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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Mar 22. 2016

호모 사피엔스가 위험하다

<호모 사피엔스 씨의 위험한 고민>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요즘 제일 핫한 호모 사피엔스

요즘 제일 핫하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인류 자체가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 유발 하라리가 쓴 대작 <사피엔스>가 전 세계적으로 호모 사피엔스 열풍에 불을 지핀 이래 이세돌과 알파고를 통해 그 정점을 찍었다. 지난 2-3년간을 지나며 어느새 호모 사피엔스들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다시 한번 살피고 있다. 지금 서있는 곳이 백척간두의 낭떠러지 한가운데인지 아니면 따스한 햇살과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널따란 대지인지 말이다. 인공지능이 호모 사피엔스에게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묻는 질문은 어느새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들에게 현실인 것이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에서 '사피엔스는 이제 신이 되려고 한다.'고 하였고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인공지능 포비아'를 던져주었다. 어쩌면 이 둘 다 상반된 이야기가 아니다. 동일한 이야기일 것이다. 인류가 어떠한 변곡점 위에 서있다는 메시지, 그 메시지로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새로운 길을 뚜벅 걸어나갈 것이다. 그 이후 신이 되던 아니면 인공지능과 경쟁하게 되던 모두 다 인간의 선택인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씨의 위험한 고민>을 읽기에 가장 적당한 시점

지금 이 시점이 이 책을 읽기에 가장 적당한 때이다. 알파고를 통해 인류가 달성한 과학의 현주소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뉴턴이 언급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이들, 다시 이들의 어깨를 올라선 과학자들. 그들이 달성한 문명이고 호모 사피엔스의 자랑스러운 업적들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상황은 보랏빛 향기처럼 찬란하게 빛나고만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우리들은 체감적으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그 언저리에 서 있다는 것을 너무나 명확히 알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 씨의 위험한 고민>은 8인의 저자들(원종우, 이명현, 이정모, 정지훈, 권복규, 이창무, 이필렬, 홍성욱)이 쓴 글의 집합체다. 8명 중에서 원종우, 이명현, 이정모, 정지훈 저자분들의 강연은 몇 번씩 들어보아서 익숙했으며, 나머지 4분의 이야기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8개의 고개를 넘었다. 어떤 고개는 익숙한 이야기가 펼쳐져 고개를 끄덕거리며 넘겼고 어떤 고개는 공감하나 동의하지 못한 채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8가지 주제는 호모 사피엔스라면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주제들이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책을 선택하는 다양한 방법 중의 하나는 서문과 마무리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서문은 독자를 사로잡으며 책의 끝까지 매진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무리 글로 지금까지 읽었던 내용을 한 번에 정리해준다. 책 선택 시 꼭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호모 사피엔스 씨의 위험한 고민>은 제대로 된 서문과 마무리 글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책의 서문은 한 자 한 자 읽어봄직하다. 서문의 마무리는 칼 세이건 <2014년 코스모스>의 마지막 에피스드 <창백한 푸른 점>에서 닐 디그래스 타이슨의 내레이션을 적었다. 나 역시 이 문장은 너무가 아리따워 읽을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We, who embody the local eyes and ears and thoughts and feelings of the cosmos...
we've begun to learn the story of our origins...
star stuff contemplating the evolution of matter tracing that long path by which it arrived at consciousness.
We and the other living things on this planet carry a legacy of cosmic evolution spannig billions of years.
If we take that knowledge to heart....
(중략)
seeing for us as we have seen for those who came before....
discovering wonders yet undreamed of...
in the cosmos.


호모 사피엔스의 지금 이 순간, 빅브라더의 지배가 당연해진 시대

이창무 교수는 지금 시대를 능지처참의 시대에서 빅브라더의 시대로 전환되었다고 선언한다. 처벌의 시대가 감시의 시대로 넘어왔다는 말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눈을 떠서 잠에 들 때까지 24시간 나의 모든 것은 감시당하고 있다. 다행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대놓고 감시하지는 않지만 어떤 특정 징후가 발생하면 가차 없이 모든 것을 확보하여 분석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바로 이 파놉티콘을 예로 들며 권력행사 방식이 변화했다고 말합니다. "권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하는 것이며,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이 말의 주체를 현대 기업들에게 그대로 적용해봅시다. 오싹하지 않습니까? 정보혁명의 미래에 우리 인간이 자유와 해방을 맞이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중략)
미래에 우리의 일거수일투족과 나아가 사고까지 지배하려는 빅 브라더와 리틀 시스터에 맞서야 합니다. 'We are watching you." 억압받지 않기 위해 대중이 정보 권력을 쥔 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할 말입니다.


로봇과 생명공학 그리고 인간, 그 경계는..

알파고는 일주일 만에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다행히 아직 알파고는 게임의 승패에 대해 희비를 표현하지도, 그렇다고 승리를 만끽하지도 못한다. 아직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스스로 생각하는 그리고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의 탄생이 가능할까? 애니메이션과 영화 그리고 지금까지 지상에 글이나 상상으로 존재했던 모든 로봇들은 과연 미래에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정지훈 박사는 이러한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또한, 홍성욱 박사는 유전자로 운명이 결정되는 '가타카'같은 세상을 언급한다. 한쪽에서는 로봇이 한쪽에서는 유전자를 마음대로 바꾸어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논하는 것이다. 로봇과 생명공학, 이 두개의 주제 모두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문제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유토피아란 과연 로봇과 생명공학이 풍성해진 그 시기일까?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의 개념을 일찌감치 제시했다. 불평등을 없애려는 세상, 로봇과 생명공학이 과연 불평등을 사라지게 할지 아니면 더욱 심화시킬지 그 누구도 모른다. 다만, 호모 사피엔스가 서 있는 이 곳은 과연 어디일까?라는 질문만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인문학자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유토피아>라는 소설을 출간하면서 세상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유토피아에는 '좋은 곳'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소설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유토피아는 섬과 같이 고립된 형태입니다.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외부와 스스로 격리되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아가는 형태입니다.
(중략)
토머스 모어는 인가의 불행은 불평등에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은 화폐라고 봤고요. 그래서 화폐를 폐지한 세상만이 불평등을 없앨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구의 종말 시나리오로 시작해서 지구 생명의 역사와 멸종으로 마무리 맺는다

파토 원종우가 말하는 종말 시나리오. 지구 멸망, 인구 멸절, 문명 종말로 나누어 담담히 이야기한다. 지구가 다른 큰 행성이나 운석과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는 상황은 가능성이 낮지만 일어 남직할만한 이벤트가 아니다. 이미 지구 상에서 몇 번씩이나 발생한 사건이다. 그래서 더욱더 두렵다. 물론 이러한 충돌로 인해 진화의 운명이 변경되고 인류가 탄생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렵사리 이룩한 문명을 한순간에 잃어버린다는 것은 정말 생각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러한 멸망 시나리오에서 과연 과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내용들을 깔끔하고 맛깔나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의 이정모 관장은 지구의 과거부터 현재를 나열한다. 그리고 다섯 번의 대 멸종이 있었으며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정모 관장은 멸종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지금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 바로 그것은 다른 동물들의 멸종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언급.

공룡이 멸종을 하고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멸종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멸종이라는 건 빈자리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빈자리가 생기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게 생기기 마련입니다. 멸종은 변화하는 자연에 적응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이런 과정을 진화라고 하죠.

이정모 관장은 마지막 글에서 깨알 같은 자랑을 한다. 인류 생존의 힌트를 자연사박물관에서 배울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정확한 말이다. 이정모 관장의 말대로 '자연사'는 '실패한 생명'과 동치어다. 이미 멸종한 생명들이 전시되어 있는 그곳이 자연사박물관인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시간을 거쳤는지 또한 이들에게 닥친 지구적 위기는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역사라 하고 이를 배우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닥친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기는 우리에게 닥칠 것이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문명으로 어떻게 다가오는 미래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인가? 이 책에서 한번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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