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직장인의 미국으로 가는 결정
석사를 생각할 무렵,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앞섰다. 학비는 얼마나 될지,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막막했다. 그렇다고 주위나 회사에 “유학을 준비한다”는 말을 꺼내며,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일을 이미 시작한 것처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예전에 유학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고 미국에서 학부를 나온 친구들도 좀 있었지만, 갈지 안 갈지도 모를 혹은 못 갈지도 모를 불확실한 석사 준비를 위해 주위에 알리거나 유학원이나 컨설팅의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잘 모르는 학교, 설명을 길게 해야만 이해받을 수 있는 학교에 합격했을 때, 실제로 갈 마음이 없는 상황에서까지 돈과 시간을 더 쓰고 싶지 않았고, 괜히 주변에 알렸다가 “그래서 어디 됐어?”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받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가능성만을 구구절절 설명하게 될 것 같아서다. 나중에 추천서를 받을 시점을 이야기할 때 좀 더 이야기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생각은 정확했다.
막연히 누군가에게 학교 이름을 말했을 때, “아, 거기?” 혹은 “오”라는 짧은 감탄사가 나올 만한 곳에서 석사를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허영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 정도의 확실한 상징이 필요했다.
내게 석사는 ‘꿈’이라기보다 ‘투자’에 가까웠다. 커리어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었고, 일정 기간 소득을 포기하는 선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석사 기간 동안의 기회비용과 그 이후의 효용을 냉정하게 저울질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세운 가장 큰 전제는 이것이었다.
커리어를 멈추면서까지, 사람들이나 나조차 잘 알지 못하는 학교에는 가지 않겠다.
이 기준은 꽤 많은 선택지를 자동으로 지워주었다.
영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영국과 유럽의 학교들도 자연스럽게 옵션에 올라 있었다. 제도도 익숙했고, 영국, 독일, 네덜란드를 비롯해서 프랑스의 INSEAD, HEC, 스페인의 IESE, IE 등 많은 비영어권 국가에서도 MBA 프로그램만큼은 영어를 기본 언어로 사용하고 있어 언어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국이나 유럽의 학교 이름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소르본 정도를 제외하면, 학교 이름을 말해도 추가 설명이 필요했다. “거기는 이런 학교고, 이런 전공이 강하고…”라는 말을 덧붙여야 했다. 그 설명을 해야 하는 순간, 이미 내가 원했던 “오”라는 반응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반면 미국은 달랐다. 몇 년간 쓸 일은 없었기는 했지만, 내가 영국에서 살았던 만큼 영어에는 비교적 익숙했고, 언어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조건, 즉 ‘이름만으로도 의미가 전달되는 학교’라는 기준을 가장 충족시키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국가에 따라 요구하는 서류도 다르고, 선호하는 백그라운드도 다르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범위를 좁혔다. 미국, 그중에서도 동부. 선택지를 줄이는 대신, 그 안에서는 최대한 깊이 파보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있는 금융업,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던 투자와 혁신의 중심이 어디인가를 생각했을 때, 답은 명확했다. 가장 앞서 있고, 가장 공격적으로 새로운 영역에 투자하고, 자본과 인재가 동시에 모이는 곳. 그 역시 미국이었다.
석사는 나를 다른 사람이 되게 해 줄 마법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커리어를 밀어주는 도구여야 했다. 그렇다면 그 도구는, 가장 큰 무대 한가운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품고 있고, 그들이 모두 내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실감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