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3-7월 (지원까지 약 6개월)

by James
대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학교를 좋아했는가?
“No”


이건 반항도 아니고, 쿨한 척도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내 기억 속에서 학교는 좋아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출석 체크를 위해 앉아 있던 강의실, 교수의 목소리가 웅웅 울리던 오후, 노트에 적힌 글자보다 창밖 풍경이 더 또렷했던 시간들. 나는 대부분 강의실, 내가 좋아하는 구석 그 자리에 몸만 두고 있었다.


대학교 시절 나는 강의보다 여행을 더 많이 다녔고, 수업보다 미술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성적은 늘 아슬아슬했다. 낙제는 피했지만, 성취감이라는 건 없었다. ‘잘했다’보다는 ‘한 학기를 또 보냈다’에 가까운 나날들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안도했고, 학기가 끝나면 내내 얽매이던 것도 없었건만 그래도 해방감을 느꼈다.


인턴십을 마친 뒤에는 더 분명해졌다. 나는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커리어를 택했고, 학교 수업보다 자격증, 인턴십, 개인 프로젝트에 시간을 쏟았다. 그때의 나는 아주 명확했다. 학교는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였지만, 대학 졸업장 없이 내 가능성을 줄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가 바뀌고 몇 달이 지난 지금 나는 미국 석사를 꿈꾸고 있다. 그것도 꽤 집요하게. 만약 공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주변에서는 “원래 공부 좋아하지 않았잖아”라고 말하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쉽게 그 석사를 내려놓지 못한다.


왜일까.


혹시 나는 막연한 기대에 매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미국 석사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 어딘가 더 나아질 것 같은 착각, 설명하기 쉬운 다음 단계. 이걸 하면 확실히 인생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냥 그럴듯한 계획을 세워버렸고, 이미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그 계획을 살아봤기 때문에 이제 와 멈추지 못하는 걸까. 그 고민을 했던 시간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현업의 투자 협상에서도, 일에서도, 사람을 오래 보다 보면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본다. 사람은 이미 시작한 것을 멈출 때, 그동안의 선택과 노력을 스스로 부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멈추지 못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일관성의 욕구라고 부르고, 경제학에서는 매몰비용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다르지만 느낌은 같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돌아가기는 싫다는 마음.


그 무렵부터 나는 온라인에 올라온 합격 수기들을 거의 집요하다고 해도 될 만큼 찾아보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화면을 넘기며 읽었고,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읽었고, 점심시간이면 사무실 근처 카페나 식당 앞에 줄을 서서도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읽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괜히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화면을 조금 더 가슴 가까이에 두고 시선을 자주 들어 올리면서까지. 누가 어떤 스펙으로, 어떤 루트를 거쳐 미국에 갔는지. 학부 성적은 어느 정도였는지, 추천서는 누구에게 어떻게 받았는지, 논문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소위 말하는 ‘스펙’이라는 것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듯 읽었다.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어디선가 통과했다는 이야기를 발견하면, 그 한 줄에 하루가 조금 가벼워졌다. 처음에는 그냥 희망을 찾고 싶어서였고, 나중에는 거의 조사에 가까웠다.


브라운이라는 학교 이름조차 생소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미국 대학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희망이 아니라 냉정 함이었다. 자료를 충분히 보고 나니, 내 현 상황이 보였다. 감으로 느끼던 불안이 숫자와 사례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어렴풋이 느꼈던 대로, 현시점에서 나의 석사 입학 확률은 결코 높지 않다는 사실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석사 준비와는 별개로, 국제 학술지를 목표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준비의 방향을 조금 틀었다. 그전까지는 방향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전공의 지원자들에 비해 낮은 성적, 그리고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대외활동이 분명히 보였다. 그래서 석사 준비와는 별개로, 국제 학술지를 목표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는 부족한 연구 경험과 비교과 활동을 보완해 합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연구하는 삶을 정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지, 더 간결하게 말하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있기를 원하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누군가의 평가를 받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특정한 조건에서만 거부감을 느꼈던 사람인지.


주제로 선택한 것은 인간 컴퓨터 상호작용, HCI였다. 투자를 하면서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분야였다. 점점 더 똑똑한 자본과, 점점 더 똑똑한 인력이 기술로 이동하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기술 자체보다, 기술과 인간 사이의 접점이 더 흥미로웠다. 사람들이 어떻게 도구를 쓰고, 그 도구가 어떻게 의사결정과 행동을 바꾸는지. 투자라는 세계에서 매일 보던 질문이, 학문이라는 언어로 다시 나타난 느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 앞에 앉아 있는 느낌. 여전히 쉽지는 않았고, 여전히 스스로를 의심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나를 아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 이런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왜 일을 더 늘리느냐고, 왜 이미 가고 있던 길에서 굳이 돌아가려 하느냐고. 당장 효율만 놓고 보면 분명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적어도 나에게는 분명한 터닝포인트였다.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학교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과연 학교와 시험을 진심으로 좋아했던 아이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싶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학교라는 공간과 잘 맞지 않는 편이었다. 대학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끝내 확신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방황했다. 전공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은 늘 따라다녔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확신은 없었고, 결국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학교는 자연스럽게 뒷전이 되었다. 졸업 논문만을 앞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차라리 군대에 가버리자는 결론에 이르렀던 기억도 난다. 그만큼 학교라는 선택지에 대해 나는 늘 도망치듯 멀어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선택은 더 이상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현시점에서 정말로 내가 원하는지도 모를, 어쩌면 결국 쓰이지 않을지도 모를 막연한 목표를 위해 또 다른 시험공부에 시간을 쓰는 것. 그보다는 차라리 논문을 쓰면서 영어에 대한 감각을 다시 되찾고, 설사 석사를 가지 않게 되더라도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남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적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간’은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공기가 쌀쌀하지만, 개나리의 노란빛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출퇴근 시간에 영어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어차피 금융업에 몸담고 있으니 블룸버그나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채널을 구독해 반쯤 흘려듣듯 들었다. 몇 년간 안 쓰던 영어에 입은 달싹거리지만 소리는 나지 않고, 무언가를 알아듣기는 하지만 절반쯤 놓쳐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다시 영어를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그러다 여의도에 벚꽃이 흩날리고, 목련이 피어날 즈음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개인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자연스럽게 차를 놓고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이동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졌지만 확실하게 나를 위해 확보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꾸고 싶었다.

목련.png 같은 봄에 피는 꽃도 저마다의 속도로 피어나고, 각자의 방식으로 진다 (이미지: 자체 제작)

지하철 안에서는 논문을 읽고, 메모를 했고, 퇴근 후에는 사무실 근처 독서실에 들러 리서치와 영어 공부를 이어갔다. 누가 보면 갑자기 의욕이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대단한 각오가 있어서라기보다,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면 다시는 시작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이 더 컸다. 지금 아니면, 영영 아닐 것 같은 느낌.


주말에는 비교적 나에게 익숙한 IELTS 시험을 예약했다. 다행히 점수는 한 번에 나왔다. 하지만 오래 쓰지 않았던 영어 감각은 여전히 불안했고, 토플에서 고배를 마신 기억이 남아 있어, 시험이란 결국 테크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GRE도 틈틈이 손에 잡았다. 목표가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손만큼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경영혁신 아이디어 공모전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햇빛이 완전히 여름 쪽으로 기울었다고 느껴질 즈음, 그러니까 6월쯤이었다. 내가 있던 증권사에 ‘경영혁신 아이디어 공모전’ 공지가 올라왔다. 평소 같았으면 투자와는 무관한 사내 이벤트쯤으로 여기고 그대로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마침, 몇 달째 개인적으로 써오고 있던 인간 컴퓨터 상호작용 관련 논문 속 케이스 스터디가 떠올랐다. 그 내용을 프레젠테이션으로 풀어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논문에서 몇 가지 핵심 개념을 정리해 두었고, 인터뷰와 포커스 그룹 리서치를 진행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그 과정을 조금 앞당겨 PPT로 옮겼다.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 시점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지원한 결과는 3등. 투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영 부문에서 얻은, 나에게는 꽤 의미 있는 성과였다.


‘small win.’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내가 가장 자존감이 낮아져 있던 시기에 얻은 아주 작은 성취였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고, 지원까지 약 여섯 달이 남아 있던 시점.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아, 나에게도 아직 가능성이 있구나”라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야 내가 왜 이 일을 간절히 원하는지,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윤곽을 잡기 시작했다.


목련과 벚꽃은 같은 봄에 피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피고 진다. 잎이 나오기도 전에 고개를 치켜들고 도톰한 꽃을 밀어 올리는 목련은, 벚꽃처럼 바람에 몸을 맡기며 흩날리지 않는다. 때가 되면 그대로, 무겁게,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다. 흩어지지 못하고 바닥에 눌어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치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목련이 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해 봄, 나는 여의도의 벚꽃축제에는 가지 못했지만, 퇴근 후 독서실로 향하는 길에서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선 목련을 참 많이 보았다. 화려하게 날리지 않아도, 끝까지 자기 자세를 유지하는 것. 흩어지지 않는 대신, 온전히 자기 무게로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것.


그 작은 성취는 결과라기보다 과정이 남긴 감각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감각은 이후의 선택들 앞에서 흔들릴 때마다, 다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기준이 되었다.



그냥 직장인의 팁


• 토플과 아이엘츠는 시험 성격과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영어 실력에 비해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 경우,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험이 맞지 않는 경우일 수 있으며, 지원 학교규정을 확인한 뒤 유리한 쪽으로 바꾸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된다.


• 영어를 안 쓴 지 오래됐다면 시험부터 붙잡기보다 라디오나 뉴스처럼 일상 속 영어로 감각을 먼저 되살리는 편이 효율적이다. 감각이 돌아오기 전의 어학 점수는 실력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컨디션을 보여줄 뿐이다.


합격 수기는 희망이 아니라 데이터로 읽는 편이 현실적이다.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반복되는 패턴이 곧 내가 갈 수 있는 궤도가 된다.


약점을 숨기기보다 평가의 축을 바꾸는 쪽이 효과적이다.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면 그 빈자리를 설명해 줄 또 다른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일 년이 넘는 준비 과정에는 작은 성취가 하나쯤 필요하다. 논문, 프로젝트, 자격증 공모전 같은 결과물이 있어야 다음 단계를 버틸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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