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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본 Mar 04. 2019

회자정리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펄펄 끓는 물을 부어 만든 종이컵 안의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완전히 식는 시간은 약 15분 정도가 걸린다. 무심코 잔에 가져다 댄 손은 그 얼얼한 온기에 흠칫 한번 놀라고, 얼추 식었거니 싶어서 입에 가져다 댄 혀와의 첫 만남은 손으로 하여금 잔을 내려놓도록 만든다. 그렇게 잔이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락모락 피어올랐던 김은 온대 간데없이 사라지고, 한 모금의 커피만이 바닥 언저리에서 얕게 출렁거리게 된다. 그렇게 우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웃는 미소와 함께 상대방의 잔을 쓱 내려다본다. 네 컵에는 얼마만큼의 커피가 남았을까, 행여나 마주하고 있는 두 잔들은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몇 도일까.


    그간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용기에 담긴 다양한 음료들을 나누어 마셨다. 잔을 어깨 위로 들고 흥겹게 벌컥벌컥 들이켜기고 했고, 고개를 한쪽으로 공손하게 돌려 홀짝 마시기도 했고, 운동을 마치고 1.5L들이의 페트병을 손에 들고 팔을 안쪽으로 45도로 꺾은 채 벌컥벌컥 들이켜기도 했다. 그것들은 우리를 흥겹게도, 차분하게도, 진지하게도, 즐겁게도 만들었다. 그리고, 엎질러졌다. 얼굴과 잔을 마주했던 그들이 흐릿해졌다. 한때는 선명했던 그때의 그때, 혹은 그때 그 순간들이 지워진다.


    거친 사포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뇌리 속 가장 먼 기억부터 어제의 일까지 불규칙하게 지워나가고 있다. 억지로 입을 벌려 지난날을 곱씹다 보면 턱뼈가 시큰해진다. 더 씹다간 눈가가 시큰해질까 봐 꿀꺽 삼켜버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인다.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혹자의 말처럼, 밑 빠진 독들은 그렇게 정처 없이 살아왔고, 또 살아간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그때의 나인지, 아니면 너인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같은 수준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커피포트의 물을 끓이기로 했다. 눈금선 사이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기포, 그 기포들의 수만큼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질 것이며, 그들과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나누어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할 것이다. 헤어짐을 알기에 네가 소중함을, 소중했음을 께닫는다. 헤어짐을 알기에 앞으로 만날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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