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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Apr 19. 2016

수학 좋아한다면.... <수학 걸>

고등학교 시절 의미 없이 공부했던 수학이 다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종이와 펜을 들고 읽어 내린 <수학 걸>


중고등학교 시절 남녀합반은커녕 남녀공학도 아닌 곳에서 남자들만의 야생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가끔 상상해보기도 한다. 여학생과 수업시간에 배웠던 부분을 함께 이야기하고 논의하고 토론해보는 그런 상상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상은 대학교에 와서도 여지없이 무너져버렸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남자친구들로만 이루어진 그룹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나에게 <수학 걸>이라는 이름의 책은 당연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학 걸> 책을 읽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 나도 여자친구들과 수학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의 주인공처럼 즐거웠으리라.


이 책은 묘령의 여학생이 다가와 갑자기 수열문제를 내면서부터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은 고심 끝에 답을 내놓지만, 이런 관계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된다. 남자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문제를 내며 그가 내놓은 해답보다 좀 더 간결한 풀이를 선사하는 '미르카'. 미르카로부터 수학적 성장을 해가면서 반대로 '테트라'에게 수학에 대해 이해를 넓혀주고 있는 주인공. 당연히, 이런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있을 리 없다. '수포자'부터 다양한 수학을 증오하는 단어들이 난무하는 곳이 한국의 고등학교다. 수학이라는 학문을 딱딱하게 보지 않고 수학이 주는 맛을 알아가고 그 무궁무진한 향연을 만끽하는 이들을 보며 한 때 수학을 정말 좋아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당시 이 책에서처럼 함께 수학을 이야기할 여학생이 있었다면 더욱 멋진 시간이었겠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일본에서 종종 수학과 과학 관련해서 읽을만한 책들이 소개되는데 수학 관련해서 이번에 읽은 책은 바로 <수학 걸>이었던 것이다. 이미 과학 관련해서는 <시간론> <양자론> 등의 멋진 책들과 함께 하였기에 이번에는 수학을 선택했던 것. 저자인 유키 히로시는 사람들을 수학에 좀 더 쉽게 접근시키기 위해 남자 주인공과 '미르카' '테트라'라는 여자 주인공들을 출연시킨다. 그의 전략은 유효했고 딱딱하던 수학 관련 책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만약 수학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읽기에 무리가 없도록 만들어졌다.


이 책은 연습장을 옆에 두고서 풀어가며 읽어 내려야 한다. 20년 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수학 이야기. 책은 미분과 적분 그리고 제타 함수로 이어지는데 후반부부터는 고등학교 과정을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수열과 그의 패턴을 찾는 문제들이라던지 수열과 생성 함수, 산술 기하 평균은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다.


이 책은 조화수와 테일러 전개 그리고 바젤 문제로 넘어가 분할수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구성은 유키 히로시가 수학을 통해 무한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으리라. 수학의 많은 부분 중에서 무한을 강조하게 되면 이러한 구성이 만들어지게 된다. 만약, 저자가 미분과 적분에 방점을 찍었다면 굳이 제타 함수 등을 언급하지 않아도 되었다.



읽으면서 기분이 따스해졌던 그런 책


햇살 좋은 주말 오후, 봄 햇살은 책 위로 흘러내렸다. 바스락 소리와 함께 넘어가는 책장 옆에는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하얀 백지위를 춤추는 몽당연필이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수학에서 '닥치고 풀어라'라는 말은 그리 나쁜 말이 아니다. 우선 풀고나서 그 의미를 음미하더라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이런 책은 머리보다는 손으로 읽어내려야 저자가 말하는 바를 더욱 쉽게 찾아낼 수 있으며 저자와 함께 호흡이 가능해진다. 주변 상황이 복잡한 날, <수학 걸>과 함께 '닥치고' 주어진 문제들을 풀어내리니 잡념들이 사라졌다.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는 날 이런 수학책을 읽어내리라. 국내에도 수학의 의미들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줄 만한 책들이 풍부해지길 바라본다. 그래야 종종 녹슨 수학 실력을 잠시나마 갈고닦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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