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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Feb 17. 2016

<총통 각하> 현실을 바라보는 안경

배명훈의 <총통 각하>는 유쾌한 굿판이지만 가슴 한 곳이 아련하다


MB는 나의 뮤즈! 정신적 고통을 글로 승화시킨 배명훈식 글쓰기는 언제나 즐겁다

작가는 이 책을  그분에게 헌정하고 있다.  그분에게서 영감 받은 것들을 하나하나 글로 풀어냈다. 멋지다. 이렇게 고통을 이쁘게 승화시킨 작가가 말이다.  그분께 받은 분노와 스트레스를 술이나 한 번의 욕설로 내뿜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글을 적어냈으니 말이다. 10개의 짧은 단편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작가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받고 공감하고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역시 멋진 글쟁이다.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는 동면을 통해 시간여행을 손쉽게 보여준다

<총통 각하>는 단편집이다. 첫 번째 단편은 <바이센테니얼 챈슬러>인데 동면 기술을 가지고 흥미로운 상황을 보여준다. 1960년대 중반에 아주 뛰어난 동면 기술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 시대 상황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즐겁지 않은 누군가가 10년 후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고 동면에 들어간다. 그리고 깨어낫는데 아직도 대통령은 그대로다. 먼가 이상하다. 대통령이 변화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10년 후의 세상에 적응해보려고 1,2달 정도 새로운 시대를 살아본다. 역시나 어렵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든다. 그래서 그는 다시 좀 더 오랜 기간 동면에 들어가보기로 한다. 40년이 흐른 어느 날, 그는 동면에서 깨어난다. 어라.... 예전 대통령의 딸이 그가 깨어난 시대에서 다시 대통령을 하고 있다. 엇, 이건 무엇 일고?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40년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다시  그분의 따님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것이냐 말이다.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는 총통 각하의 임기를 살아내기가 너무 어려운 과학자가 총통 각하의 임기 이후로 동면하는 설정이다. 시간여행이라는 쉽지 않은 설정을 버리고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가능한 동면 기술을 소재로 시간여행이라는 효과를 표현했다. 이런 점에서 배명훈 작가는 참 뛰어나다. 그리고 유쾌하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런 유희적 글놀이로 승화하였으니 말이다. 배명훈 작가는 MB가 당선된 후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바이센테니얼 챈슬러>에서처럼 여지없이 무너졌다. 총통 각하가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같은 시대에 머무는 느낌일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동면 기술이 저렴해진다면 이러한 정치적 망명을 시도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혁명이 끝났다고?>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만한 아련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다

대학생 시절 만나 좋아하게 되었던 선배 누나를 다시 재회한다. 설렘과 추억에 대한 환상은 선배가 데리고 나온 아들로부터 깨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민주화 운동에 열심이었던 그 선배는 세월의 흐름에 씻긴 동글동글한 돌이 되어있었다. 회전초밥집에서 선배 누나의 아들이 먹은 접시를 헤아리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보여주는 주인공. 누구나 그 주인공이었을지 모른다고 배명훈은 언급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선배가 데리고 나온 아들에게 큰 소리를 지르는 그 남자의 마음을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가 알까!


<초록 연필>은 <타워>에서 권력을 향해 헤엄치던 35년 산 술병을 떠올리게 한다

바벨이라고 별명이 붙은 빈스토크 내부의 권력지도를 그리던 <타워>. 빈스토크 내부의 권력관계에 따라 이동하던 35년 산 술병은 <초록 연필>에서 펜으로 등장한다. 펜의 이동을 통해 권력관계를 그리는 모습은 배명훈이 권력을 바라보는 시선인 것이다. 장인의 초록 연필은 이리저리 떠돌며 결국 한 곳으로 향하는데....


<새벽의 습격>은 낙하산의 단면을 보여준다

<새벽의 습격>은 문학적 해학의 끝판왕이라고 부르고 싶다. 전투가 한참인 하늘을 나는 수송선, 곧 그들은 지면을 향해 뛰어내릴 준비를 한다. 뛰어내리기 전의 그 긴장감과 묘한 희열은 이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 잠시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이 자리를 차지하는 낙하산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역시 배명훈.


<위대한 수습>은 너무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위대한 수습에 나오는 총통은 있음직한 총통이다.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위정자들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총통이기에 오히려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사논평에 나올 만도 한 이야기인 것이다. 언뜻 강을 파헤친 사업이 연상되면서 피식 웃음을 짓게 만들 단편이다.

'나는 침을 삼켰다. 그걸 꼭 타셔야겠습니까 하고 묻지 못했다. 직언은 내 몫이 아니었다. 총통은 말없이 서류를 읽고 있었다.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자네 요즘 너무 생각이 많아. 그러려면 처음부터 시험 봐서 관직에 들어갔어야지, 비싼 돈 들여서 관직을 살 게 아니잖아. 우리끼리 왜 이래, 촌스럽게.'(<총통 각하>에서 발췌)


<발자국>은 시선에 대한 이야기다. 지키려는 것은 등 뒤에 둔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새삼 눈에 띄는 게 한 가지가 더 있었어요. 시위대를 둘러싸고 쭉 늘어서 있는 경찰 병력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 말이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있더라고. 그래서 그 생각이 났지. 그 여자의 나라에서 용을 둘러싼 경찰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는지가. 어디였겠어? 당연히 용 반대쪽이었지. 그때 깨달은 거야. 지키려고 마음먹은 건 등 뒤에 두는 거구나. 시선이 향하는 쪽에는 위험해 보이는 걸 두는 거구나.'(<총통 각하>에서 발췌)

그렇다. 지키고 싶은 것은 등 뒤에, 지키고 싶은 대상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둔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산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일들. 그러한 일들을 배명훈 작가는 이 글에서 잘 보여준다.




배명훈의 다른 책 후기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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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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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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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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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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