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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Mar 12. 2016

스물아홉의 생일, 그리고 1년 후

제1회 일본 감동 대상작인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책 첫 페이지를 펼치다

희뿌연 안개 속 사진. 오른쪽에 서 있는 가로등, 그리고 안개 속에 숨어버린 여러 개의 가로등들. 지상의 전철 노선이 보이고 왼편에 파아란 전철 한 칸이 우두커니 서 있다. 양쪽에 펼쳐진 나무에 작고 이쁜 꽃들이 안개 속에서 슬며시 웃는다. 난 이 첫 사진을 10여 분간 들여다본다. 멍해진 느낌. 포근하면서도 왠지 안개 속에 숨고 싶은 욕망이 묻어나는 그런 사진이다. 마냥 포근하지만은 않은 그래서 더욱 끌리는 사진.



29살 생일을 맞은 여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폐해진 이 여자.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며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우울함에 빠진다. 빛이 없는 곳에서 따스함은 상상이 안 되는 단어들이 그녀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다. 홀로 생일을 자축하다 눈물이 흐른다. 갑자기 결정한 선택지는 자살뿐. 그녀는 이날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녹녹지 않다. 그녀는 당당히 살아갈 용기도 그렇다고 죽음을 택할 무모함도 없는 미로 속에 빠져있었다. 무엇을 택할 용기도 남아있지 않은 그런 상황. 의미 없이 켜진 TV에서 라스베이거스의 시끌벅적함을 본다. 3평의 좁디좁은 공간과 완전히 유리된 화려함이 넘쳐흐르는 세계. 갑자기 그곳에서 1년 후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터부시 되던 일들에 도전, 어쩌면 이 시점에 그녀는 처음으로 스스로 움직인 것이 아닐까?

스스로 설정한 시한부 인생 1년을 위해 호스티스, 누드모델, 파견사원을 '수행'하며 라스베이거스의 마지막 여행을 매일 꺼낸다. 마치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온 사람처럼 라스베이거스에 대해 알아가며 블랙잭에 대한 공부도 한다. 인생 최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라스베이거스에서 멋진 블랙잭을 하는 것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화려함에 정점에서 자살하려 한다.


잉여에서 의미로

일본적 시선으로 말한다면 잉여의 그 무엇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으로 변화화는 그 과정을 담담히 스케치한 작품이다. 스스로 정한 시한부지만 것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역설. 유한한 생명으로 설정함으로써 더욱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삶에 희미한 미소를 보여준다.


움직여야 새로운 길이 보인다는 당연한 진리, 자전적 소설이라 더욱 공감이 된다

하야마 아마리라는 작가가 쓴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작가의 경험이 녹아 흐른다. 책에 나오는 맛깔난 문구들은 작가가 그 현장을 온몸으로 버텨왔기에 가능했으리라. 기한의 설정은 하루하루 시간 시간을 더욱더 가치 있고 소중하게 만들었던 것. 이 책은 그런 책이다. 1년이라는 기한을 설정하고 그동안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는 모습. 사람들 사이에서 지쳐가고 방향을 잃어버리는 모습에서 매캐한 감정들이 가슴을 헤집고 다닌다. 혼자만의 시간이 자신을 단련시키고 자신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만든다는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안개가 가득한 현실에서 한 발이라도 더 내딛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책에 나오는 문구들

훗날 사회에 나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 '공부만' 잘했던 사람이 꽤 많다.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 지도 모른 채 고속열차처럼 학창 시절을 내달리다가 어느 날 '툭'하고 세상에 내던져진 그런 사람들 말이다.

세상은 널 돌봐줄 의무가 없다. 그리고 너에겐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다.

신데렐라는 마법을 걸어 줄 마녀가 나타날 때만 신데렐라다. 마법이 없으면 그저 재투성이 하녀에 불과하다.

정말이지 인생의 구석구석에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무모하더라도 일단 작정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내가 '움직였다'는 것이다.

모두가 스스로 정해 버린 시한부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새삼 '데드라인'의 가공할 위력에 놀랐다. 하지만 또 그만큼 불안했다.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잣대를 갖는 거라고 생각해. 세상은 온통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덮여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만의 눈과 잣대만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그게 살아가는 즐거움 아닐까?

아주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으면서 낮과 밤의 경계처럼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내게도, 그에게도 가장 이상적이었다.

길 위에 올라선 자는 계속 걸어야 할 것이다. 안주하는 순간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오히려 내가 가고 싶어 하는 방향이 뿌옇게 흐려지곤 했어. 그래서 자꾸 나도 모르게 무리에서 떨어져 지내게 되더라. 적어도 혼자서 나를 만나는 시간만큼은 내 믿음을 확신할 수 있었거든.

닥치는 대로 부딪쳐 봐. 무서워서, 안 해본 일이라서 망설이게 되는 그런 일일수록 내가 찾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적의 행군을 막으려면 술과 고기를 베풀어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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