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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본 Mar 14. 2019

구구단은 사실 어려웠습니다

이구아나와 육삼빌딩

    어린 시절 덧셈과 뺄셈을 이해하게 된 아이는, 고사리손에 쥐어진 꼬깃꼬깃한 천 원 지폐로 얼마만큼의 과자를 먹을 수 있는지 알게 되고, 엄마가 준 용돈으로 두부 심부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기초적이자 중요한 삶의 기술을 배운 것이다. 그렇게 모든 사칙연산이 덧셈과 뺄셈으로 이루어진 줄 알았던 아이는 어느 날 거실 벽지에 붙여진 수많은 숫자와 처음 보는 기호가 적힌 큰 전지를 보고 놀라게 되고, 그걸 외워야 한다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우선 곱셈을 재미있게 가르치려던 어른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외우라는 구구단은 외우지 않고 고전 유머 그 이전의 유우머인 ‘구구~ 콘!, 이구~ 아나!, 육삼~ 빌딩!’과 같은 말장난에 더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대 어른들로부터 배운 구구단 농담을 주고받으며 까르르 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구구단을 외우게 된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성인이 된다. 그리고 분수, 원주율, 벤 다이어그램, 근의 공식, 3차 함수, 미분과 적분, 전공과목과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방법을 배우게 된다. 커 버린 키만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도 높아져 버린 아이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재물로 삼아 현대인의 골치 아픈 이해타산 속에서 본인의 길을 찾는 방법을 알아가게 된다.


    그러다 문득,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어느 현대인은, 어른이 된 아이는, 뒤를 돌아 걸어왔던 발자국의 시작을 추적한다. 구두의 콧등을 땅에 맞닿아 빙글빙글 돌리며 발목의 피로를 푼다. 흙바닥에는, 쉼표가 남는다. 두 눈을 감고, 지금은 집의 구조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어느 거실 어느 벽에 붙은 큰 구구단 전지를 바라보는 아이를 상상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여든한 개의 수식들은 세상에서 가장 높았던 장벽이었다. 사오이십보다 사오정이 더 재미있고 즐거운데, 왜 그대들은 나에게 사오이십을 강요했던 것인가. 구구?라고 물어보면, 숫자보다 아이스크림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걸 어찌하란 말인가. 어른들의 다그침을 듣고, 시험지에 채점된 빨간 동그라미의 의미를를 이해한 아이는, 구구는 아이스크림이 아닌 팔십일이라는 것이 상대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오래된 예능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구단을 외자, 구구단을 외자. 뻔히 알고 있다. 이구는 십팔이고 육삼도 십팔이다. 익살스러운 분장과 경쾌한 목소리로 리듬에 맞추어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팔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이구아나, 육삼빌딩을 말하는 희극인들을 바라보고도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는다. 나는 두 개의 답을 모두 알고 있다. 하나는 정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스꽝스러운 정답이다. 어느 쪽이든 감흥은 없다만, 현대인으로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십팔을 말해야 한다. 어쩌면 그게 진짜 정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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