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직장인, 브라운대에 가다

Part 1을 마치며.

by James

“그래서 공주는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후의 이야기


일 년은 달력으로 보면 짧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간단한 소회 정도로 정리하려 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또 다른 '그냥 직장인'을 위한 몇 가지 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써 내려가다 보니 그 일 년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했고 단순히 ‘준비 기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선택과 질문, 그리고 작은 결심들이 오갔던 시간이었다는 걸.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국제기구로 이직했다.
그리고 브라운대학교를 선택했다.


입학을 미루는 선택지도 있었다. 국제기구에서 몇 년 더 내 포지션을 공고히 만들고 간다는 선택도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커리어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더 안정적인 방향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 년 동안 내가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멘텀을 끊지 않고 이어갈 자신도 있었다. 그래서 계획을 완전히 바꾸기보다는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석사에 합격하면 회사를 정리하고 잠시 여행을 하다 미국으로 간다는 계획은, 여행 대신 내가 맡은 국제기구의 프로젝트를 책임지며 시간을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증권가에 있으면서 MBA나 다른 유학길에 오르는 선배와 동료들을 많이 봤다. 대부분 합격 통지를 받고 여름즈음 회사를 정리한 뒤 8월 입학 전까지 잠시 쉬거나 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때는 그냥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냥 좋아서 저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준비를 해보니 그 몇 달의 여유가 왜 꼭 필요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일 년 동안 준비와 시험 준비를 하고, 행정 서류를 챙기고, 지원서를 쓰고, 합격 이후에도 학교와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간다. 그냥 직장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그 위에 또 하나의 삶을 동시에 붙들고 사는 일이다. 그렇게 일 년, 길게는 그 이상을 긴장의 연속으로 살다가, 그 오랜 계획이 달력 위에 구체적인 날짜로 찍히는 순간. 그때는 정말로 힘이 빠질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나는 국제기구로 이직할 때처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또다시 일을 붙들고 있었다. 쉬어도 되는 타이밍이었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끝에 끝까지 직장인이었던 셈이다.


누군가는 대학원 합격 후 봉사를 하러 간다는데, 어쨌든 나도 봉사를 했다. 누군가는 동남아나 유럽의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낸다는데, 나 역시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다. 다만 리조트가 아니라, 현지 정부와 인프라 사업을 조율하는 자리에서였다. 프로비던스의 맛집 리스트를 정리하는 대신, 프놈펜과 바탐방, 씨엠립의 인프라 현황을 정리했다. 미국 관광 일정을 짜는 대신, 상하수도 처리장의 개발 일정과 상환 구조를 표로 만들었다. 수업 계획표를 고민하는 대신, 몇 년 전 투하된 자본의 회수 전략과 현지 O&M (Operations & Maintenance) 비용을 자생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입학 전 선배와 재학생을 만나 커피를 마시는 대신, 업계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일 년을 정리해 입학 수기로 남기겠다고 생각했던 기록은, 국제기구 내부 보고서와 인사이트 리포트로 바뀌었다.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석사 소식을 전하는 일은 솔직히 쉽지 않았다. 한 명을 채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일했다. 대학원 준비를 병행하면서도 업무에서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 팀이 설정해 둔 마일스톤을 예상보다 앞당겨 달성했고, 맡은 프로젝트는 가능한 한 정리된 상태로 넘기고 싶었다. 퇴사 예정일보다 한참 전에 팀장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곳에 지원할 때부터 미국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 최근 합격 통보를 받았고 몇 달 뒤에는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떠나기 전까지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는 최대한 책임지고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전했다.


예상과 달리 돌아온 반응은 따뜻했다. 국제기구의 전문인력 트랙은 석사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당시 팀장 역시 보스턴에서 석사를 마친 뒤 이곳에 합류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러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고, 학교와 어떤 옵션을 논의해 볼 수 있는지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순간, 죄송함만 남아 있던 마음에 약간의 안도감이 섞였다.


미국에 가서도 일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솔직히 말하면 끝까지 붙들고 싶었다. 커리어도 커리어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월급을 달러로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줄 세워 보니 답은 분명했다. 이번 미국 석사는 내가 앞서 한국에서 주말에 병행하던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동시에 국제기구의 일은 풀타임으로, 온전히 시간과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 시차를 두고 원격으로 잠깐씩 이어갈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리를 택했다.

출국은 계속 미뤘다. 미국에 도착하니 개강까지 사흘 남짓. 짐은 출국 이틀 전에야 겨우 싸기 시작했고, 전날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다이소에서 정신없이 생활용품을 쓸어 담고, 노트북과 신용카드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캐리어를 채웠다. 미국으로 떠나는 전날 밤까지 마지막 보고서와 인수인계서를 마무리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아침, 퇴사 확정 통지를 받았다. 플라스틱 정리함과 몇 벌의 옷, 상비약과 라면으로 가득 찬 슈트케이스처럼, 그 몇 달의 시간도 빽빽하게 채워 넣은 채 대학원으로 떠났다.


나는 브라운이 있는 프로비던스로 향했다.

일 년을 치열하게 잘 마무리했다는 자부심은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후회가 스쳤다. 합격 통보를 받고 일하던 그 시기에, 국제기구 업무에 집중하기보다 석사 준비를 조금 더 꼼꼼히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 이야기는 Part 2에서 더 다루겠지만, 인턴 준비나 이력서 업데이트, 커피챗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했다면 미국에서의 구직 활동이 덜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어쨌든 그 시간마저도 몇 년이 흘렀다. 사람은 늘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한다. 내가 이것 대신 저것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 혹은 단순한 궁금증. 당연하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두 개 이상의 삶을 동시에 살 수 없다.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컬럼비아와 브라운을 동시에 다닐 수는 없고, 국제기구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다른 선택을 실험해 볼 수도 없다. 무언가는 반드시 놓아야 한다. 그만큼 각각의 선택에는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내가 고른 옵션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그 고민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고, 아쉬움도 분명히 있었다.


슈렉과 피오나의 결혼식이 엔딩이었다면, 우리는 슈렉 베이비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출처: Shrek the Third)


Part 1의 프롤로그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막막한 마음에 합격 수기를 읽으면서, 동화처럼 “그래서 공주는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후에 내가 투자하기로 한 시간과 노력은 어떤 방식으로 보상받게 되는지, 공주와 왕자의 결혼 이후의 삶이 더 궁금했다.

그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은 막 공주와 왕자가 입을 맞추는 장면이다. 아직 자리에서 일어날 타이밍은 아니지만, 영화관이라면 누군가는 조용히 겉옷을 챙기고, 누군가는 남은 팝콘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순간. 스크린 속 세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바스락 거림이 어딘가에서 작게 들리는 바로 그 장면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The End”라는 자막이 올라오지 않고, 조명도 켜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장면은 엔딩이 아니라, 내가 감당하기로 한 다음 챕터의 첫 장면이라는 걸.

내가 국제기구를 선택하면서 놓친 것들에 대하여:
입학 직후부터 캠퍼스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 일찍부터 인턴십을 준비하고 커피챗을 촘촘히 이어가는 일. 그런 것들을 충분히 하지 못한 아쉬움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잠깐 언급한 맛집은, 이후에 안 것이지만, 브라운이 있는 프로비던스와 인근 보스턴이 속한 뉴잉글랜드 지역은 음식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다. 영국 음식이 미식의 대명사는 아닌 것처럼, 이곳도 같은 잉글랜드라는 이름을 써서인지는 몰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놓친 것 역시, 생각보다 그렇게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길지 않았던 걸 보상이라도 하듯, 지금은 브라운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싱크탱크 프로그램을 이끌며 한 학기에 한두 번씩 프로비던스를 오간다. 학생으로 남들보다 짧게 머물렀던 공간을, 이제는 다른 역할로 다시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묘하다.

그리고 입학 직후 쓰려던 입학 수기는 결국 쓰지 못했다. 대신 몇 년이 지난 지금, 다른 위치에서 그 시간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또, 석사에 합격하자마자 모멘텀을 잃는 흔한 실수,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떻게 다시 방향을 세울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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