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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Mar 15. 2016

우주의 거리를 알려준 그녀

조지 존슨 <리비트의 별>, 헨리에타 리비트가 이룩한 일 담담히 보여주다



티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 :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태양계 행성들의 움직임을 살피다

망원경이 없던 암흑의 시대. 하늘을 맨 눈으로만 바라봐야 했던 16세기. 카시오페이아 자리에서 초신성을 관측하고 이 초신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긴 자. 이 사람이 바로 덴마크의 국왕 프레데리크 2세의 총애를 받아 우주의 성이라는 '라니보르그 Uraniborg' 천문대를 운영한 티코 브라헤였다. 티코 브라헤의 관측자료가 없었다면 과연 요하네스 케플러는 <우주의 조화>를 출판 가능했을까? 고등학교 책에서 배우는 케플러의 법칙들은 티코 브라헤의 믿을 수 없이 뛰어난 관측자료 덕택이었다. 아이작 뉴턴이 언급한 '내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에 서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의 말처럼 케플러의 업적은 티코 브라헤의 어깨에 올라서 우주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와 비슷하게 헨리에타 리비타가 없었다면 과연 에드윈 허블은 우주 팽창론의 허블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은하가 멀어져가는 속도, 후퇴 속도가 은하와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그 법칙 말이다. 우리 은하도 아니고 외부은하의 거리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숨겨진 여성 한 명이 존재한다.



리비트라는 별 : 여성이 차별받던 그 시대, 최저임금으로 별들의 거리를 계산한 그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여성은 차별받는 존재였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헨리에타 리비트는 별을 찍은 사진을 통해 하늘을 바라본다. 사진 기술이 발전하며 별의 밝기를 사진기에 입사된 광자 덩어리의 크기로 판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분야에서 일하던 수많은 여성 가운데 헨리에타 리비트는 소마젤란 성운의 수십 개의 세페이드 변광성이 보여주는 규칙성에 주목했다. 이를 연구해 변광성이 밝았다가 어두워지는 주기와 절대 광도와의 관계를 추정하게 된 것이다. 리비트는 소마젤란 성운에서 보이는 변광성들의 거리가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별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주기를 구하게 되면 이 별들의 절대 밝기가 계산될 수 있었다. 별이 밝을수록 더 천천히 까빡였던 것이다. 별빛이 변하는 주기만 알면 절대 밝기가 계산되고 이와 겉보기 밝기를 비교시 지구에서의 거리가 나오게 된다. 조지 존슨은 이에 대해 리비트가 숫자가 쓰이지 않은 자를 발견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그 별들이 1,3,5광년 거리에 있는지 아니면 10,30,50광년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절대거리는 모른 채 비율만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눈금 없는 자'의 발견으로 우리가 지금 은하들의 거리와 우주가 탄생한 시간을 알고 있다. 조용하지만 엄청난 발견이었다. 다행히도 리비트가 가정한 소마젤란 성운에서 보이는 변광성들의 거리가 동일했는데 축복받은 행운이었다.

일을 다시 시작한 지 6년이 지난 1908년에 그녀는 <마젤란 성운의 1,777개 변광성>이라는 본격적인 논문을 하버드 천문대 연례보고서에 게재했다. 분량이 21페이지에 달하는 이 논문에는 두 장의 별 사진과 15페이지의 도표가 들어 있었다.

변광성의 숫자만도 놀란 만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논문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더 놀라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나중에 생각이 났다는 듯이 그녀는 16개의 별을 집어내서 별도의 목록을 만들고 주기와 밝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변광성이 밝을수록 주기가 길다는 점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습니다."고 언급했다.(중략)

그녀는 자신의 데이터를 과대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그 변광성들은 모두 마젤란 성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지구로부터 거의 같은 거리에 있는 셈이다. 그녀가 살짝 들여다본 관계가 맞다면 우리는 주기를 통해 절대 밝기를 비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절대 밝기를 겉보기 밝기와 비교해서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지를 추정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16개의 별에만 의존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결론이었다. 더 많은 측정이 필요했다.
리비트의 깜박거리는 별 중 하나가 삼각측량으로 측정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천문학자들은 시차의 장벽을 넘어서 우주 공간 깊이까지 거리 측정에 뛰어들 수 있을 터였다. 같은 주기로 맥동하는 두 세페이드 변광성은 절대 밝기가 같다는 리비트의 발견을 기억해보자.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비해 밝기가 100분의 1에 불과하다면 (역 제곱 법칙에 따라) 그것은 10배 거리에 있는 것이다. 연주 시차 방법으로 가까운 것의 세페이드 거리를 결정할 수 있다면 나머지 것의 거리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주기와 밝기가 다른 여러 세페이드 변광성들을 비교하면 마침내 우주로 도약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순순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세페이드인 북극성은 너무 멀어서 지구 궤도의 양끝에서 보아도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 오늘에야 알고 보니 북극성은 약 400광년 거리에 있었다. 연주 시차로는 실제 거리의 몇 분의 1밖에 잴 수 없었던 것이다. 리비트의 법칙을 알아내는 데 사용한 세페이드들은 그보다 몇 배 더 멀이 있었다.  


100년 전, 우주를 바라본 사람들도 여전히 눈 감고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줍는 심경이었다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불과 500년 전만 하더라도 여전히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다. 천상의 별과 태양 그리고 행성들을 움직이는 법칙과 지구 상에서의 물체들에 적용되는 법칙은 달랐다. 100년 전에는 우리 은하가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심각한 논쟁들이 있었고, 30년 전만 하더라도 우주의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도 없었다. 섀플리와 커티스가 살던 시기는 우리 은하가 전부인지 아니면 더 큰 무엇이 있는지 논쟁하던 시기였다. 미약한 증거를 가지고 설전이 벌어졌던 그 시기.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외부은하들이 우리 은하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자료들이 희미했다. 불충분한 자료들, 조그만 오차와 실수에 의해 별이나 외부은하들의 거리는 수십광년에서 수천 광년까지 변하곤 했다. 심지어 태양계에 성립하는 보편타당한 물리법칙이 우리 은하와 그 넘어에서도 동일한 물리법칙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일반인들은 의심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성립하는 물리법칙은 여전히 물리학자들에게만 통용되는 관념이었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 리비트의 발견은 '눈금 없는 자'이긴 하지만 우주의 거리를 재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하였다.


섀플리와 커티스 : 1920년 국립과학학술원, 은하수 너머 다른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우리 은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라는 섬 우주 이론과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다'라는 논쟁이 발생했다. 다양한 관측자료들이 우리 은하는 수많은 은하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섬 우주 이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섀플리는 우리 은하의 크기가 너무 커서 안드로메다 은하나 마젤란은하가 은하가 아닌 성운이라고 주장한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그 어떤 이론이 맞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우주의 거리를 재는 '자'는 아직 완벽히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섀플리의 측정에 따르면 그곳에서 성단들은 대략 구형을 이루어 성단의 성단처럼 보였다. 그는 그것이 가운데가 불룩한 은하수의 중심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가 이 지역에 살고 있다면 성단들이 우리 주위에 골고루 분포된 것을 볼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가 은하의 중심에서 수만 광년 떨어진 외곽에 살기 때문이다. (중략)

"인간은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자신이 속한 은하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면 그게 자연스러워 보일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신의 자녀이니까 중심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는 우연한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시사가 있다. 우리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인간은 개미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은하수의 중심은 궁수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우주의 중심도 거기에 있는 게 틀림없다.


여전히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

천동설이 무너지고 지동설이 자리 잡았던 시대로의 전환. 그것은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를 통해 연주 시차 거리 측정이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연주 시차 측정방식에는 약점이 하나 있었다. 측정대상의 거리가 멀게 되면 측정이 불가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후 리비트가 발견한 세페이드 변광성 주기-밝기로 '눈금 없는 자'를 가지게 된 천문학계. 외부은하들의 스펙트럼을 조사하다가 알게 된 적색 편이 현상. 허블은 거리와 멀어지는 속도가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먼 은하일수록 후퇴 속도가 커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은하나 별까지의 거리 측정이 리비트의 '재미없고 고독한' 별 사진 건판 보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티코 브라헤나 헨리에타 리비트의 묵묵한 열정은 우주를 보는 인류의 시선을 한 단계 도약시켰던 것이다. 리비트의 지루했던 일상이 우주의 거리와 탄생한 시간까지 밝혀내는 하나의 마중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커티스의 후계자였던 천문학자 앨런 샌디지는 이런 말을 남긴다. '은하란 무엇인가? 1900년 이전에는 아무도 몰랐다. 1920년에는 극소수만 알았다.'고 말이다. 수천 년간 지구에 머물던 시선이 불과 몇백 년 전에야 태양계에 속한 행성들로 옮겨갔고 수십 년 전에야 우주가 간직한 비밀들을 하나씩 끄집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미지의 영역'이 너무나 광대하게 퍼져있다. 모르는 것이 많다고 알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행운이다. 풀어내야 할 숙제들이 산더미다. 이런 비밀들을 풀어낸다면 지금껏 알고 있던 세상과 많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이제 제대로 된 하늘을 바라볼 그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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