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글: 한강을 꿈꾸던 아저씨
고등학교 때까지 경상도에 살았다. 그때까지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수학여행을 제외하곤 나의 행동반경은 하나의 도시에 머물렀던 것이다. 인근 도시로 기차 여행을 떠나는 것이 커다란 낙이었다.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큰 기회였다. 물론 혼자서는 아니었다.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댁 또는 친척들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가기도 했지만 종종 기차를 탔다.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비둘기호 모든 종류의 기차를 타 보았다. 가까운 거리는 비둘기호를 타고 다니는 것이 더 빠른 경우도 있었다. 예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항상 기차역에 도착해서 제일 빠른 기차표를 구매하곤 했다. 다행히도 새마을호부터 비둘기호까지 모두 정차하는 도시에 살았기에 도착해서 가장 빠른 기차를 타곤 했다. 부모님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기차를 타고 오징어 땅콩부터 여러 과자를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비록 지금은 운행이 중지되었지만 비둘기호에서 과자 하나 사서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먹던 기억은 사진처럼 박제되어 있다. 햇살이 창문으로 달려들어오고 약간은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이동식 카트가 통로를 지나간다. 카트를 멈추고 과자를 고르던 기억은 나를 다시 어릴 적 시간으로 이끈다.
드디어 19년 동안 살았던 도시를 벗어나게 되었다. 대학교를 오면서부터 서울에 살고 있다. 종종 고향을 묻는데 경상도에 살았던 기간보다 서울에 살았던 기간이 훨씬 길다. 이러하기에 종종 헷갈리기도 하다. 더 오래 살았던 공간이 고향일지도. 하지만, 사투리는 여전하다.
경부선 기차를 타고 서울에 진입하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기차가 한강철교를 건널 때 보이는 63 빌딩과 한강이 그 장면이다. 아니 인상적이었다는 표현을 넘어서서 아직도 그 장면은 기억에 잔잔히 남아있다.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면 바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그때 앉았던 좌석이 떠오른다. 한강철교로 진입하는 방향에서 왼쪽 창문 쪽 자리였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나에게는 이 장면이 서울의 첫인상이었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 이후로도 수없이 한강을 찾았다. 특히 여의도에서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를 바라보며 한강을 바라본 적이 많았다. 맥주 한 캔 들고 한강 바로 앞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들. 여의도에서 바라보면 용산구의 화려한 불빛들이 참 빛나 보였다. 그렇게 한강에 대한 기억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쌓여갈수록 매일매일 한강을 바라보고 싶었다. 20대 초반, 꼭 나이 들면 한강이 보이는 집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한강변에서 맥주 마시던 학생은 어느새 아저씨로 변신해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이사하면서 한강이 보이는 집을 가지게 되었다. 20년 전의 기억들이 한가득이다. 여의도에서 강북을 바라보며 마셨던 맥주가 몇 캔이었던가. 이제는 강남 쪽 한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욕심은 어느새 눈앞에 펼쳐졌다. 완전한 한강 조망권은 아니지만 한쪽으로는 롯데월드타워 방향 한강이 펼쳐지고 다른 한쪽으로는 성수/성동/압구정 쪽 한강이 보인다.
하지만, 집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모습보다 새벽이나 해 질 녘, 어스름이 다가오는 밤에 한강에 나가서 한강을 찍는 사진이 훨씬 더 아리땁다. 집에서는 일부 가리는 뷰도 있지만 한강에 나가면 탁 트인 곳에서 바라보면 항상 이쁘다. 40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뷰 포인트가 점점 늘어나고 좋아진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오늘도 이런 노을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