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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Mar 14. 2016

진공, 우주를 이해하는 시선

프랭크 클로우스의 <VOID 보이드>는 진공을 통해 우주를 바라본다


단절된 침묵

고요한 그리고 무한한 검은 바다. 영화 <그래비티>를 본 소감이다. 거대한 침묵 속의 바다, 차갑디 차가운 공간 속에서 인간 한 명이 떠 있다. 그가 의지하던 한가닥 줄이 끊어진다. 말 그대로 우주 공간 속으로 떨어졌다. 내동댕이쳐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서 흘러내린 땀들은 주변의 공기와 발 밑의 중력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내 주변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감사를 하게 된 순간이었다. 진공이 주는 공포가 더 무서웠을까? 아니면, 중력이 없는 그 허함이 나의 감정을 휘몰아쳤을까?


공간을 고찰하다

지구를 벗어난 공간, 태양계 내의 일반적인 진공은 어느 정도 일까? 1세제곱 센티미터에 10개 정도의 분자가 존재한다. 별과 별 사이 즉, 인터스텔라에는 태양계보다 더욱 희박한 분자가 존재하게 된다. 엄밀하진 않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진공상태인 것이다. 사실 진공과 그것을 담고 있는 공간에 대한 논의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을 물체를 소멸시키면 그 공간도 함께 제거된다고 보았다. '진공'을 허용하지 않았던 아리스토텔레스. 그 시대로부터 중세시대까지 이어져왔던 신념인 '자연은 진공을 혐오한다.'는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고정시켜 버렸던 것이다. 공간을 독립된 그 무엇을 보지 않고 공간을 포함하고 있는 물체와 동일시한 것이다.

뉴턴은 공간을 절대공간이라 언급한다. 공간을 절대적인 그 무엇으로 기준 삼았다. 공간은 물체 따위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보이지 않는 모눈종이의 어떤 매트릭스'라고 생각한 것. 그래서 뉴턴은 모든 구체적 물체가 제거되면 '텅 빈 공간'만 남는다고 했다. 그는 물질의 부재를 중력의 부재라고 봤으며 이렇게 된 공간이 절대공간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생각과 달랐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익히게 되는 시간과 공간은 불변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 시간을 버린 것이다. 그럼 아인슈타인은 무엇을 기준점으로 삼았던 것일까? 바로, 광속이다. 빛의 속도가 불변한다는 것을 우주의 기본 속성으로 정했다. 이렇게 되니 무너지는 것은 절대공간과 절대 시간이었다. 공간과 시간 그 자체가 '물체들의 운동'에 의해 요동치는 시공간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절대적이었던 그것들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마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친 호모 사피엔스가 직관적으로 느꼈던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변화하는 시공간은 우리에게 새로운 공간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이렇게 변화되는 공간, 그렇다면 원자가 사라진 그 공간인 진공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우리과 관념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시작된다. 결국 이런 고민들은 공간을 관찰하는 생명체가 사라진 이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로도 이어지기도 했다.

아폴로 10호가 달 표면 바로 위로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는데, 지구로 전해지는 경이로운 영상에는 달이 바위와 자갈로 뒤덮인 황량한 황무지임이 드러났다. 이 잿빛 먼지의 사막은 활처럼 휘어진 달의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고, 그 지평선 위로는 빛을 뿜어내 왔던 무생물의 수소 공들, 즉 별들이 검은 허공을 배경으로 이따금씩 산재해 있었다. 갑자기 이 황량한 풍경 속에서 하얀 구름과 푸른 초목의 대륙을 간직한 아름다운 파란 보석이 떠올랐다.
(중략)
만약 지적 생명체가 없다면 어떨까? 인지능력이 있는 생명체가 없다면 이런 광경이 어떤 의미에서 존재한다고 할 것인가? 100억 년 전에는 방대한 공간에서 떠도는 황량한 암석 덩어리와 플라스마 구름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어 무생물의 공허함만이 있었기에, 그때는 어쩌면 이런 광경이 아무런 의미도 없을을지도 모른다.



진공상태, 무를 상상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를 머릿속에 그린다. 그리고 태양계, 우리 은하, 그리고 나머지 은하들을 하나씩 지워간다. 좀 무시무시하게 알려진, 하지만 아직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블랙홀도 저 멀리 치워버린다. '우리가 이것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도 다 날려버린다. 그리고 인터스텔라에 뿌려져 있는 분자들도 하나씩 핀셋으로 집어서 던져버린다. 자, 이제 우리는 '무'를 상상할 준비가 되었다. 무엇이 그려지는가? 이 문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철학의 영역에 존재했던 문제들 중에 하나다. 말 그대로 텅 빈 그 무엇이다. 그럼 텅 빈 우주라는 말은 맞는 말인가?


그렇다면, 팽창하는 것은 무엇인가?

천문학과 물리학이 우주의 비밀을 밝혀왔다. 빅뱅이라는 것이 우주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은 불과 100년도 안된 과학적 탐구다. 우주가 138억 년 이전부터 계속 팽창해왔다는 허블의 연구, 우주 배경 복사가 우연찮게 발견된 게 한세기도 채 안되었다는 것이다. 허블에 의해 팽창하는 우주라는 개념은 이제는 좀 익숙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팽창하고 있다는 것인가? 태양이 팽창한다는 말인가? 지구가? 아니면 분자, 원자, 쿼크가? 아니면 공간이라는 악마 자체가?

그때에는 비 존재도 존재도 없었다.
공간의 영역도, 그 너머의 하늘도 없었다.
무엇이 움직였을까? 어디서?
- 리그베다의 창조 찬가


진공을 채우고 있는 그 무엇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것들의 실마리는 이상한 곳에서 풀렸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식을 검토하며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허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반중력처럼 보이는 우주상수 '람다 힘'을 도입하게 된다. 우주의 모든 공간에 아주 희미하게, 너무나 희미해서 중력보다 0.00000000000........000000000001 정도나 적은 그 무엇(0이 125개가 붙는다. 상상하지 마라.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숫자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의 개념을 허물어버리고 광속 불변과 가속도와 중력이 동일하다는 개념을 들고 나온 이후. 허블에 의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고 알려진 이후. 그걸 논의하다가 찾게 된 암흑 에너지. 이 암흑 에너지가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한 그 우주에 아주 희미하게 퍼져있었던 것이다.


양자와 파동, 그리고 양자의 불확정성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을 삭제한 '텅 빈 공간'을 가정한다. 하지만 만약 이렇게 가정하는 것이 우리의 잘못된 직관이라면?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었던 그 시절, 우리는 절대 시간이 늘어나고 공간이 줄어드는 상상을 할지 못했다. 마찬가지다. 텅 빈 우주, 텅 빈 공간이라는 개념이 수천 년 이어져왔는데 과연 이 '철학적 개념'이 타당하기는 한 건가? 우리가 알고 있던 텅 빈 장소는 결국 상상에 불과했던 걸까? 양자 세계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런 의문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양자 단위에서의 텅 빈 공간은 결국 우리의 직관과는 한참 벗어난 그 무엇이었다. 진공을 알고 싶은 자에게 이 책은 다양한 관점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와 관련되는 분명한 역설 중 하나는 빈 공간에 도달하기 위해 물질, 장, 모든 것을 제거한 뒤 큰 규모에서 뒤따르는 텅 비어 있음 또한 집단 효과라는 것이다. 원자 규모에서 볼 때 빈 공간은 활기, 에너지, 입자들로 들끓고 있다

진공의 한 영역, 예를 들어 수소와 다른 입자들 모두가 제거된 1세제곱 미터의 우주공간을 상상하라. 그곳에 실제로 물질과 에너지가 전혀 없을 수 있나? 양자 우주에서 그  대답은 아니오이다. 모든 물질과 질량을 제거할지 모르지만, 양자 불확실성에 따르면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에너지 또한 0 일리가 없다는 뜻이다. 에너지가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빈 공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확정성 원리를 위반하는 것이다.

중력의 영향 아래에 흔들릴 때 분자들이 영점 위로 더 높이 있을수록 그것들의 위치에너지는 흔들림의 꼭대기에서 최대치에 도달하고, 운동에너지는 0이 된다. 역으로 그것의 가장 낮은 지점에서는 위치에너지가 0이고 운동에너지는 최대가 된다. '나노 규모의' 양자 추에 대한 상황은 더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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