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기억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갔다. 여름날, 제일 생각났던 것은 바로 샴페인.
더운 여름과 샴페인이 머릿속에서 연결된 건 어릴 적 기억이 아니다. 대학에 들어온 후 한 번의 인연이 나를 와인 그리고 샴페인으로 이끌었다.
샴페인 하면 제일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 바로 더 버블스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곳.
한때 압구정 한양파출소 인근 2층에 더 버블스라는 샴페인 전문 바가 있었다. 사라진 지 약 7-8년이 된듯한 이곳은 그 당시 샴페인 마시는 사람들이 종종 들리던 바였다. 당시에 샴페인 전문 바가 여기밖에 없었던 탓에 저녁시간에 가면 익숙한 얼굴들을 보곤 했다. 하지만, 사라질 수밖에 없는 아쉬운 장소였다. 그 당시 샴페인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말이다.
더 버블스 이후로 지금까지도 샴페인만 판매하는 전문 바가 없다.
기억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페트뤼스라는 와인바도 있었다.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청담사거리 방향으로 200M 정도 걷다 보면 나오는 그 당시 랄프로렌 건물 지하였다. 자주 가던 와인바였는데 주말마다 나라별 품종별 와이너리별로 시음회를 개최해서 와인의 기초를 다졌던 장소이다. 여기서도 무더운 여름날 샴페인을 비교 테이스팅 했다. 샴페인을 몇 번 접했던 날들은 항상 무더운 여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샴페인과 함께 떠오르는 것,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다.
떠올려보면 청담동에 많은 와인바가 생겼으며 지금의 몰트 위스키 전문바처럼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그쪽거리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곳은 까사델비노다.
여름 햇살이 유난히 와인과 연결되는 이유는 또 있다. 위에 언급된 갤러리아 백화점 지하에 에노테카가 있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한 그 에노테카다. 토요일 이른 오후에 항상 와인 테이스팅 행사가 있었고 여기에 참석한 후 인근 거리를 거닐 때면 항상 강열한 햇살이 날 반겼다. 나만 취한듯한 그 느낌. 나만 이 거리에서 유리된 듯한 그 느낌 말이다.
더 버블스, 페트뤼스, 그리고 예전의 에노테카는 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 기억이 너무나 인상 깊어서 가끔은 그 꿈을 보곤 한다. 이미 나의 뇌리 속에선 샴페인을 마셨던 장소와 오감이 인상 깊은 여름날와 연동되었다.
지난 여름 길을 걷다 눈부시게 따가운 햇살이 시선을 어지럽힐 때마다
그 한 모금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