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무지개였다
스무 살의 젊은 술꾼은 절대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 방치하면 불식 간에 증식해버리는 화장실 구석의 검은곰팡이처럼, 이들은 점점 그들의 수를 늘리고 술을 마셔대며 다음 가게를 찾으러 다닌다. 간을 오염시키는 것이 취미인 이들은, 오늘의 유쾌함과 내일의 불안정함 사이 가는 선 위에서 아름답게 시간을 소비하는 생물이다. 소주와 맥주로 알코올의 맛을 처음으로 배운 이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세상에는 더 맛있고 신기한 술들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칵테일 바 가서 칵테일 다 마시고 오자, 한 사람당 25잔씩 시켜서 넷이 돌려 먹으면 딱 100잔이잖아?"
한겨울의 바보짓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 사람당 3만 원에 상당하는 100여 종의 칵테일을 계속 리필하여 마실 수 있는 가게로 우리의 간은 발걸음을 이끌었다. 이왕 시작한 거, 소믈리에처럼 칵테일의 맛을 음미하고 기록하기로 했다. 다섯 개 만점인 별점도 매기기로 했다. 웃자고 시작한 일이 진지해질 때 높아지는 집중력은, 직업적 사명감으로 치환되었다. 그렇게 100잔의 칵테일과 도합 80살의 젊은이들은 한판 승부를 벌일 준비가 완료되었다.
첫 번째로 마주한 적은, 가게의 사장님이었다. 노트와 펜을 테이블 위에 올린 채 각자 끄적이며 칵테일을 마셔대는 광경은 사장님에게 있어서도 퍽이나 낯선 장면이었을 터이다. 넌지시 다가와 "시험공부하시는 중이세요?"라고 묻는 사장님에게 우리는 정직하게 답변했다. 난처한 표정을 지으신 사장님은 이렇게 마시면 아무리 무한 리필이라고 하더라도 힘들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우리의 전의도 갑작스러운 난항에 한풀 꺾일 때 즈음, 한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왔다. 두 학번 위인 민기 형이었다. 전역 후 가게의 매니저로 꽤 오랫동안 일하고 있던 민기 형은 치기 어렸던 우리 편을 들어주었고, 사장님 역시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며 쓴웃음을 지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오래 지나지 않아 주문하지도 않았던 바삭한 나초와 싱싱한 사우전드 드레싱 샐러드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고, 민기 형은 싱긋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지켜 들었다. 그땐 정말 고마웠어요. 민기 형.
두 번째로 마주한 적은, 불현듯 엄습한 취기였다. 별점 다섯 개 만점이었던 평점은 "야 이건 진짜 맛있어!" 하며 어느덧 개인의 취향에 따라 여덟 개, 열 개 까지 노트 위에 적혀가매 그 공정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잔 윗부분 둥근 지름에 뿌려진 새콤달콤한 설탕이 너무 달콤하다며 돌려마시기로 약속한 잔 위에 혼자서 혀를 다 가져대지를 않나, 모히또는 5점 만점에 50점이라 외친 녀석은 모히또가 제일 맛있다며 모히또 종파 창설과 동시에 전도를 해대길 시작했다.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볼펜처럼 위신이 떨어진 소믈리에들은 직업윤리를 잃고 코알라가 되기 시작했고, 초기의 원대했던 목적을 상실하고 말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마지막으로 마주한 적은 내부의 적이었다. 우리의 교주님께서는 설파 도중 꿈나라로 그의 종교를 전파하고자 떠나버린 것이다. 결국 코알라들은 교주님을 둘러업고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민기 형은 이럴 줄 알았다면서 깔깔 웃고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사장님은 다음부터는 이런 일 하지 말라며 계산과 동시에 카드를 탁 내려놓으며 짜증 어린 충고를 했다. 물론 코알라들은 사람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저 도망치듯 정신없이 다시 거리로 튀어나왔다.
바깥의 공기는 차가웠다. 한 블록쯤을 걷고 나자 모든 취기가 위장에서부터 입으로 몰려왔으며, 평점을 매겼던 한 모금, 한 모금의 별들이 입 밖으로 우악스레 튀어나왔다. 전봇대 아래에 알록달록했던 무지갯빛 칵테일 색깔만큼이나 형형색색인 은하수를 그려댔다. 의식을 마친 후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우리는, 사장님의 충고를 따르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오늘, 나는 지금도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던 모히또를 가장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