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월, 대학원 준비 중에 갑자기 아시아개발은행 (ADB) 합격
부쩍 날씨가 쌀쌀해졌다. 십일월이 되면 여의도는 늘 그렇듯 한 해의 마지막 딜과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한 막판 스퍼트에 들어간다. 연말에 찍히는 그 숫자들은 내년 연봉과 인센티브, 재계약 여부를 가늠하는, 올 한 해의 성적표이기도 하다. 나 역시 파트타임 대학원생이자, 파트타임 연구원이고, 거의 풀타임에 가깝게 미국 석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냥 직장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본업에 소홀할 수는 없었다.
한 해의 업무를 정리하고, 내년에 쓸 회사 다이어리와 달력을 꺼내 정리한다. 딱 작년 이맘때, 미국 석사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떠올렸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조금은 재미있다. 일 년 동안 사용한 다이어리 맨 뒤에서 한 장 앞.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누군가 실수로 펼칠까 싶어 가장 안쪽에 적어 두었던 대학 리스트를 다시 한번 본다. 십일월이 되니 이제는 정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원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이렇게까지 준비하고 막판에 지원을 하지 않을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는 추천서를 부탁할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성적 증명서와 각종 증명서, 아포스티유 발급과 공증까지. 이건 팁인데, 미국 대학원은 자기소개서나 시험 성적만큼이나 이런 행정 서류를 많이 요구한다. 학교마다 요구하는 서류는 대부분 비슷하니 엑셀 같은 데에 리스트를 만들어 한 번에 정리해 두는 것이 훨씬 낫다. 특히 지원 학교가 많아질수록, 나중에는 정말 헷갈린다. 일 년간 열심히 준비해 놓고 서류 미비로 문제가 생기는 일만큼은 꼭 피하고 싶었다.
애초에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일 년의 끝을 향해 가다 보니, 오히려 마음은 차분해졌다. 개운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일 년 동안의 노력이 하나둘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아무 준비 없이 ‘내가 할 수 있나 보자’는 마음으로 처음 썼던 페이퍼는 최상급 학회는 아니지만 국제 학회 발표 일정이 잡혔다. 한국에서 주말 석사를 하며 과제에서 영감을 받아 쓰기 시작한 두 번째 페이퍼 역시 출판이 확정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석사에서 만난 사람들과 업무를 병행하며 주말까지 잠을 줄여가며 진행했던 AI 프로젝트들은 서울 AI 허브에서 그리고 신용보증기금에서 수상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잘 시간은 부족했고, 솔직히 말하면 미국 석사에 대한 확신이 완전히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면 나쁘지 않은 일 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 주말 대학원의 첫 학기 성적표가 나오자마자 미국 대학원 지원을 하기로 결심하며 거의 일 년 전에 만들어 두었던 엑셀 파일을 꺼냈다.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백 번은 되뇌었던 이름들을 다시 읽는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내가 꽤 나이브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 일 년 동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석사에 가고 싶은지, 그리고 석사를 통해 무엇을 얻고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리되었다. 막연히 일을 벗어나 쉬고 싶다거나, 그냥 좋은 대학에서 석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목적과 목표가 분명해졌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가 말한 ‘죽음의 다섯 단계’가 떠올랐다. 아무 생각 없던 일월의 나는 부정(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을 차례로 지나온 것 같다. 다행히 대학원이 죽음은 아니었으니, 그 이후의 단계까지 온 셈이다. 칼뱅의 예정론(Predestination)이든, 진인사대천명이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본 한 해였다.
학교와 전공 역시 일 년 동안 바뀐 나의 관심사와 스펙에 맞춰 달라졌다. 불과 일 년 간 한국에서 첫 대학원을 시작하고, 그리고 두 편의 논문과 세 번의 수상을 경험하면서 느낀 건 하나였다. 나는 생각보다 기술 영역을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나의 투자 경험과 백그라운드를 바탕으로 이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물론 전통적인 투자 영역 역시 포기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 관심사를 반영한 전공 선택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섯 개 대학, 다섯 개 전공에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마감 순서대로,
컬럼비아대학교, 브라운대학교, 보스턴대학교, 뉴욕대학교, 펜실베이니아대학교
학교 선택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주요 서류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학부 시절의 교수님, 회사 생활과 전문성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업계의 선배나 멘토. 가능하다면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추천서를 받는 것이 좋다. 물론 그분들 역시 바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추천서 이야기는 미리 꺼내는 편이 좋다. 특히 서류 마감이 연말이나 연초에 몰려 있는 경우가 많아, 더더욱 그렇다.
나는 거의 일 년 동안 주변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석사를 준비해 왔다. 그래서 추천서를 부탁하는 순간이, 사실상 처음으로 내 계획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모든 분들이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답해 주셨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아, 정말 합격하면 지금 회사를 떠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현실처럼 느껴졌다.
일 년 동안 이 순간을 향해 꽤 열심히 살아왔고, 그전까지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했는데, 막상 가까운 사람들에게 추천서를 부탁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붕 뜬 느낌이었다. 연말이 다가와 서였는지,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동시에, 석사 준비를 한창 할 때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이번에 석사가 되지 않는다면, 이 준비와 이 부탁을 두 번 다시 반복할 자신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여의도 IFC 지하로 내려갔다. 밤 아홉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라 푸드코트는 거의 비어 있었고, 불이 가장 밝은 곳은 늘 그렇듯 맥도널드였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 별생각 없이 휴대폰으로 신문 앱을 넘기고 있었다. 그날도 그냥 흘려보듯이 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화면 한쪽에 낯익은 단어들이 묶여 있는 공고가 눈에 걸렸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컨설턴트 채용.’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그리고 아시아개발은행 로고가 함께 들어간 포스터였다. 네이버 뉴스에 올라온 채용 공고라는 점도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누가 봐도 공공기관스러운 일러스트와 문구가 들어간 공고였다. 투자 보고서를 쓰면서 국제기구등 자료를 찾아보기 때문에 월드뱅크나 ADB 등의 존재야 알고 있었지만 내게는 정말 보고서에나 있는 기관일 뿐이었기 때문에 불과 일 년 전의 나라면, "뭐 채용을 이렇게 하기도 하네" 정도로 생각하며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저건 저쪽 세계 이야기지’ 하면서 화면을 넘겼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날은 손이 바로 다음 화면으로 가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대학원을 위해 지원서를 쓰고 있는 중이었고, 추천서도 부탁한 상태였다. 지원서를 다섯 개를 쓰든, 여섯 개를 쓰든, 그 숫자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머리 한편에는 논문을 쓰며 내용을 조금 바꿔 사내 대회에서 수상했던 기억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지원의 순서가 다시 정해졌다.
아시아개발은행 (ADB), 컬럼비아, 브라운, 보스턴대학교, 뉴욕대학교,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미국 석사는 어차피 십이월 말이나 일월 초, 지금 진행 중인 국내 대학원의 첫 학기 성적표가 나온 이후에 지원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연말에는 ADB 지원에 집중하기로 했다. 국제기구답게 요구하는 서류도, 인터뷰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도 사기업과는 결이 달랐다. 준비해야 할 서류의 양도 예상보다 훨씬 많았지만 그래도 막막하지는 않았다. 이미 미국 대학원을 준비하며 정리해 두었던 자료들이 많은 부분 겹쳤고, 인터뷰 역시 미국 대학원 인터뷰를 대비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미국 석사를 위해 다시 듣기 시작한 영어 뉴스, 주말 대학원을 다니고 논문을 위해 꾸준히 쌓아온 기술 트렌드에 대한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현업을 병행하며 지난 일 년 동안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었던 자신감과 모멘텀. 그 모든 것이 그 시점에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또 누가 알겠는가. 석사 지원이 모두 불발될지도, 혹은 이미 주변에 알린 김에 국제기구로의 이직을 선택하게 될지도.
미국 석사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서류 준비였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경력을 정리하고, 인터뷰 질문을 예상하며 답을 만들었다. 그런데 하나씩 밟아 들어가다 보니, 그 과정은 단순한 연습이라고 부르기에는 꽤 깊고 촘촘했다. 어떤 면에서는 미국 대학원 입학 절차보다 더 높은 집중도와 정리를 요구하는 과정이었다.
서류를 준비하면서 지난 일 년이 자연스럽게 다시 펼쳐졌다. 왜 이 일을 해왔는지, 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동안은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질문 하나하나에 맞춰 다시 정리되었다. 미국 석사를 준비하며 써왔던 문장들이 그대로 쓰이기도 했고, 동시에 왜 그 문장들이 충분하지 않았는지도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뷰 준비는 더 그랬다. ‘왜 이 학교인가’를 설명하는 대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를 말해야 했다. 질문의 형태는 달랐지만, 맥락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능성과 책임,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 잡힌 답을 고민해야 했고, 기술을 알고 있는지보다 그 기술을 어떤 맥락에서 쓰고 싶은지를 설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준비했던 답변들은 이후 대학원 면접에서도 그대로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비슷한 질문을 다시 받기도 했다. 혼자서 하는 연습이 아니라, 실전을 거치며 생각이 정리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합격 여부와는 별개로, 나는 처음으로 지난 일 년을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서류와 인터뷰를 거치며, 그 치열했던 일 년 남짓의 시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을 수 있었다.
ADB 지원 과정은 조금 먼저 시작하는 한 번의 실전이었다. 미국 석사를 준비하며 쌓아온 것들을 확인하는 자리였고, 그 확인이 끝났을 때 나는 국제기구의 취업 결과와 상관없이, 지난 일 년은 그냥 열심히 산 한 해가 아니라 방향을 가진 시간이었고, 그게 어디든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충분한 준비였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십이월, 면접을 보고 미국 대학원 준비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고, 오히려 본격적으로 지원을 앞두고 휴가를 낼 생각도 있었던 터라 잠시 쉬어간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며칠 잠만 잤던 것 같다. 며칠 뒤 퇴원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의 합격 통지였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일 년 동안 준비해 온 미국 석사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밀려왔다. 물리치료실에서 느껴지던 전기 치료의 저릿한 감각은 거의 의식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다녔고, 작년 이맘때 비슷한 무게로 고민했던 질문을, 전혀 다른 위치에서 다시 꺼내 들고 있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만약 석사를 통해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이 국제금융기구나 국제적인 업무 경험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닐까. 굳이 커리어를 멈추고 학교로 돌아가야만 하는 선택일까. 연봉과 조건도 한 단계 좋아졌고, 노베이스에서 시작해 일 년 만에 이만큼을 만들어냈다면, 이 국제기구 경험을 발판 삼아 다시 석사를 준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오히려 그때는 안정적으로 아이비리그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되었다.
• 연말에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쉽다. 커리어를 바꾸고 싶을수록 본업을 더 단단히 챙겨야 한다. 장기 플랜이 있어도 당장 연봉과 평판은 올해 숫자가 결정한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현재 자리에서 잘하는 것이 결국 가장 좋은 이직 준비다.
• 학교별 요구 서류는 물론이고, 에세이를 요구한다면 질문까지 엑셀에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생각보다 많은 학교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한 번 잘 정리해 두면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다.
• 추천서를 부탁하는 순간, 이미 떠날 사람이 된다. 흔쾌히 써주겠다는 답을 들을 수도 있고, 상황상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회사에 계획이 알려졌을 때의 분위기, 혹은 떨어졌을 때의 상황까지 한 번은 생각해 보는 편이 좋다. 그냥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을 다한 사람으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은 좁고, 업계는 더 좁다. 관계는 남겨두고 이동해야 한다.
• 모든 계획을 모두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특히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더 그렇다. 조용히 준비하고, 결과로 말하는 편이 훨씬 편하다.
• 옵션이 생기면 태도가 달라진다. ADB 합격이 미국 대학원 합격을 보장해 준 건 아니다. 하지만 불안이 줄어들자 생각이 또렷해졌다. 쫓기는 준비가 아니라 선택하는 준비가 되었다.
• 직장인에게는 방학이 없다.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직 혹은 지원은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꽤 힘들다. 필요하다면 휴가를 내서라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확보하자. 그건 사치가 아니라, 다음 5년을 결정하는 투자다.
이건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직과 대학원 준비를 동시에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체력과 멘털 소모가 크다. 나도 굳이 몰라도 됐을 사실을, 직접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1년 준비해서 석사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 준비하며 이미 다른 사람이 된다. 작년의 막연한 그냥 직장인과, 수없이 고민하고 버텨 온 지금의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을 꽤 성실하게 보냈다면, 1년만큼 더 단단해진 지금의 당신이 선택하는 길이 맞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