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 합격, 그리고 이직

1-3월 아이비리그와 국제기구 둘 다 할 수 있을까

by James

해가 바뀌었다.


아직 마음을 완전히 정하지는 못했지만, 계획했던 대로 지원은 시작하기로 했다. 석사를 앞두고 갑자기 받은 국제기구 합격 소식은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일 년 동안 준비해 온 것을 굳이 접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어차피 될지 안 될지는 모른다. 정말로 모든 학교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지원은 해보는 게 맞았다.


협상 심리학에서 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라는 개념이 있다.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는 뜻이다. 단순한 협상 이론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개념이 커리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옵션은 많을수록 좋다.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합격했다는 사실에 적어도 마음은 전보다 가벼워졌다.


이 시점 ADB 합격 통보를 받고 내가 그려본 경우의 수는 크게 네 가지였다.

1. 미국 대학원 합격 시나리오
1.1. ADB로 이직한 뒤 몇 달 후 미국으로 간다
1.2. 입학 유예를 신청한 뒤 1년을 채우고 간다
1.3. 아예 ADB에 가지 않고 몇 달 쉬다가 미국으로 간다

2. 미국대학원 불합격 시나리오
2.1. ADB로 이직한 뒤 1년을 채우고 다음 해 다시 지원하거나, 혹은 그때 가서 방향을 다시 정한다

우선 미국 대학원처럼 아직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옵션을 제외하고 내가 가진 것만 놓고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현재 직장에서 대학원이든 국제기구든 이든을 위해 퇴사할 거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원래는 조용히 대학원만 준비할 생각이었지만 추천서를 부탁하며 가까운 몇몇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자, 마음 한편은 이미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여전히 배울 게 많고 좋은 팀이었지만 국제기구나 해외 경험에 대한 매력이 점점 또렷해졌다. 어쨌든 다음 스텝은 정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학교든, 이직이든, 나는 한 번은 떠날 사람이라는 사실.


그때부터 고민은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선택지를 최대한 많이 유지할 수 있을까. 미국 대학원에서 여러 합격 통지서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겠지만,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핵심은 정보 관리였다. 굳이 불필요한 곳까지 모든 상황을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국제기구로 이직하는 사실은 현재 회사에는 알렸지만, 지원하는 대부분의 미국 대학에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합격이 확정된 이후에야 필요한 이야기를 하면 된다. 반대로 미국 대학원 지원 사실은 현재 직장과 새로운 직장 모두에게 알리지 않았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굳이 파장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우에만 선택적으로 활용했다. 어차피 주위에 떠들고 다니면서 이직하고 지원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걸 몰아서, 그리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동시에 하고 있는 상황이 된 것뿐이다.


동시에 최악의 시나리오도 대비했다. 네 가지 옵션 중 가장 불리한 경우는 모든 미국 대학원에서 불합격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준비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내 통제 밖에 있다. 만약 올해 모두 떨어지고 내년에 다시 지원해야 한다면 (정말 정말 정말 또 이런 일 년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의 나는 어떤 상태여야 할까. 결론은 단순했다. 어차피 이직을 한다면, 최대한 빨리 새로운 환경으로 가자. 아니길 바라지만 내년 초에 미국대학원에 다시 도전한다면 육 개월보다 조금 더 국제기구 경험이 있는 지원자와 일 년 남짓의 국제기구 경험이 있는 지원자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해외경험과 국재기구에서의 장점이 보인다면 망설일 것 없이 커리어를 확장시키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직장인은 방학이 없으니까, 이직할 때는 최소 한 달은 쉬고 가야지.”

농담처럼 자주 하던 말이었다. 석사에 합격하면 세 달쯤은 쉬다가 가겠다고,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도 몇 번이나 혼자 다짐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계획과 조금씩 어긋난다. 그 꿈은 조금 멀어졌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직장인은 그냥, 직장에 있어야 한다.


컬럼비아와 브라운 지원을 마친 날, 나는 ADB와 연봉 협상을 하고 있었다. 입학처와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같은 날 ADB 인사팀과 통화를 했다. 아시아개발은행 팀장 면담이 있는 날에는 대학원 면접을 봤다. 하루는 미국 시간에 살고, 하루는 필리핀 시간에 살고, 또 하루는 한국 시간에 살았다. 시차는 달랐지만, 고민의 무게는 비슷했다. 보스턴대학교 지원을 마친 날에는 퇴사 일정과 입사 일정을 조율했다. 남은 휴가를 몰아 쓰고 금요일에 퇴사, 그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 숨을 고를 틈도 없이 타임라인이 당겨졌다. 원래라면 몇 달에 걸쳐 정리했어야 할 일들이 며칠 단위로 압축되었다.


이직과 유학 준비, 그리고 본업까지. 인생이 엑셀 시트처럼 한 화면에 펼쳐진 느낌이었다. 어느 셀 하나라도 비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줄을 맞추듯 날짜를 채워 넣고 있었다.


브라운대학교 (왼쪽) 컬럼비아대학교 (오른쪽) (이미지: 자체제작)

그러던 중 컬럼비아와 브라운에서 연락이 왔다.

합격.


가장 바라던 두 과정이었다. 그래서 남은 학교들은 더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물리적으로도 시간이 빠듯했다. 국제기구 이직과 동시에 대학원 지원을 병행하는 일정은 생각보다 훨씬 촘촘했다. 얼마 뒤 보스턴대학교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일 년 전 입학 수기에서 읽었던 누군가의 ‘행복한 고민’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내가 달려온 방향은 그 사람과 전혀 달랐지만, 어쨌든 나 역시 비슷한 종류의 고민 앞에 서 있었다.


컬럼비아와 브라운은 이름만 놓고 보면 비교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 둘 다 충분히 좋고, 충분히 상징적이다. 하지만 막상 선택의 문제로 내려오면, 그건 단순히 브랜드의 우열이 아니다.

결국은 ‘어떤 시간을 것인가’의 문제다.


여기서 산다는 건 단순히 몇 년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라는 live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도시에서 숨 쉬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떤 속도로 하루를 보낼 것인가. 그 몇 년은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다시 조정하는 시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아주 현실적으로는 buy의 문제이기도 했다. 우리는 학위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그 시간에 묶여 있는 기회를 함께 산다. 네트워크, 브랜드, 접근 가능한 산업,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열릴 수 있는 다음 단계의 문들. 대학원은 학위 한 장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특정 환경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구매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티켓은 생각보다 비싸다. 등록금뿐만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다른 선택지를 포기하는 비용까지 포함해서. 그래서 이 선택은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컬럼비아가 더 좋아 보였다

합격 메일을 나란히 두고 보면, 객관적으로 더 ‘강해 보이는’ 이름은 컬럼비아였다.

뉴욕이라는 상징과 가능성.

맨해튼이 주는 기회.

월스트리트와 몇 정거장 거리라는 브랜드.

이 세 문장만으로도 많은 설명이 끝난다.


금융을 해온 사람에게 뉴욕은 상징이다. 그리고 컬럼비아는 그 중심인 동시에 이런 환경을 제공하는 학교자체가 흔치 않다. 솔직히 말하면, 두말할 것 없이 더 화려해 보이는 선택은 컬럼비아였다.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이름. 설명하기 쉬운 선택. 커리어 상으로도 직관적인 연결고리가 분명하다. 말 그대로 월스트리트와 같은 도시, 같은 공기를 공유한다. 속도감이 있고 자극이 많으며, 네트워크의 밀도가 높다. 금융과 산업, 스타트업과 미디어가 뒤엉켜 있다. 학교 안에서 배우는 것만큼, 학교 밖에서 마주치는 기회가 클 것 같은 환경이다.


현실적인 부분도 있다. 미국 안에서는 컬럼비아와 브라운이 모두 상위권에 묶여 꽤 괜찮은 학교로 이야기될 수 있지만, 한국에서의 인지도만 놓고 보면 컬럼비아 쪽이 더 직관적이다. 당장 브런치에 #태그를 달려고 검색해 보니 컬럼비아는 나오는데 브라운은 없다. 블랙, 초록, 베이지는 다 있는데 브라운은 왜 없나요... (하지만 하버드도 없으니 넘어가자)


브라운은 조금 다르다.

조용하고, 덜 자극적이다. 프로비던스는 뉴욕처럼 몰아붙이지도, 빠르게 재촉하지도 않는다. 캠퍼스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고, 울타리가 없어도 도시와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있다. 완전히 고립된 공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도시의 소음에 휩쓸리지도 않는 경계선 같은 분위기. 그래서인지 생각이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공과대학 소속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붙잡고 있던 기술 영역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STEM 프로그램이라는 구조적 장점도 분명했다. 이름이 아니라 내용, 분위기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였다.


컬럼비아는 “도시가 기회를 준다”는 느낌이었다면,

브라운은 “시간이 깊이를 준다”는 느낌이었다.


일반론적으로 더 좋아 보이는 선택과, 지금의 나에게 더 일관된 선택 사이에서

컬럼비아가 더 좋아 보였느냐고 묻는다면, 많은 부분 그리고 많은 순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배부른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도 어딘가 재수 없어 보였다. 그래서 혼자 오래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두 학교를 내 이력서에 직접 넣어봤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많이 바뀐 이력서였다. 그전에는 없던 공학 관련 논문이 생겼고, 직장은 국내 증권사에서 국제기구로 바뀌었다. 한 장 짜리 실무용 이력서에는 다 담기지 않겠지만, 수상 내역과 자격증, 시험 성적도 추가되었다. 불과 1년 만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력서 한 장에 미국, 영국, 한국, 필리핀, 캄보디아가 함께 들어 있었다. 업계도 사모펀드, 공학, HCI, AI, 투자, 컨설팅, 리스크까지 뒤섞여 있었다. 여기에 학력의 가장 윗줄을 두 개 학교로 넣어보았다.

컬럼비아는 또 하나의 강한 색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좋게 말하면 비비드 했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정신이 없었다. 이미 많은 방향을 품고 있는 이력서에 또 하나의 선명한 색이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반면 브라운을 넣어보니, 지난 일 년의 흐름이 하나로 묶이는 것처럼 보였다. 흩어져 있던 경험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는 느낌. 그동안 쌓아온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축 위에 놓이는 느낌이었다. 전통적인 금융업에서 왜 공학에 관심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런 관심이 나를 미국까지 이끌었다는 스토리가 보였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기술과 투자 사이를 파고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 느끼는 흐름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앞으로 몇 년간 기술 중심 기업에 대한 투자는 분명 업계의 큰 화두가 될 것이고, 그 접점에 서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공과대학 소속의 STEM 프로그램, 1년짜리 집중 코스, 이미 쌓아온 논문과 프로젝트와의 연결성. 대학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지금의 나에게 더 적합한 도구가 어디냐의 문제였다. 대학원은 목표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수단이었으니까.


나는 이미 커리어에서 몇 번 방향을 크게 틀어본 사람이다. 런던에서 서울로, 컨설팅에서 투자로, 그리고 국제기구로. 그래서 이번에는 확신을 가지고, 한 번쯤은 방향을 유지해보고 싶었다. 브라운은 지난 1년 동안 내가 쌓아온 생각과 모멘텀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이 1년 동안 생긴 변화와, 앞으로의 1년 동안 만들어낼 발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브라운을 선택했다.



그냥 직장인의 팁

• 브랜드는 중요하다. 하지만 브랜드는 도구다. 대학원은 목표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수단이다. “이 학교를 간다”가 아니라 “이 시간을 통해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자.

업계는 생각보다 좁다.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나가는지도 정말 중요하다. 석사를 가서 그 나라에 눌러앉을 수도 있고, 업계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누구도 모르고 지금까지 쌓아온 인맥과 신뢰는 자산이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해 보라. 말로 고민하지 말고 실제로 두 선택지를 이력서에 넣어 보자. 실제로 꽤 오랫동안 어쩌면 앞으로 평생 내 최종 학력자리에 있을 이름이다.

• 옵션은 많을수록 좋지만, 방향은 하나여야 한다. 선택지는 열어두되, 스토리는 흩어지지 않게 관리하자. 기회가 많아도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흐려지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써보라. 모두 떨어졌을 때, 1년 뒤의 나는 어디에 서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전략을 만든다. 결과는 통제할 수 없지만, 다음 상태는 준비할 수 있다.


이외수의 「길에 관한 명상」을 굳이 레퍼런스 하지 않더라도,
결국 길은 떠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늘 더 넓은 길, 더 반짝이는 길을 찾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길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되고 있었다는 걸.

하나의 선택은 하나의 길이 된다. 그리고 하나의 사람은 결국 하나의 길을 살아낸다. 나는 컬럼비아와 브라운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사실은 학교가 아니라 내가 어떤 길을 계속 걸어갈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컬럼비아를 저울질하게 만들었던 건 학교 자체보다도 뉴욕이라는 도시가 주는 기회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몇 년 뒤 나는 직장을 통해 뉴욕으로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때 내가 고민하던 ‘뉴욕이라는 기회’는 꼭 그 학교를 통해서만 가능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길은 하나가 아니다. 모로 가도 뉴욕만 가면 된다지 않나. 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고, 훨씬 길다. 어쩌면 중요한 건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그 길을 걷느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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