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 작가의 최신작인 <첫숨>은 지구, 화성, 그리고 달의 단상이다
<첫숨>을 읽다. 책을 덮다. 그리고 날것의 감상을 적어냈다. "~"안의 내용은 <첫숨>의 내용을 옮겨 적은 것이다.
중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고향을 그리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일지도 모른다.
태양계 여행이 일상화되던 그 시절, 중력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 무엇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중력은 고향인 것이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하늘에 반짝이는 빛들을 동경하였고, 그 결과 태양계내로의 여행이 일상화되었다. 달에 기지를 만들어 월인이라 불렀고 화성의 대기 등을 개조해서 화성인을 만들어냈다. <첫숨>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바로 그 시점이다. 지구인, 화성인, 월인 그리고 지구와 화성 인근에 만들어진 인공도시인들이 존재하는 그 시절을 상상한 것이다.
60만 명이 거주 가능한 거대한 인공도시, 첫숨
거대한 우주 정착지가 만들어졌다. 그것도 화성인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첫숨의 중력은 지구 중력가속도의 93퍼센트로 맞춰졌다. 지구의 중력을 1이라고 하면 첫 숨의 인공중력은 0.93인 것이다. 지구에서 거대한 비자금 내역을 조사하던 조사관이 첫숨으로 망명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달 기지 철수로 첫숨에 오게 된 달 출신 무용가인 '묵희'의 바로 위층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화성출신의 첫숨 최고 권력가인 송영과 지금의 화성이 존재하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간 '화성의 은인가' 장녀 나모린과 연결된다. SF적이면서도 지극히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배명훈 작가는 중력을 통해 출신지를 구분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첫숨이 지향하는 정책_모두의 동맹이 되려는 도시
"첫숨은 출입이 꽤 자유로운 도시였다. 지구궤도 연합과의 분쟁 이후 중재원을 유치하면서까지 추진하고 있는 중립주의 정책의 핵심 내용이기도 했다. 누구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인류 전체의 공공재가 되는 것,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누구에게도 공격당하지 않을 모두의 동맹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정책의 근본 사싱이었다."
모두의 동맹이 되려는 도시, 바로 그곳이 첫숨이다. 화성의 자본으로 세워졌기에 그리고 화성보다 지구에 인접했기에 지구의 지속적인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첫숨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립국을 선택했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중력을 통해 바라본 네이티브
지구 중력 1, 달의 중력 1/6, 화성 중력 1/3(실제로는 0.39다), 첫숨 중력 0.93이다. 출신지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중력으로 인해 네이티브가 달라진다. 달 출신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할 때 아주 무거운 중력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결국 출신지를 보여주는 단상이 되며, 이는 첫숨의 거주자들을 미묘하게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이 된다.
미래에 어느 날, 화성이 개발된다면 벌어졌을지도 모를 그러한 일들
화성에 탐사선이 간다. 그리고 최초의 정착인들이 생긴다. 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한다. 하지만 화성에서의 성과는 연기처럼 희미해지고 점점 회의론이 든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지구 이외의 공간에 대해서 신경 써 줄 여유가 사라진다. 생명유지가 가능한 물품이 지원 되지만 이것마저 끊길수도 있다. 화성으로 보내는 우주선 발사 비용 역시 회의론자들의 회의 대상이 되곤 하던 그 시절. 화성에 나간 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생각하게 된다.
"하여간 재앙이었다더군요. 그 시절 화성은. 생존도 문제고 인구 유입도 안 되고 다음 단계 프로젝트가 중단돼서 당장 할 일도 없어지고. 일이 계속 진행이 돼야 선구자가 되든 땅 부자가 되든 하는 건데 갑자기 기약도 없이 몇 년을 기다리라니. 화성에 어떤 농담이 돌았냐면, 저래 놓고 자기들 다 죽고 나면 탐사선 보내서 최초로 화성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았다고 떠들어대는 거 아니냐고."
작가는 SF를 적어내기보다 실제로 있음직한 일들을 그려낸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모두 그렇듯 작가의 상상력은 이러한 일들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적어낸다. 이것이 배명훈 식 글쓰기의 강점인 것이다.
첫숨에 있는 기묘한 하루, '달의 날'
일 년에 하루, 첫숨에서는 중력이 바뀐다. 달의 날이 되면 중력이 지구 중력의 1/6이 되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다 그렇게 보이니까요. 지금은 그래요. 그런데 세상이 바뀌면 다르게 보일 거예요. 세상이 바뀌냐고 묻고 싶으시겠지만, 바뀌기도 한답니다, 여기서는. 그 공연은 꼭 보세요. 그날 이후로는 달라질 테니까요."
첫숨에서는 인공중력을 생성시키기에 특정 날짜에 중력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변화된 중력은 묵희로 하여금 아주 우아하고 뛰어한 예술을 공연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지구 중력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지구에서의 삶을 쏙 빼닮은 일상이 펼쳐졌다. 하지만 달의 날을 겪은 사람은 누구나 그 일상이 영원불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저절로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택되고 건설되었으며 인간의 의지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일상. 그 생활은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삶은 더 이상 절대적이고 신성한 것이 될 수 없었다."
중력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이며 인위적인 인간에 의지에 의해 유지된다면 어쩌면 삶이 서글퍼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믿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허물어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첫숨>이라는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배명훈 작가의 글을 발췌
"저도 그날은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나왔는데 분명히 기상 계획 표상으로는 계속 맑고 더울 예정이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비가 쏟아진 겁니다. 하필 기상 의외성 변수가 제일 크게 봘휘된 날이었던 거죠."
"그리고 화성 애들은 미리 준비하고 었었고요?"
"예, 그래서 학부모들이 항의를 했습니다. 그 학교뿐만 아니라 인근 학교까지 다. 이면 계획표 같은 게 있는 거 아니냐며. 당시 기상청장 딸이 중학생이었는데, 비를 쫄딱 맞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진이 어디에 퍼지는 바람에, 애매하긴 했어도 사건은 그냥 무마되고 넘어갔지요. 그런데 그렇게 무마되기에는 문제가 좀 있었던 게, 기상청장도 어차피 지구 출신이었거든요. 상류층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 양반이야 아직 첫숨 지배층에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으니까."
화성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첫숨의 권력층은 당연히 화성인들이다. 이들을 구분 짓는 제일 큰 요소는 중력의 다름이며 이러한 구분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드러냄을 배명훈은 기상청장의 딸도 비를 맞고 다닌다는 유쾌한 도발을 통해 보여준다. 그만의 해학이며 그만이 가진 독특함이다.
마무리하며
<첫숨>은 배명훈의 글쓰기가 10년 차에 도달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송영의 '어머 여사'는 그가 권력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며, 한묵희는 그러한 권력의 억압을 벗어나려는 '대중'이다. 중력의 억압과 중력의 다름을 벗어나서 맞이하게 되는 무중력의 그 해방감을 책을 읽으면서 계속 느꼈다. 무언가 터져 올라올듯한 그 느낌을 제대로 글로 표현하였기에 읽는 내내 벅차오름이 있었다. '숨겨둔 아이'의 설정이 매우 아쉬웠지만 이 역시 작가는 미지의 어떤 존재를 그리워한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요소다.
<타워> <안녕, 인공 존재!> <총통 각하> <신의 궤도> <맛집폭격> <은닉> <가마 틀 스타일> <청혼>을 읽었고 마지막으로 <첫숨>을 읽었다. 이 정도면 배명훈 작가를 알만도 한데 여전히 그의 생각이 궁금하다. 한 번은 만나보고 싶은 사람 리스트에 배명훈 작가가 올려졌다. 이제는 그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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