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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Apr 18. 2016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중력파

오정근 교수의 <중력파>를 읽고 다시 한번 중력의 의미를 생각하다


2016년 1분기는 2가지 획기적인 이벤트가 있었다. 하나는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의 발견이고 또 하나는 이세돌과 알파고간의 기념비적인 바둑 대국이다. 둘 중에 경중을 따지기는 쉽지 않지만 과연 어떤 사건이 향후 우리의 삶을 더욱 획기적으로 변화시킬까 라는 의문을 던져본다.

우리의 삶을 더욱 변화시킨 것은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중력파의 발견에 베팅을 하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력파의 엄청난 파장은 바로 연이은 인공지능 물결에 쉽사리 부서졌다. 일반 대중의 눈에는 중력파는 과학의 그저 그런 발견에 불과했고 인공지능의 출현은 알고리즘에 의한 인간 지배라는 디스토피아를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점에 오정근 교수에 의해 <중력파>가 발간되었다. 이는 중력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과학 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매우 기쁜 소식이었다. 번역본이 아니기에 더욱 쉽게 <중력파>에 다가갈 수 있다는 기대는 당연히 덧붙여졌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중력파의 의미를 세세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였지만 혼자서 찬찬히 읽을 만한 책의 출현은 당연히 기쁜 일이었다.



너무나 매혹적인 프롤로그

오정근 교수는 프롤로그를 통해 중력에 대한 한편의 멋진 드라마를 보여준다. 중력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부터 중력이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자연의 4가지 힘에 대해 언급하며 중력 이론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 잘 서술해 준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중력이론은 그 정점을 찍었고, 중력파는 예견되었다. 그 중력파가 10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던 것. 그런 서사를 프롤로그에서 잘 풀어냈다.


중력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도 신비로운 힘이다. 우리는 누구나 중력의 영향을 받고 살고 있으며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략)

중력이 신비로운 이유는 다른 자연계에 존재하는 세 가지 힘과 너무도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자연계의 기본적인 네 가지 힘은 중력, 전자기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이다.(중략)

현대 물리학은 앞선 세 가지 힘에서처럼 중력을 매개입자로서 기술하고자 했고, 이러한 시도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중력은 본질적으로 다른 세 가지 힘과는 다른 힘이었기에 하나의 이론으로 잘 융화되지 못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론적 시도들이 이어져오고 있었다.(중략)

즉,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중력의 이론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아주 오랜 역사에서부터 인류는 중력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꿈을 꾸었다. 그 희망의 한편이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것이었고,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의 날개 역시 인류가 가진 그러한 소망의 일환이었다.(중략)

그럼에도 일반상대성이론은 여전히 별과 행성의 운동을 기술하는데 놀라운 성공을 가져다준 이론이고,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데 근간이 되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 많은 실험적인 그리고 관측 상의 증거들은 일반상대성이론의 확고함과 아름다움을 입증해주는 데 더 이상의 반론을 제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이 이론이 예측하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실험적 관문이 있다. 그것은 일찍이 1916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존재가 예견된 중력파이다. 이론적으로 예견된 지 10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직접적인 검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중략)

<중력파> 프롤로그 중 일부


시공간의 물결, 중력 그리고 뉴턴에서 아인슈타인까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은 무엇이 다를까? 뉴턴은 만유인력을 통해 중력이란 서로 간에 작용하는 힘이라고 했다. 사과가 땅을 향해 떨어지는 것처럼 달 역시 땅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 지상과 천상에 작용하는 하나의 법칙 그것은 바로 두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이 제시한 만유인력의 ‘힘’을 버렸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시공간이 휘게 만들고 그 휘어진 시공간 위를 물체가 움직인다고 생각한 것이다.

뉴턴의 중력이론이 도전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광속도 불변'의 법칙을 기본 가정으로 물체가 운동하는 상태는 빛 속도를 넘을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중력을 기술하고 있던 뉴턴의 생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뉴턴은 물체가 중력을 느끼는 데에는 어떠한 시간차도 허용하지 않고 즉시 중력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즉, 태양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면 태양이 사라진 지 8분 뒤에 실제로 태양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뉴턴의 중력이론에서는 만일 태양이 사라진다면 중력이 작용하지 않게 되어 우리는 그 즉시 태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 예견했다.

뉴턴이 생각한 중력의 개념과 달리 아인슈타인은 힘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라보며 중력의 원인과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본질을 물체가 움직이는 가속 운동과 동일하다 생각했는데 이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 원리인 등가 원리이다. 즉, 중력장 하에서 중력을 받는 물체의 운동은 가속 운동을 하는 물체와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모퉁이를 도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면 모퉁이를 돌 때 승객은 도는 방향의 바깥으로 원심력이라는 가상의 힘을 받게 되어 모퉁이를 도는 바깥 방향으로 넘어지게 된다. 이는 원운동이라는 가속 운동의 결과이다.

일반 상대성이론은 이처럼 뉴턴이 생각하던 중력의 개념을 본질부터 바꿔놓았다.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 시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상대적인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정의했다.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중력의 개념은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 휘어진 시공간에서 운동하는 물질이 겪게 되는 현상이었다. 즉, 힘이라는 개념을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기보다는 질량을 가진 물체 사이에 일어나는 운동 그 자체로 간주했다는 첨이다.

이처럼 일반상대성이론은 현재까지도 매우 높은 정밀도를 가지고 중력장 하에서의 물체의 운동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오늘날 거시 세계를 기술하는 이론의 '성배'처럼 여겨지고 있다.


웨버 검출기와 제국의 몰락, 그리고 새로운 시작

중력파의 직접적 검출을 위해 조지프 웨버는 검출기를 만들었던 이야기다. 그리고 웨버의 몰락과 새로운 방식으로 중력파를 찾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들이 서술되어 있다. 웨버의 '바 검출기' 이야기는 중력파를 측정하는 검출기가 시작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처음 들었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중력파를 향한 과학자들의 거침없는 노력들이 흘러넘쳤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노력들은 일반 대중에게 거의 알려져있지 않다. 일반 대중은 단지 지금의 '라이고 LIGO'로 중력파를 검출하였다는 것만 알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마찬가지였다. 책은 조지프 웨버 이후의 중력파 검출기의 발전과 다양한 실험 끝에 만들어진 '라이고 LIGO'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라이고가 가동된 이후 10년간의 스펙터클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 내용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두 가지 이야기는 웨버의 성공과 그 이후 몰락과 또 하나는 '암맹 주입 테스트'였다. 책은 이 '암맹 주입 테스트'를 가짜 신호를 인위적으로 주입해 이 신호를 찾을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실전 모의고사'라고 표현한다. 즉, 중력파를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암맹 주입 위원회'에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모르게 주입한 가짜 신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버고 그룹은 이 '추분점 이벤트'가 검증 위원회로 회부되는 것을 반대했고, 라이고 연구진은 그들이 힘을 쏟아야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전 과정의 데이터 분석에 대한 이견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일치했던 하나의 교감은 바로 결과가 무엇이건 간에 이 정체를 밝히자는 것이었다. 1년 6개월 뒤인 2009년 3월 16일, 캘리포니아 아카디아에서 열린 라이고-버고 연례총회에서 이 신호에 대한 '봉투 개봉'이 있었다. 라이고의 소장인 제이 막스는 연단에서 발표 슬라이드를 공개했고 다섯 번째 과학 기동에서 2개의 '암맹 주입' 신호가 있었음을 밝혔다. 그 하나는 밀집 쌍성계의 신호였고, 다른 하나는 '추분점 이벤트'의 주역인 버스트 신호였다. 밀집 쌍성계의 신호는 검출에 실패했고, '추분점 이벤트'는 논란의 여지 끝에 결국 '암맹 주입' 버스트 신호임이 밝혀진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과학자들은 중력파의 발견을 확신하고 나서 이에 관한 논문을 쓰기 시작한다. 여기서도 소소한 논쟁거리가 있다. 이런 소소한 부분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논문의 제목을 정할 때 '최초 발견'과 '직접 검출'이라는 문구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논의였고 매우 진지하게 펼쳐졌다. '헐스-테일러 펄서로부터 발견한 에너지 감소에 따른 중력파 존재의 확인 역시 중력파의 직접 발견으로 간주될 수 있기에' 그들은 이런 논의들을 매우 심각하게 펼쳤던 것이다. 결국 '직접'과 '최초'를 논문에서는 제외한 그들. 이런 부분에서 그들이 좀 멋져 보였다.


중력파의 최초 발견 공식 기자회견

우리는 중력파를 검출했습니다. 우리는 해냈습니다!
We have detected gravitational. We did it!

라이고 프로젝트의 첫 삽을 뜬지 30여 년, 아인슈타인이 그 존재를 예측한지 100여 년만에 드디어 그들은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이 발표 자리에 프란스 코도바 미국 과학재단 책임자, 라이고 소장인 데이비드 라이체 교수, 라이고 대변인인 가브리엘라  곤잘레스 교수, 라이고의 설립자인 킵 손과 라이너 와이스 교수 등이 참석했다. 면면이 중력파를 위해 많은 시간을 내던진 과학자들 이었다. 데이비드 라이체 교수의 일성은 매우 깔끔했으며 인상적이면서도 기억에 남을 한마디였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시작이다. 가시광선에만 의존하던 호모 사피엔스가 전파를 발견한 사건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화된 것처럼 말이다. 전파의 발견이 전파천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킨 것처럼 중력파의 발견은 또 다른 발걸음의 시작이다.

우주에서 오는 전파의 발견은 전파천문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탄생시켰고, 가시광선에 의존하던 광학관측에 더하여 전파라는 새로운 관측 수단을 선물해주었다. 이로써 우리는 광학관측을 통해 이해하던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우주에 대한 더욱더 심오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맥스웰과 그의 이론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헤르츠가 전자기파를 발견한 당시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헤르츠는 당시 그가 했던 발견의 중요성에 대해서 전혀 이해 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전자기파를 발견한 후, 그 실험에 감명을 받아 별견의 효용성을 묻는 한 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건 아무데도 쓸데가 없다. 단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이 신비로운 전자기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장 맥스웰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읽기 어려웠던 책, <중력파>

오정근 교수의 <중력파>는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소개와 웨버의 '바 검출기' 그리고 중력파 검출기의 진화에 대해 잘 쓴 책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이 책을 읽는다면 중력파 검출에 대한 과거 현재 그리고 중력파에 의해 파급될 효과까지 알 수 있는 훌륭한 책이다. 하지만, 잘 쓴 책과 읽을만한 책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중력파>는 가독성이 뛰어난 그래서 읽을만한 책이 아니었다. 몇 번을 읽어도 세부내용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고 나열식의 전개는 읽는 내내 책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같은 부분을 읽고 또 읽으며 느리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분절된 책 읽기는 더욱 책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기에 다시 처음부터 읽어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쉽지 않은 책이다. 그래도 중력파에 대해 쓴 국내 출간문들중에 이만한 책이 없다. 즉, 국내에 중력파를 일반 대중에게 제대로 소개할 만한 책은 출간되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중력파에 대해 국내 독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책은 3-4년 이상 기다려야 할 듯하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출간된 책중에서 중력파를 제대로 설명한 책이 전무했고 두 번째는 프롤로그가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가 좋더라도 책 내용이나 구성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 책이 그러할 줄은 몰랐다. 프롤로그는 너무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여전히 나에겐 좋은 책을 고르는 눈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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