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본 Aug 30. 2019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자만과 자신감 사이에서

    지난 5월에 서울에서 열린 방송사가 주관하는 백일장 대회에 나갔다. "나는 브런치 작가니까, 무려 카카오라는 큰 회사가 나의 잠재력을 알아봐 주었으니까, 산문 분야에 응시하기만 한다면 나는 적어도 은상 이상은 받을 수 있을 거야."라는 당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말이다. 남산의 스타벅스에서 그란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셔가며,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글이 탄생할 것만 같았다.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글을 제출하였고, 장원으로 발표되는 상상을 하며 멋진 오후를 보냈다.


성인 산문 부문,


동상. "여기서는 제발 불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은상. "이 정도면 받을 만 하지."

장원. "내 이름이 불릴 때가 되었군!"


    어림도 없지. 나는 빈 손으로 집에 돌아갔다. 이름을 잘못 적었나, 종이를 심사하시면서 잃어버렸나. 와 같은 무척 낮은 가능성에 대해 상상했다. 아침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던 호언장담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글 쓰는 데에 소질이 없나. 싶기도 했다. 나의 우악스러웠던 첫 백일장 도전기는, 그렇게 오만방자함으로 가득했었다.


    퍽 시간이 흐른 지금, 백일장에 제출하려 현장에서 초고로 휴대폰에 적어두었던 그 글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태워버리고 싶은 전날 밤에 쓴 차마 보기 힘든 연애편지와도 같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내가 장원을 받는 상상을 했다니. 이토록 비단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자만을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 중 어느 정도는 자만을 부릴 만한 실력으로, 본인과 주변의 기대를 충분히 뛰어넘을만한 적도 있었겠지만, 게 중 몇몇은 나처럼 그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에 대한 믿음의 부족으로 인해 도리어 충분히 할 수 있음 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뒤로 물러선 경험도 있을 것이다.


    자신감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는 외국인 교수님이 있었다. 그는 자신감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말할 때 늘 'Self confi--------dence'라고 말했다. 우리말로 하자면 자시이이이인감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감이라는 단어는 무척 중요하고 소중하고 멋진 단어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길게 끌어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를 믿는다.'라는 개념은 나의 선택에 본인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불어넣어주고, 또 그러한 근거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가 부단한 노력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내가 믿고 또 가고자 하는 이 길에 대해 말해 줄 수도, 들어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허허벌판의 황무지 한가운데에서 이정표를 세워야 할 사람은 본인 스스로밖에 없으며, 또한 그 이정표가 향하는 곳이 타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수 없다. 그것이 향하는 종착지에 황금으로 가득한 엘도라도가 있을지, 더욱 뜨겁고 건조한 사막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용기 있게 한 걸음 한 걸음 우리가 결정한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만은 악이고, 자신감은 선인가? 권선징악의 개념처럼 어느 한쪽의 손을 위로 번쩍 들어줄 수는 없다. 때로는 나를 강하게 믿고 과감하게 베팅할 때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투고, 쓰리고를 갈지, 안전하게 스탑을 할지는, 이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애초부터 판에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용기 있는 일이다. 판돈을 잃든, 벌든,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결과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 인생이라는 복잡한 인과관계에서 수긍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분이 아니던가.


    하루에도 수천번, 수만 번씩 마주치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그 수많은 선택지에 대한 답변을 완벽하게 해 낼 수는 없다. 단지 지나온 길들을 뒤돌아보며 그게 최선이었음을 지레짐작할 뿐이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겠다만, 그래도 지금의 내가, 지금의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 멀리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시, 가지 않은 길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우리는 운명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가지 않은 길이 어디로 향해질지도 알 수 없다.


    나는 나를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구단은 사실 어려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