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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Mar 29. 2016

세인트 폴 대성당의 화재를 막아낸 <화재 감시원>

휴고상 11번, 로커스상 13번, 네뷸러상 7번을 수상한 그 코니 윌리스


수상 실적만으로도 반짝이는 그녀

휴고상 11번, 로커스상 13번, 네뷸러상 7번을 수상한 SF분야에서 알아주던 그녀가 드디어 한국에 제대로 된 모습으로 등장했다. <화재 감시원>, <여왕마저도> 두 권의 단편 모음집을 가지고 그녀는 우리 앞에 서 있다. 코니 윌리스는 자신의 소소한 경험들을 이야기로 잘 풀어내기에 그녀의 책을 처음 읽게 된다면 일반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장의 책을 넘기다 보면 그녀의 단편들이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과학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전히 국내에서는 과학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 대중적으로 활성화되기엔 무리가 많다. 그래서 코니 윌리스의 책들 역시 많이 팔리지 않을 것이다. 머, 과학소설이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과학소설 그리고 농담

과학소설은 삶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수렁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그녀 덕분에 휴고상과 네뷸러상이 과학소설을 쓰기만 하면 주는 그런 상인 줄 알았다.'라는 농담을 던지게 되면 당연히 '이상한 놈' 취급받게 되는 머 그런 것들. 그래도 오랫동안 참긴 참았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함부로 내뱉지 못했다. 참고 참아서 대학에 입학한 그 순간. 과학소설에 입각한 농담들을 드디어 대학생 시절에 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면 대학생 시절에도 역시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그 '몰이해' 시선은 나를 더 이상 과학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백미는 당연, 화재 감시원

세인트 폴 대성당은 1666년 대화재로 완전히 파괴된다. 이후 다시 재건된 시점은 1710년이다. <화재 감시원>에 언급된 대로 넬슨 제독은 세인트 폴 대성당의 돔 중앙부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 우리가 배운 그 넬슨 맞다. 트라팔라가 해전과 스페인 함대를 무찌른 그 영국의 대 제독 말이다. 이 외에도 영국의 다양한 인물들이 이 성당과 연관되어 있으며 찰스 왕자와 다이애너 비는 1981년 이 성당에서 결혼하였다. 이 성당이 세계 제2차 대전의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면 어떠하였을까? <화재 감시원>의 단편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역사공부를 책으로 하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가 실제로 그곳에서 체험하게 된다.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고 돌아와 서술시험을 치르는 방식으로 역사공부와 시험이 진행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시간을 떠나 세계 제2차 대전이 진행 중인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가게 된다. 그 당시 독일군의 공습으로 인한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화재 감시원이 존재했다. 그곳에 존재했던 화재 감시원과 함께 폭격에 맞선다. 그리고 지켜낸 세인트 폴 대성당.

시험지를 읽어 보았다.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적혀 있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에 떨어진 소이탄의 개수. 낙하산 폭탄의 개수. 고성능 폭탄의 개수. (중략) 처음 화재 감시에 올라갔던 자원자의 수, 부상자, 사망자.' 아무 의미가 없는 문제들이었다. 그리고 모든 문제 끝 부분에는 숫자 하나나 간신히 쓸 수 있는 여백밖에 없었다. (중략)

나는 던 워디 교수의 책상 앞으로 갔다. "세인트폴 성당은 어제 거의 불타 버렸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시험 문제들은 뭐죠?" "바솔로뮤, 자네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냐." "사람들에 대해 묻는 질문은 하나도 없습니다. (중략)

"교수님에게는 당시에 살던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까?" "통계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중요하지." 던 워디 교수가 말했다. "하지만 개개인으로는 역사의 진행 방향과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어." (중략)

"랭비는 세인트폴 대성당을 구했어. 한 인간이 그보다 더 중요한 걸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너 같은 자식은 역사학자가 아냐! 넌 고작해야...."

<화재 감시원> 중에서

우리가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생길까? 적극적 개입을 통한 역사 변경? 아니면 참혹한 역사 현장과 동화되어 무너져버린 자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냉철한 이성적 모습? 등이 존재하겠지만 자신의 주관에 입각한 사건의 판단은 무조건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가 볼 수는 없지만 코니 윌리스 같은 작가를 통해 그러한 상상을 무제한적으로 해본다.


리알토에서, 양자역학적 소양이 없다면 이 책은 절대 읽지 마라

국제 양자물리학 학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뉴턴적 사고로 <리알토에서>라는 단편을 읽게 되면 책을 던질 수도 있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책을 읽어야 하고 또한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단편 서문에 나온 아래 문장은 이 단편을 읽는 가이드다. 코니 윌리스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길잡이 말이다.

사고의 진지함은 뉴턴 물리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진지함이 양자이론을 이해하는 데에서는 걸림돌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리알토에서> 중에서

이 단편을 4번 정도 계속 읽었다. 읽을수록 머리만 어지럽다. 코니 윌리스는 어쩌면 현대 과학에 호의적이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계속 든다. 작가는 과학소설이 어지러운 게 아니라 현대 과학이 어지러운 거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양자역학적 소양이 없다면 이 책은 절대 읽지 않기를 바란다.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의 첫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EPR 역설도 나오고 전자 터널링, 슈뢰딩거 고양이, 파동 함수 등이 언급되는 이 단편. 정말 하드 SF소설인 '쿼런틴' 이후 대놓고 양자역학을 언급한 과학소설이었다. 이 정도의 단편이 1990년에 네뷸러상을 받다니....


나일강의 죽음, 친한 사람과의 여행은 즐겁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이집트로 세 가족이 여행을 떠난다. 이들은 즐겁게 여행을 끝마칠 수 있을까? 코니 윌리스의 <나일강의 죽음>은 애거서 크리스트의 <나일강의 죽음>을 바로 떠올리게 만든다. 크리스티의 <나일강의 죽음은> 아리따운 상속녀와 그녀의 친구 그리고 그녀의 애인의 복잡 미묘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리따운 상속녀가 친구의 애인과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떠난다. 이집트로 떠난 여행에서 아리따운 상속녀는 죽게 된다. 배 위에서 살해되는데 이 배에 '포와르'가 타고 있었다는 게 포인트다. 다른 배에 탔다면 그냥 이 사건은 묻히게 되니까 말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애거서 크리스티나 코니 윌리스나 모두 '길에서 벗어난 그들'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를 생각하며 쓴 것이 분명하고 그녀에 대한 오마주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읽기엔 쉽지 않은 단편이다. 읽으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혼란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읽는 중간중간에 뱃멀미 느낌이 들었기에 추천하지는 않는다.


코니 윌리스의 서문

이 책 <화재 감시원>에는 '내부소행' 그리고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라는 단편도 수록되어 있다. 그녀를 처음 보았다면 서점에 가서 그녀의 책 '서문'을 읽어보길 바란다. 책이 어떠한 책인가를 판가름하는 가장 첫 번째 포인트는 저자의 서문인 것이니까 말이다. 서문에서 독자가 맛깔남을 느끼지 못하면 그 책은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의 서문, 역시 뛰어나다. 서문의 도입부를 조금 소개하며 책 리뷰를 마친다.

작가로서 '최고'의 작품들을 모은 모음집에 서문을 쓰는 건 약간 골치 아픈 일이다. 작품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면 줄거리를 미리 흘리게 되고, '최고'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허세 가득한 자랑 같아서 언짢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 작품의 발상을 어디에서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대개 끔찍하게 재미없을 뿐 아니라 실제로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중략)
무슨 말이냐면, 셰익스피어도 희극과 비극을 썼지만 아무도 그의 작품을 두고 두 명이 썼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프랜시스 베이컨을 포함해서 에드워드 드 베르와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셰익스피어로 의심했던 적이 있긴 했다.
(중략)



코니 윌리스의 두 번째 단편 걸작선 <여왕마저도>의 책 리뷰다. 함께 읽어보면 좋다.

https://brunch.co.kr/@jamding/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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