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uth Point Jan 14. 2016

<청혼> 우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독백

배명훈 작가의 <청혼>은 우주를 향한 세레나데이다.



지구는 최대 460M/s의 속도로 스스로를  돈다. 1회전시 1일이 걸린다.
이런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태양 주위를 29.8Km/s의 속도로 공전하고 있다. 1회전시 365일이 걸린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220Km/s의 속도로도 공전한다. 1회전시 2억 5천만 년이 걸린다.


지구는 이렇게 매일 맹렬한 속도로 빈 공간을 헤엄친다. 목적도 없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다. 배명훈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우주선'을 탄 인류가 어떻게 우주에 관심이 없을 수가 있냐고 묻는다. 작가는 인류가 이미 우주인이라는 잊힌 진실을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지구라는 멋진 우주선에 탑승한 우리는 가끔 하늘을 바라다봐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배명훈 작가는 당신들에게 다시 묻는다. 지구라는 우주선에 탑승한 목적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여기까지 보았다면 이 <청혼>이라는 책이 우주에 관한 책인지 아니면 제목 그대로 <청혼>하는 내용인지 아리송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텅 빈 너무나 텅 비어서 적막하다 못해 쓸쓸한 공간에서 지구에 있는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궤도연합군 소속 작전장교인 남자 주인공은 지구에 있는 결혼할 상대에게 편지를 쓴다. 궤도연합군 소속 우주함대가 머물러 있는 곳은 지구로부터 광속으로 17분 44초가 걸리는 지점이다. 그 위치는 바로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다. 이 우주함대는 지구의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였기에 이 함대를 우주로 보낸 이후 지구의 궤도사령부는 고민에 빠진다. 혹시, 이 함대가 반란을 획책하게 되면 지구는 바로 우주함대의 손에 떨어지니까 말이다.


<청혼>은 2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6번인가 7번 정도를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너무 오묘하다. 1,2번 읽었을 때는 이 책이 거리가 떨어진 그래서 더욱 아리따운 연애편지라고 생각했다. 배명훈 작가가 공군에서 장교로 근무했고 이 당시 받았던 느낌을 바탕으로 전개한 연예 소설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면 여자 주인공에 대한 이미지는 사라지게 된다. 그 자리를 우주가 대신 채우곤 한다. 어쩌면 이 책은 우주에 대한 세레나데라는 생각까지 든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 명문을 가져와 본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윤리는 근친상간에 관한 금기가 아니라 위와 아래를 구분하는 능력이래.  

(태어나면서부터 인류는 중력에 의한 속박을 받는다. 원죄라면 원죄일 수도 있는 이 중력에 의한 지배로 인해 위와 아래가 구분되지 않는 공간에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가진다. 작가는 이를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다. <청혼>을 읽는 내내 필자는  땅바닥을 확인하곤 했다.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나를 잘 지탱해주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날아온 거리만큼, 그 지긋지긋한 우주공간만큼 사랑하는 거라고. 그래서 널 묶어두고 싶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거리라는 이름의 물리적 장벽  말이야.... 인류 전체에게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만큼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던 거리니까.

(연예 시기가 중반을 넘어서면 서로에 대해 아쉬운 점이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균열은 내가 이렇게 널 위했는데 라는 생각으로 가지를 뻗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내용을 우주 공간의 거대함으로 묘사했다. 즉, 무지막지한 먼 거리를 감수했다가 사랑의 크기로 변한 것이다.)



우리는 바닷물조차 없는 6,400킬로미터의 우주 한구석에 깊숙이 잠겨 있어. 그 너머에 있는 단 한 개의 점과 그 뒤에 다시 펼쳐진 수천 킬로미터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

(우주함대의 배치에 대한 묘사다. 너무나 광활해서 너무나 슬픈 감정이 느껴진다. 인간의 한계가 절절히 묻어나고 이런 우주에 대해 인류는  더욱더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우주에는 대기가 없어서 밖에서 아무리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도 그 안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거든. 아무 예고도 없이, 별 긴장도 느끼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거야.

(여러 전투씬에 대한 소설을 읽어보았다. <청혼>의 이 묘사가 나는 전쟁을 묘사한 그 어떤 글보다 서글펐다. 전쟁이 가지는 속성을 어쩌면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점은 작가가 공군 장교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투기들 역시 한 순간에 미사일에 맞아서 소멸되니까 말이다. 소멸되기 직전까지는 어쩌면 무한한 고요함이 전투기 내부를 지배한다.)


우주에 나와있는 것들은 세 가지 정도의 방식으로 움직이거든. 행성처럼 무언가 중력이 있는 것 주위를 비교적 짧은 주기로 계속해서 돌고 있거나, 굉장히 긴 직선을 그리면서 어딘가를 향해 끝도 없이 날아가고 있거나, 아니면 제자리에 멈춰 있거나.
시간의 저편. 말하자면 저 함대는 다른 차원에서 온 게 아니라 다른 시간에서 왔다는 거지. 이것도 망상으로 들리겠지만...
'올바른' 평행 상태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고, 그걸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몸을 뒤집어야 한다고 믿는 거지.
인류가 만들어 낸 첫 번째 우주함대가 깨부수려 했던 건 외계에서 날아온 정체 모를 함대가 아니라 지구 출신과 우주 태생, 그 두 인류 사이에 놓여 있던 거리의 장벽이었으니까.

(우리의 직관은 지구로부터 만들어졌다. 그 직관들은 지구를 벗어나는 순간 모두 버려져야 할지도 모른다. 배명훈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가끔 지구를 벗어난 경험을 하곤 한다.)



고향이 생겼어. 네가 있는 그곳에. 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우주함대에 있는 남자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연인에게 글을 남긴다. 우주 저편에서 당신의 별이 되겠다고 말이다. 이 책은 아련한 연인 내음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 사모의 대상이 우주라고 화살표를 가리키고 있다. 배명훈 작가는 어쩌면 아래와 같은 숨은 제목 '(여자에 대한 청혼이 아닌 우주에 대한) 청혼'을  기획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은 한 독자라도 이것을 알아주기를.....







배명훈 <청혼>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은 김보영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다. 두 작품 모두 우주공간에서 서로의 연인에게 보내는 레터를 메인 내용으로 삼고 있다. 좀 더 '달달한' 기다림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https://brunch.co.kr/@jamding/100


매거진의 이전글 <맛집 폭격>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바로미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