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가기로 했다. 당장.

8-10월 (지원까지 약 3개월)

by James


애초에 잡아두었던 열두 달 중, 어느새 여덟 달이 지났다.

달력 위에서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문서로 정리해 보면 변화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동안 직무 경험이 여덟 달만큼 늘었고, 논문을 하나 쓰고 있다는 사실. 다만 출판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에 한국 증권사에서 수상한 사내 대회 이력 하나, 그리고 영어 공인 성적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종이에 적어 놓고 보니, 시간은 꾸준히 흘렀지만 내 발전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 않았다. 분명 노력은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퇴근 후 독서실,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까지 쪼개어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 노력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상했던 준비 기간의 칠십 퍼센트가 이미 지났는데, 나는 칠십 퍼센트만큼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경쟁자와 비교해 보아도 내가 그만큼 앞서 있다는 확신은 없었고, 그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아직 칠십 퍼센트 지점에 와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물론 변화는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이 노력이 석사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적어도 올해를 성실하게 살았다는 흔적 하나쯤은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 처음에는 나 스스로 확신을 가지기 위해 그리고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시작했던 논문은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들도 조금씩 진척되고 있었다. 대학 시절, 강의실 구석에 앉아 정작 중요한 시험공부 대신 사업 이야기를 하던 순간들이 문득 떠올라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석사를 떠나서,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인간 컴퓨터 상호작용(HCI)과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영역에 대한 확신만큼은 생겼다는 점이다. 결국 석사라는 선택도, 금융이라는 내가 속한 세계에서 성공하고 나만의 엣지를 갖기 위한 수단이라면, 설령 석사가 되지 않더라도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느껴졌다.


다시 석사 이야기로 돌아오면, 하루의 루틴은 점점 더 단순해졌다. 출근길에는 태블릿으로 강의를 들었고, 아침 운동을 하며 영어 뉴스를 틀어두었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틈틈이 단어장을 넘겼고, 점심은 혼자 먹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는 곧바로 회사 근처 독서실로 가는 길 카페나 분식집에서 저녁을 때우며 그날 들었던 강의와 단어, 논문 자료를 빠르게 복습했다. 그리고 막차시간이 될 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는 날에는, 어차피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는 걸 핑계 삼아 자리를 뜨지 않고 새벽까지 개인 공부를 하다 돌아오는 날도 이어졌다.


오랫동안 준비하는 시험들이 대개 그렇겠지만, 무작정 소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멈춰 서서 스스로를 판단해야 했다. 매달 그동안 공부했던 미국 석사 요건들을 다시 꺼내 놓고,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나 자신을 대입해 보았다.


오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유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칠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팔월. 준비 기간의 칠십 퍼센트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내가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대학들은 역시,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이비리그라니. 어쩌면 이름을 들어본 곳 정도에서 만족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지원서에서 가장 큰 약점은 무엇일까.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수많은 입학 지원서 더미 속에서 내 지원서를 짧게 훑어본다면, 어디에서 멈출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답은 하나였다. 학점이었다.


미국은 지원자의 학점 자체도 중요하게 보지만, 그보다 학생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문제는 나의 학부 성적이 그 서사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학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A를 받지 못한 것이 아쉬워, 졸업 논문에서 받은 A 하나를 제외하면 성적은 전형적인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그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금융업계로 피봇 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내린 결정이었고, 누군가 이유를 묻는다면 당시의 상황과 판단을 충분히 설명할 자신도 있었다. 전공과 비교적 거리가 있는 업계로 가기 위해, 졸업 학년의 대부분을 강의를 거의 듣지 않고 금융 관련 논문을 혼자 독학하며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설명은 어디까지나 ‘설명할 기회가 주어진다면’의 이야기였다. 수백, 수천 명과 경쟁하며 석사 한 자리를 놓고 겨루는 환경에서, 과연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그 인정이야말로, 다음 선택을 고민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었다.


애초에 잡아두었던 열두 달 중, 어느새 여덟 달이 지났다.

대학원에 가기로 했다. 당장.


아, 당장 미국석사는 갈 수가 없다. 아직 지원도 안 했거니와 지금 이 모든 게 원하는 미국 석사를 가려고 준비하는 건데 아무렴... 한국에서 석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리고 학교의 입장에서 보아도 가장 큰 약점은 성적이었다. 입학처가 걱정할 지점 역시 분명했을 것이다. 이 지원자가 과연 강도 높은 미국 명문대의 커리큘럼을 끝까지 따라올 수 있는지, 그리고 한 번 시작한 공부를 중간에 포기하지는 않을 사람인지. 아마 그 두 가지였을 것이다.


학부를 졸업한 뒤로 어느새 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꽤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시험 전날에도 여덟 시간 숙면을 취하던 대학생은, 이제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면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고, 회사에서 밤을 새운 뒤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는 것도 별일 아니게 받아들이는 그냥 K-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야근이 없는 날이면 집에 일찍 돌아가 쉬기보다는, 논문을 읽고 공부를 하는 쪽을 선택하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입학처는 그런 변화를 알지 못한다. 그들이 보는 것은 과거의 기록뿐이다. 숫자로 정리된 성적표와 몇 장의 서류, 그리고 그 안에 적힌 짧은 문장들. 그 기록만으로 지금의 나를 설득하기에는, 솔직히 말해 모든 것이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로직을 뒤집으려면, 적어도 미국 대학이 납득할 수 있는 레코드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 아니라 결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록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게 된 것이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수업을 듣는 형태의 석사 과정이었다.


전공은 인공지능을 선택했다. 요 몇 달간 논문을 쓰며 자연스럽게 흥미를 붙인 영역이기도 했고, 단순히 유행을 좇기보다는 지금 내가 서 있는 금융이라는 위치와 앞으로 확장해 나가고 싶은 방향이 만나는 지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직 ChatGPT 같은 것이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고, 머신러닝이나 빅데이터는 여전히 낯설고 생경하지만, 분명 미래를 바꿀 트렌드로 이야기되던 시기였다. 마음 한편에는 이런 생각도 있었다. 미국 석사가 결국 되지 않더라도, 이 과정에서 분명히 배우는 건 있을 거라는 생각. 설령 계획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 자체가 완전히 헛되지는 않을 거라는 최소한의 확신, 혹은 바람.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열어두기로 했다. 이번에는 도망치듯이 아니라, 적어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가지고.


8월, 한국대학에서 나의 첫 석사를 시작했다.

물론 한국 석사를 준비하는 일도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계획을 세우자마자 가을학기 모집을 하는 대학들을 하나씩 찾아봤고, 그중에서도 내가 원하는 컴퓨터사이언스나 인공지능 전공이 있으면서 야간이나 주말 석사 과정이 있는 곳이어야 했다. 여기에 현실적으로 통학이 가능한 거리라는 조건까지 더해지니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좁아졌다.


그와 별개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코딩이라고는 print("Hello, world!") 정도가 전부인, 그냥 직장인을 AI 전공에 받아달라고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것만으로도 할 이야기는 정말 많지만, 여기서 너무 샛길로 새지는 않기로 하자. 실제로는 몇 주 동안 미국 석사 지원 생각조차 잊은 채 한국 석사 준비에 거의 올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초에 겁도 없이, 아집과 고집으로 시작해 쓴 논문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했다.


무리가 있어 보였고, 무리가 있어 보였고, 여전히 무리가 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Planning and Doing.png 도화지 위의 계획과 독서실의 밤. (이미지: 자체 제작)

MBTI상 파워 J인 나는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한다. 연휴면 밀린 웹툰 따위를 몰아보다 커다란 도화지를 하나 꺼내 몇 년치 계획과 타임라인을 그려보는 것이 취미 아닌 취미다. 계획을 세우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다. 중간중간 다이내믹한 상상도 곁들일 수 있고, 모든 것이 정리되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계획을 이루는 과정은 전혀 다이내믹하지 않다. 몇 년치 계획은 멋진 상상과 함께 몇 시간 만에 세울 수 있지만, 그 계획을 실제로 이루는 데에는 결국 몇 년에 걸친 끈질김이 필요하다.


주말 석사가 시작되었을 때, 그해 상반기보다 자존감은 조금 올라 있었지만 육체적으로는 꽤 지쳐 있었다. 개인 논문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새로운 학교생활을 위해 코딩과 과제, 읽어야 할 자료들은 계속 늘어갔다. 그 모든 것과 별개로 회사에서의 프로젝트는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예쁜 도화지 위에, 연초에 다이어리 구석에 그려 놓았던 빈틈없는 계획과 타임라인을 하루 단위로 쪼개어 들여다보니, 현실은 꽤 버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삼십 퍼센트를 지나, 이십 퍼센트로 착실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쯤이면 이미 몇 가지는 마무리가 되었고,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어야 할 시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은 줄지 않고 계속 늘어갔다. 준비는 끝을 향해 가야 하는데, 할 일만 계속 추가되는 느낌이었다.


이러다 정말 일 년이 준비만 하다 끝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섭기도 했고, 동시에 우습기도 했다.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시간만은 성실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완벽하지 않아도.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껴져도. 결국은 서류를 내야 한다는 사실. 더 나아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는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계속 줄어들었고, 머뭇거릴 수 있는 여지도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석사 준비를 떠나서, 어쨌든 내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에서는 나를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독서실에 가고, 주말에는 석사 수업을 듣고, 그 와중에 사내 대회까지 나가는 사람. 의도한 바는 아니었고,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준비하고 싶었지만, 여의도는 생각보다 아주 좁은 섬이었다.


어쨌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안 해요?” 하고 친근하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생겼고, 주말 석사를 고민 중이라며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얼굴만 알던 옆 부서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에서 학부를 졸업했다는 이유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하나 생겼다. 석사도 동문이라며, 나를 ‘후배님’이라고 불러주는 직장 상사였다. 다크서클은 조금 더 짙어진 것 같았지만, 대신 직장에서의 내 이미지는 이전보다 훨씬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첫 학기가 끝났다.
결과는, 올 A+였다.



그냥 직장인의 팁


• 노력은 쌓이는데 진도는 잘 안 나간다.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 퇴근 후 독서실까지 쓰고 있는데도 스스로 느끼는 진척은 미미하다. 이게 정상이다. 준비가 잘되고 있다는 신호는 ‘잘하고 있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영원히 지원하지 못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국은 서류를 내야 한다. 준비가 덜 된 것 같아도, 부족해 보여도, 어느 시점에서는 던져야 한다.

• 입학처는 지금의 나를 모른다. 특히 졸업한 지 시간이 어느 정도 되었다면 지금의 나는 서류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건 과거의 성적과 몇 장의 기록이다. 그래서 말보다 기록이 중요하다. 설명보다 레코드가 먼저다.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지 말 것. 미국 석사가 당장 안 되면, 다른 방식으로 레코드를 쌓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 석사든, 논문이든, 자격증이든. 중요한 건 방향을 완전히 접지 않는 것이다. 잠시 우회하는 것과 포기하는 건 다르다. 그리고 지원을 위해서 정말 많은 요건들이 필요하다 하나하나 집중을 해서 착실하게 줄여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계획 세우는 건 재미있지만, 실천은 지루하다. 몇 년짜리 타임라인은 몇 시간 만에 그릴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채우는 건 역시나 몇 년 동안의 반복이다.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날이 훨씬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합격, 올 A+ 같은 결과는 어느 날 갑자기 나온다. 하지만 그건 이미 많이 쌓인 시간의 결과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큰 자산이다.


그냥 직장인에게 미국 석사 준비는 어떤 대단한 날의 결심보다 평범한 수없이 많은 날들의 반복에 가깝다. 출근하고, 일하고, 피곤해하면서 그 사이에 조금씩 준비한다. 이건 특별한 사람의 조언이 아니라, 그냥 직장인인 내가 흔들리면서도 어쨌든 끝까지 가보려다 알게 된 이야기다. 그리고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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