을 배치시키면서 영화 말미에 다시 깜짝 등장하기 전까지 그의 존재를 잊게 만든다. 핀은 충분히 루스티그에 대해 어른들에게 알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비밀을 지킨다. 그토록 착하고, 에스텔라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랄 만큼 순수하고, 누나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도 꾹꾹 눌러 참는 소년이었던 것이다. 



핀을 후원하고, 그의 그림을 모조리 사들였던 사람이 노라 딘스무어가 아닌 루스티그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은 정말 놀라운 반전이었다. 원작 소설에는 아마도 더 정교하고 기묘한 아이러니로 그려져 있을 터다. 영화에선 조금 거친 방식으로 그려져 있지만, 다시 등장하는 장면도 자신이 그 옛날의 죄수임을 상기시키는 방식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집행관이자 명계로 인도하는 사자 같았다. 너무 많이 봐서인지 정말 장면 자체가 인상적이어서인지 구분이 안 가지만 대사도 샷 하나하나도 기억날 정도니 말이다. 


두 사람 만의 비밀. 그 비밀은 서로가 서로의 순수를 회복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범죄자였던 루스티그는 핀의 의리와 선의로 다시 경찰에게 붙잡혔을지언정 세월이 흐른 후에 후원자가 되어 핀에게 보답했고, 핀은 기억에서 사라졌던 사람이 자신의 후원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심지어 루스티그는 곧장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며 두 사람의 비밀은 영원한 비밀로 남는다. 그뿐인가. 핀은 루스티그에게 하나를 더 받는다.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게되고 그것이 위대한 유산이 된 또 하나의 이유다. 마지막 장면에서 핀과 에스텔라는 재회한다. 바다에 반사된 햇빛이 눈부시다. 두 사람 다 상징적이게도 하얀 옷을 입고 있다. 에스텔라를 잃은 고통스러움에 핀은 늙은 딘스무어를 원망했다. 그 딘스무어가 죽기 직전에 속죄라도 했던 것일까. 에스텔라도 이제 속박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Et cetra


- 핀의  그림을 그린 화가 프란체스코 클레멘테의 그림이 너무나 아름답다.

- 해안 마을, 뉴욕의 화랑과 음식점, 공원 등 장소와 패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작업 열심히 하고 싶을 때, 성공한 자신을 상상하고 싶을 때 보면 좋다. 



그래서 우리 집에 놀러 온 소녀들이 모두 영화를 보고 만족했냐고? 당연히 만족했지. 이렇게 아름답고 야한 영화를 안 좋아했을 리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까지 어른이 되면 알 수 있는 달콤함으로 남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모를 때가 더 달콤했던 것 같다고. 핀처럼 나도 재능이 있어서 성공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사랑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 표정이 쓸쓸한 에스텔라의 기분을 아는 어른이 될 거 같았고, 그럼에도 이루어지는 영화 속 두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소녀 시절이 더 달콤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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