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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Mar 30. 2016

과학혁명, 다시 바라보다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를 다시 읽으며 과학사를 생각하다





<과학 혁명의 구조> 책 읽기를 마치며...

<과학 혁명의 구조> 같은 고전은 단 한 번만 제대로 읽으면 된다. 단 한 번이면 족한데 이것이 쉽지 않았다. 이 책을 제대로 한번 읽어내는데 20년이 걸렸던 것이다. 20년 전에 산 책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며 읽어냈던 것. 어쩌면 책을 읽어낸다는 것은 읽는 이의 배경지식 내에서만 이해 가능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책이 어려울수록 더욱더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 오롯이 자신이 원하는 책 한 권을 읽어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역사를 읽다. 과학사를 바라보다.

역사는 다들 안다. 그럼 과학사는 과연 무엇일까? 당연히 과학의 역사다. 그렇다면 언제부터가 과학의 역사로 논의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빠질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너무나 유명해서 그래서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 토마스 쿤 말이다. 너무 유명한 사람은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는다. 다들 '아~ 토마스 쿤, 과혁 혁명의 구조를 쓴 사람'하고 끝난다. 좀 더 나아가서 언급하는 이들은 귀납주의적 과학관을 부정하고 과학이 혁명적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한 과학 철학자 정도로 이야기한다. 이 정도만 말해도 훌륭하다. 개인적으로는 쿤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과학적 지식이 하나씩 포개져서 발전하였다고 믿었던 귀납주의적 과학관은 어쩌면 '과학이라는 것이 거인의 어깨에서 바라본 후대의 노력'이라는 인식과 맞물려 있다. 이전의 과학적 성과를 쌓아 올린 탑, 제일 높은 흙 탑에 올라선 후대의 사람은 조금 더 흙더미를 높이며 더 멀리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그 탑을 물려주게 된다고 믿었던 귀납주의 과학관에 철퇴를 가한 사람, 바로 그가 토마스 쿤이다고 말이다. 과연 그는 누구인가?


토마스 쿤,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 학, 석, 박사

그는 하버드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물리학자였다. 쿤은 과학의 언저리에 서 있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물리학을 정통으로 공부한 사람이었던 것. 그러던 그가 박사과정을 마친 후 과학사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 이후 그는 과학사의 본질에 집중하며 과학 발전에 대한 기본적 가정이 잘못된 게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진다. 즉, 점점 과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식의 축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빛에 대한 논의는 수천 년 전부터 있어왔다. 이 당시 빛에 대한 연구는 체계적이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했다. 이러한 시기를 지나 빛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빛이 파동이라는 설과 입자라는 설 그리고 지금은 채택되지 못한 다양한 이론이 존재했다. 뉴턴에 의해 빛은 입자의 흐름이라는 이론이 받아들여지면서 '중심이론'이 된다. 쿤은 이렇게 다양한 이론들 중에서 하나의 '중심이론'이 들어선 그 시기를 정상과학이라고 불렀다. 어떤 대상에 대해 '중심이론'이 자리 잡히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가 펼쳐지게 된다. 천동설이 지배적이었던 시기에는 천동설이 이 '중심이론'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토마스 쿤은 하나의 설명 체계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정상과학의 시대의 설명 체계를 패러다임이라고 명명한다. 이렇게 정상과학이 존재하게 되면 딱 그 언저리까지만 연구가 진행되며 실험이 수행되었다고 본 토마스 쿤. 그는 이러한 시기에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의 체계 내에서만 과학 활동을 하였다고 논한다. 어쩌면 과학자들이 듣기에 좋지 않은 소리이기도 하다. 천동설이 정상과학으로 존재하던 그 시기, 모든 천체의 운동을 천동설로만 설명했고 빛은 입자라는 관점에서만 실험하고 사고한 것이다. 어떤 체계에 대해 하나의 설명이 주류가 이루고 이러한 시대에는 이 설명 체계를 많이 벗어나지 않고 설명 체계를 굳건히 해주는 연구만 진행되었다. 이것이 바로 쿤이 말한 패러다임이다.



토마스 쿤이 던진 비수, 패러다임 내에서 과학적 연구들은 패러다임을 뒷받침해주는 연구들만 행해진다.

빛의 입자설이 패러다임으로 설정된 이후, 과학자들은 더욱더 빛이 입자라는 증거를 찾아내기에 골몰한다. 이러한 연구들만 존경을 받는 시대, 이러한 연구만 훌륭한 업적으로 치부받는 시기가 정상과학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토마스 쿤이 던진 비수이기도 하였다. 천동설이 정상과학이던 그 시기, 과학자들은 천동설의 설명 체계는 그대로 둔 채 일부를 수정하여 더욱더 합리적인 체계 속으로 천동설이 들어오게 한다.


답정너라고 했던가?

답은 정해둔 채 이 답에 이르는 해를 찾는 것, 바로 그것이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의 실체였다. 규칙도 존재하고 놀이 판도 존재하는 게임, 그 게임에서 룰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과학의 범주에서 소외되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에 이에 이르는 길만 찾으면 되던 과학, 그 과학을 정상과학이라 부르고 이를 패러다임이라고 명명한 토마스 쿤.


정상과학이 필요 없기만 한 것인가?

과연 정상과학이 필요 없는 그 무엇이었나? 당연히 답은 아니다. 지금 고등학교 물리 교과서를 펼쳐보라. 그곳에 당당히 나와있는 뉴턴 역학. 뉴턴 역학이 나왔던 그 시절에 뉴턴 역학은 더 이상 완벽해질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이 역학의 패러다임은 너무나 완벽하게 보였으며 우주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는 원리였다. 뉴턴 역학으로 행성들의 움직임이 설명 가능했으며(물론, 티코 브라헤와 케플러 등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순조롭게 설명해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깨부수고 하늘과 땅에서의 이치가 다르지 않다를 보여준 뉴턴 역학은 어쩌면 완전히 새로운 정상과학 시대를 연 것이다. 어쩌면 이 정상과학은 더 이상 변화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던 시기도 있었다.


새로운 답이 나온다고 답정너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패러다임이 확립되어 있는 정상과학의 시기가 한참 지속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기도 한다. 패러다임이 전망하고 예측해놓은 '답정너'를 벗어나 새로운 답이 논의되기 시작한다. 패러다임의 예측과는 아예 상반된 답이 툭 튀어나온다. 다른 답이 튀어나온다고 기존의 답이 무너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자연에 대한 몰이해와 실험의 부정확성 그리고 잘못 문제를 풀었다고 새로 나온 답을 내팽게치게 된다. 하지만, 답정너를 벗어나는 답이 계속 줄이어 나타나게 되는 이 시기, 바로 이 시기가 패러다임의 위기의 시대다.


패러다임의 전환의 어려움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천동설은 굳건히 그 영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굳건함 속에는 행성들의 움직임이 어긋나는 것을 보고 새로운 방식의 설명 체계를 도입하려는 무수한 숨은 움직임이 존재했다. 천체들이 지구를 도는 게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명백한 사실로의 전환은 너무나 힘들었으며, 여전히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수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은 너무나 어렵게 발생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계속 유지하려는 관성력은 새로운 설명 체계를 가져오려는 동력보다 너무나 무한히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든 설명을 해주지 못할 경우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지동설도 16세기에 책으로 출간되었을 당시 엄청난 저항을 받았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도 그 당시 분위기에서 쉽지 않았다. 주목을 받지 못한 그의 책은 티코 브라헤의 관측과 이를 바탕으로 요하네스 케플러가 발견한 천체의 타원 운동을 저술한 <우주 구조의 신비>가 나오며 지동설이 설득력을 얻어갔다. 이것에 더해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통해 천체관측을 하며 천동설에 맞설 수 있는 증거들을 확보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논쟁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지동설이 정상과학에 자리에 들어가지 못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쓴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는 지동설과 천동설을 비교한 책이었다. 이 책이 17세기 초중반에 출간되었는데 여전히 정상과학은 천동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패러다임의 전환은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몇백 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다. 새로운 이론으로의 급속한 전환은 발생하기 어려웠으며 패러다임의 전환은 그 자체로써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있기에 전환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과학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_과학혁명

패러다임 A에서 B로 전환되는 이 사건을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이라고 명명했다. 과학은 점진적 발전이 아니라 혁명을 거쳐서 발전한다고 쿤은 주장한다. 토마스 쿤은 어쩌면 과학의 발전과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리라. 토마스 쿤의 이 주장은 정말 중요하다. 과학사 발전과정에서 '과학은 점진적이 아니라 혁명을 거쳐 발전한다.'고 주장한 쿤. 우리는 그의 주장들 중에서 이 부분만은 꼭 외워야 할 것이다.


나에게 충격을 준 과학사는 무엇이었을까?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에 의한 과학 혁명을 통해 발전한다고 주장한 쿤. 그를 통해 과학사는 통째로 재해석되고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과학사를 이런 시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기가 한참이나 늦어졌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과학사를 살펴보자면 6개의 커다란 혁명이 있었다. 과학사에서 다른 중요한 혁명들이 존재하겠지만 이들만이 가장 큰 충격을 나에게 선사하였던 것이다. 나만의 분류체계에 의하면 지동설 혁명, 광학 혁명과 양자 혁명, 진화론 혁명, 우주 혁명(우주 팽창), 화학 혁명, 중력 혁명(역학 포함), 상대론 혁명이 그것이다. 물리학과 천문학 측면에서 바라본 기준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가장 충격을 준 혁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토마스 쿤이 자신의 책을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래는 나의 관점에서 바라 본 혁명들의 의미다.


진화론 혁명
생물학에서 진화론은 창조론을 좌초시켰다. 하지만 좌초된 줄 알았던 창조론은 여전히 성당과 교회를 통해 유유히 그의 존재를 뽐내고 있는 것이다. 다윈의 뛰어난 통찰은 수억,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꿰뚤어 본 것이다. 그 통찰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여전히 종교는 우리 삶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일반적인 대중들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창조론이 여전히 정상과학일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와 수많은 증거의 제시도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인 '종교' 앞에서는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가하다. 종교가 있다고 말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신을 믿지 않는다'라는 말도 당당히 내뱉을 그날을 기다린다.


지동설 혁명
지구가 우주에 중심에서 희미한 변방으로 밀려나게 된 지동설. 하늘의 천체는 완벽해서 외부에서 어떠한 힘이 없더라도 원운동이 지속된다고 한 그 이론 말이다. 지동설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우주를 향한 제대로 된 인식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가 아닐까? 첫 번째 큰 지각 변동이 인류사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이 파도는 너무나 오랫동안 서서히 몰아쳤기에 몇 세대가 흘러서야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즉,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중력 혁명(역학 포함)
이 중력 혁명은 지동설과 연동되어 있다. 고대 역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대표된다. 지구는 우주 중심에, 천체는 원운동을, 천상의 천체들은 스스로 움직이며, 지상의 물체에는 힘을 가해야 지속적인 운동이 가능하다는 그 고대 역학 말이다. 견고하던 고대 역학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티코 브라헤, 케플러, 뉴턴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천상과 지상에서 다른 운동법칙이 존재한 예전의 방식에서 천상과 지상에 작용하는 동일한 법칙이 등장한 것이다. 뉴턴은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을 통해 고대 역학에 종지부를 찍은 새로운 역학을 출범시킨다. 이 혁명은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의해 새로운 중력이론이 제시되기 전까지 견고한 정상과학이었다.


상대성 혁명
고대 역학과 뉴턴에 의해 정립된 뉴턴 역학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원리 모두 중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 과정이었다. 즉, 지동설 혁명과 중력 혁명(역학 포함) 그리고 상대성 혁명까지 하나의 범주로 놓을 수도 있다. 영원할 거 같았던 뉴턴 역학은 빛의 속도를 측정하며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빛의 속도가 측정자와 무관하게 일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뉴턴 역학에서는 당연히 이를 설명할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일정한 것을 우주 제일의 원리로 놓고 인류에게 너무나 포근한 시공간을 뒤틀어버린다. 태어나면서 너무나 익숙해서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 같았던 그 시공간들 말이다. 그 시공간을 포기함으로써 중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전개한다. 즉, 뉴턴 역학의 관측자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물리량은 일정하던 것이 운동 상태에 따라서 물리량이 변하게 된 세상.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속도가 달랐던 빛은 그 속도가 불변하는 시대로의 전환. 아인슈타인이 변화시킨 세상이었다. 물체가 존재함으로써 공간을 휘게 만든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 중력이 뉴턴의 만유인력에서 공간의 휘어짐으로 변화된 순간이었다.


우주 혁명(우주 팽창)
지동설에 의해 태양계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여전히 지구가 어떤 의미론적인 가치를 지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상대성 혁명을 통해 시공간이 흔들리는 동시에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은 우주가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답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장 방정식을 프리드먼이 풀어낸 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팽창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이는 쉽사리 정상과학을 넘지 못했다. 그 당시까지의 정상과학은 우주란 무한히 정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그래서 언젠가는 한 점에 있었을지도 모를 그 우주는 정상과학으로 인정받기에 너무 멀리 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우주의 거리를 알려준 그녀_헨리에타 리비트>라는 글에서 쓴 것처럼 리비트가 변광성의 주기와 밝기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 이 후 허블이 우주가 팽창하는 증거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또한, 훗날 이를 통해 우주의 나이도 계산하게 된 것이다. 138억 년 전 어느 특이점에서 '빅뱅'하며 급팽창한 이후 지금의 우주를 만들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 하지만 이 우주 혁명이 지금 시대에 정상 과학인 것이다.


화학 혁명
너무나 익숙해서 그 누구도 잘 알아채지 못하는 그런 것을 찾아낸 혁명. 일명 산소 혁명이다. 우리는 산소로 호흡한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너무나 낯선 산소. 이런 산소는 골칫거리였다. 물질이 불과 결합하게 되면 연소하게 되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주요 이슈였다. 당연히 공기나 산소의 존재에 대해 인식이 없던 시기에는 모든 물질은 플로지스톤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불과 결합하여 날아간다고 보았다. 종이와 불이 만나서 플로지스톤이 날아가고 재만 남는다고 설명했던 것이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이런 형태가 아닌 산소를 발견한 혁명. 새로운 연소이론은 완전히 다른 화학 이론의 전개로 이어진다. 어쩌면 7개의 혁명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저항이 없었던 혁명이다. 화학책에 나오는 원소 분류표는 화학 혁명에 의해 시작된 정상과학의 정점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광학 혁명 그리고 양자 혁명
빛에 대한 오래된 논쟁. 빛은 파동이냐 입자냐는 수세기 동안 과학자들의 주요 논쟁 대상 거리였다. 이 캐캐 묵은 논쟁은 결국 양자 혁명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풀어진다. 이는 뉴턴 역학과 또 연결되는데 연속적이던 물리량이 불연속적으로 변화되며 양자화되는 그 사건. 뉴턴 역학이 무너진 그 자리 위에 꽃 핀 양자 물리학. 양자역학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여전히 뉴턴 역학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 패러다임이 변화되어 새로운 정상과학이 들어서더라도 기존의 체계가 공존하는 현상은 인간의 인식이 그만큼 편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거시 세계만을 조망하는 인간들은 미시세계에서 너무나 잘 작동하는 양자역학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뉴턴 역학에 의해 공을 던지고 그 공을 쉽사리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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