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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Mar 08. 2016

우주론, 이 책으로 시작하자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를 읽는다는 것, 우주론에 쉽게 다가서는 길


하늘 그 너머 세상에는

중력과 우주론, 현대 물리학 그리고 천문학 관련 책을 지속적으로 읽었다. 사회생활에 치이면서도 놓지 않았던 주제, 그건 바로 '하늘 그 너머 세상'이었던 것이다. 지칠 때마다 우주론 관련 강의와 책을 읽었다면 좀 이상하게 본다. 눈이 충혈되고 거실에 널브러져 뒹굴거릴 때, 잠을 청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그런 상황. 딱 그럴 때 거실에 가로놓여져 있는 기다란 식탁 위에 쌓인 책들을 펼친다. 차분해진다. 더욱더 차분해진다. 머릿속이 빙빙 돌 정도의 복잡함들이 순백의 폭설이 내려 거리의 지저분함을 포근하게 감싸듯 사라지게 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잘 하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사람은 정말 극소수다.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질 않는다. '마치 금기시되어 있는 것처럼'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는 우주론 입문서다

이 책의 저자인 이종필 교수의 강의를 한 학기 들은 적이 있다. 수업 첫 시간에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우주론에 대해 아는 척하고 싶다'라는 사람도 이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교수. 이전에도 그의 책을 접했지만 더욱 강의가 듣고 싶어 졌다.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는 두 번 읽게 된다. 이 수업을 듣기 전과 듣고 난 후에 말이다. 듣기 전 책을 읽었을 때는 잘 만들어진 우주론 소개서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강좌를 듣고 난 이후에 다시 바라본 이 책은 정말 흥미로웠다. 말하듯이 책을 썼다는 점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우주론에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너무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물론 그의 강의는 더욱더 흥미로웠다. 13주에 걸쳐서 3시간 수업을 들었음에도 더 듣고 싶고 지루하지 않았던 강의는 처음이었다.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는 그 강의의 요약이다. 수식을 사라지게 하고 그 자리에 언어로 풀어낸 우주론의 입문서.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우주론의 입문서다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미실과 얼마나 다릅니까?

저자는 선덕여왕에 나오는 월천의 말을 인용해 우리에게 묻고 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은 과연 과학적 진실을 바로 쳐다볼 수 있느냐고 말이다. 현생 인류가 처음 나타나서 했던 행동들 중 하나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저자.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을 언급하며 밤하늘은 검은데 왜 검을까라는 당연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질문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가 어쩌면 너무 편협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베르스의 역설'이라고 알려진 밤하늘이 검은 이유는 종종 과학소설인 SF에 사용되기도 한다. 김보영 작가의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라는 과학소설에서도 사용된 이 소재는 마주할 때마다 설렌다.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다른 하늘에서는 별이 빛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별이 빛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밤하늘이 너무 밝아서 별이 빛나는 것이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편견을 버리고 하늘을 직시하는 시대, 즉 7세기와 다른 시대에 과연 살고 있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뉴턴까지

수천 년 동안 건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 천상계와 지상계가 나눠져 다른 지배원리가 작동한 세계. 완벽한 천상의 세계는 입체인 구형을 표방하고 있다. 그 운동 또한 원운동을 한다. 반면 완전하지 못한 지상은 물체에게 접촉해 기동을 시켜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이 멈춰버린다. 모든 물체는 자신의 본성을 향해 움직인다. 가벼운 깃털은 본성을 찾아 천상계로 날아오르고, 무거운 돌은 지구로 향한다. 돌이 가진 무겁다는 그 본성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 우주관에 금이 가게 된 사건이 갈릴레오 때 일어난다. 갈릴레오는 구슬의 사고 실험을 통해 지면을 따라 영원히 굴러가는 구슬을 보여준다. 완전하지 못한 지상계에선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이와 함께 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 달을 바라본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져 완벽한 구체에 완전한 흠집이 난 달. 갈릴레오에 이르러 천상계와 지상계로 분리된 세계가 붕괴되는 것이다. 갈릴레오는 '하늘을 바라본 자'로써 태양의 흑점, 목성의 위성인 이오, 에우로파, 가니메테, 칼리스토를 관측한다. 금성의 상이 변화하는 것을 관찰해 지구중심설을 대못을 박아버린다. 이후 티코 브라헤와 케플러에 의해 행성의 궤도가 타원궤도임이 밝혀지면서 천상의 비밀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뉴턴은 천상계와 지상계를 나누던 그 경계를 확실히 무너뜨렸다. 저자는 이를 사과를 활용해 표현한다. '형편없이 불완전한 지상계의 사과가 천상계의 달처럼 지구 주위를 영원히 빙빙 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라고 말이다.


특수 상대성이론

특수 상대성이론은 서로 등속 운동하는 관성 좌표계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론으로 광속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모든 관측자에 대해 빛은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가 특수 상대성이론의 요체라는 말이다. 이로 인해 움직이는 물체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고, 길이가 짧게 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책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 이 책의 빛나는 문장들은 팔딱팔딱 살아 날뛰는 물고기들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래의 문장들이 수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점이다.

전기장과 자기장은 광속으로 진행한다.

간섭은 파동의 고유한 성질이다.

아인슈타인은 광속 불변이 우리 우주의 근본 원리라고 생각했다. 움직이는 좌표계에 대해서 물리법칙도 똑같고 광속도 항상 똑같은 그런 이론이 가능할까?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것은 바로 그것이 가능한 이론이었다. 물론 엄청난 대가가 필요했다. 좌표는 바뀌는데 방정식은 그 형태가 변화지 않고 광속도 항상 똑같으려면, 그 밖의 무언가가 좌표변환과 함께 바뀌어야만 한다. 그것이 대체 뭘까? 바로 좌표를 구성하는 시간과 공간 자체이다. 이것은 정말 혁명적인 관점의 변화이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역학 체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그 절대적인 지위를 잃어버렸다. 대신에 광속이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수천 년 동안 우리 우주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절대량이라고 생각해왔던 시간과 공간이 우리 우주의 근본적인 속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주장이다. 사실 시간이니 공간이니 하는 개념들은 우리 인간에게 편리한 개념들이다. 인간이 이 우주의 특별한 존재가 아닌 이상 인간에게 편리하거나 익숙한 개념이 우주의 근본 원리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시간이나 공간보다 더 자연의 근본 원리를 내포한 물리량이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물리량을 중심으로 자연과 우주를 기술해야만 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그중의 하나를 찾은 것이다. 바로 광속이다.

광속은 인간에게 익숙한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빨리 움직이는 무언가에 적응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수백만 년에 걸친 인간의 습관은 광속보다 훨씬 느린 세상에 적응해버렸다. 그런 까닭에 광속을 중심으로 자연을 기술하게 되면 우리의 직관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진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압력을 이겨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저명한 물리학자인 미국의 레너드 서스킨드는 이를 두고 '생각의 회로를 재배선'해야만 했다고 설명한다. 아인슈타인은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로 형성된 우리 생각의 회로를 바꾸기 시작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광속은 어쨌든 하나의 속력이다. 이동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광속 자체에 시간과 공간이 뒤얽혀 있다. 만약에 광속이 자연의 근본적인 물리량이고 이 값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자연이 돌아가려면, 시간과 공간이 그에 따라 역동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이제 더 이상 별개의 독립적인 물리량이어서는 안 된다. 서로 얽혀서 언제나 광속 불변을 만족해야만 한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은 아인슈타인 이래로 하나의 시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것이 상대성이론이다.

광속은 우리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상수로서 언제 어디서나 불변인 동시에 우리 우주의 근본적인 제한속도이다.


일반 상대성이론 : '이 문제에 비하면 원래의 상대성이론은 애들 장난에 불과합니다'라는 문장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인데 여기서 '이 문제'는 바로 일반 상대성이론을 지칭한다.

특수 상대성이론을 일반화한 이론이 일반 상대성이론이다. 가속도가 없는 등속 운동을 기술한 게 특수 상대성이론이라면 여기서 등속 운동 자체가 특수한 경우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가속 운동하는 좌표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은 왜 중력이론이라고 불릴까? 책에 주요 문장들을 살펴보자.

이처럼 관성력은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겪기 때문에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개념적인 혼란을 많이 겪기도 한다. 우선, 관성력은 실재하는 힘이다. 한때는 관성력을 '가짜 힘'이라고도 불렀지만,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 이 힘을 받기 때문에 몸이 앞뒤로 쏠린다. 하지만 차 밖 도로에 서 있는 사람은 당연히 버스 안의 관성력을 느끼지 않는다. 관성력이 가짜라는 것은 버스 밖의 관성력을 느끼지 않는다. 관성력이 가짜라는 것은 버스 밖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관성력은 좌표계가 바뀌었기 때문에 생기는 힘이다. 한 좌표계에서는 없던 힘이 다른 좌표계에서는 작용한다. 따라서 두 좌표계에서는 물리법칙이 같지 않다. 관성의 법칙도 적용되지 않는다.

가속도와 관성력, 이것이 다 중력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만약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지구의 질량이 갑자기 가벼워졌다면 어떻게 될까? 아인슈타인은 이 두 상황을 전혀 구별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관성력과 중력은 구별할 수 없다. 버스 뒤에 엄청나게 무거운 돌덩이가 있어서 우리를 뒤로 잡아끄는지 아니면 버스가 앞으로 급발진했는지 물리적으로는 똑같다. 이것을 '등가 원리'라고 부른다.

가속 운동을 하면 없던 힘, 즉 관성력이 생긴다. 이 힘은 등가 원리 덕분에 중력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다. 한편 특수상대성이론에서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움직이는 좌표계의 시공간은 정지 좌표계의 시공간과 같지 않다. 만약에 움직이는 좌표계가 속도까지 변화면서 움직인다면 그 좌표계의 시공간은 더욱 이상하게 뒤틀릴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미 다 나왔다. 중력은 곧 시공간의 뒤틀림이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중력이론은 뉴턴의 만유인력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돌파구를 만들었다. 뉴턴의 만유인력은 중력이라는 힘 자체를 특정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게 하는 힘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What'에 대한 답을 준 것이다. 그것도 정량적으로! 하지만 만유인력은 중력이 '어떻게 How'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이 없다. 만유인력에서는 질량이 있는 두 물체가 서로의 존재를 즉각 알아채고 중력이 원격으로 작용한다. 마치 해리포터가 마술 지팡이를 휘둘러서 멀리 있는 물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의 광속 제한에 걸린다. 상대성이론이 옳다면 중력 또는 광속보다 더 빠를 수 없다. 게다가 그냥 '원격 작용'이라니.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다. 새로운 이론에서는 중력이 곧 시공간의 뒤틀림이다. 중력이 '어떻게' 전파되느냐고? 시공간의 요동으로 전파된다. 여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시공간이 퍼져나가는 속력은 무한대가 아니라 바로 광속이다. 이로써 특수 상대성이론에 부합하는 '어떻게'에 대한 설명을 얻었다.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다. 어떻게 계산된 걸까?

저자는 팽창하는 우주의 발견이야말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포함하는 가장 큰 자연의 단위가 우주라고 할 때 그 우주의 가장 생생한 모습을 발견했으니까라고 이유를 제시하는 이종필 교수. '하늘에 대한 동경'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허블의 법칙을 언급하며 이를 통해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을 쉽게 설명한다. '초당 2센티미터씩 길어지는 자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지금 이 자의 길이는 100센티이다. 자가 길어지는 비율은 지금의 길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초당 0.02씩 커진 셈이다. 따라서 자가 0에서 100센티미터가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1/0.02=50 sec의 결과를 얻는다.'


공상과학이 오늘 현실 과학이 되었다

현실은 이미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적이 되었다. 과학소설보다 현실이 더욱더 판타지스럽다. 이 책에서는 아직 중력파 검출이 미래 어느 날 일어날 수도 있을만한 일로 적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중력파가 검출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 과학은 자신의 무지를 향해 LTE급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 역시 이런 시대에 대해 말한다. '지금 우리는 이미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지상의 가속기에서도 공상과학이 현실 과학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쯤이면 사람들이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그 시절에는 이런 영화를 보고 SF영화라고 했었다지? 하면서 아마 다들 크게 웃지 않을까'

그렇다. 지금의 과학은 이미 과학소설을 넘어선 단계로 진입했다. 과학이 보여줄 우주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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