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취업에 무슨 기술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방법, 수단, 기법.
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내가 원하는 직군에 취업하고, 협상하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분명 기술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혹은 영국에서 통하던 사고방식과는 다른 전환이 필요했고, 알아야 하는 순서와 방식이 있다는 걸 나는 미국에 와서야 깨달았다.
미국에서 학부를 나왔거나, 이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는 선배가 있었다면 미리 귀띔이라도 들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석사 합격 직후 조금만 더 찾아봤어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미국 취업보다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의 프로젝트에 더 집중하고 있었고, 인턴십 일정표보다는 정부 상환 스케줄과 기술지원팀 미팅 일정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 차이가 나중에는 뼈저리게 다가왔다.
나는 브라운대학교 1년 과정의 대학원에 합격해 미국에 왔다. 준비를 하면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2년 과정인 MBA와는 구조적 장단점이 명확하다. 1년은 짧다.
짧다는 건 소득이 없는 기간도 짧다는 의미였고,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졸업 후 한국이든 미국이든 빠르게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단점 역시 명확했다. 대부분의 MBA 여름 인턴십은 1학년 여름에 진행된다. 나의 경우, 그 시점이면 이미 졸업을 앞두고 있을 것이라는 것. 즉 미국에서 인턴십 없이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막연하게 이렇게 생각했다.
일년가 이렇게 많은 것을 해냈고, 아이비리그까지 왔는데, 이 넓은 미국에 내 자리 하나쯤은 있지 않겠어?
영국과 한국에서 꽤 경쟁적인 환경을 거쳐 취업을 했고, 미국 석사를 준비하는 와중에 국제기구로 이직까지 해낸 사람이었다. 그 이전에는 유학생 신분으로 런던과 서울에서 인턴십을 했고, 뉴욕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삼성전자, 대한민국 국회, 국제 국제물포럼 등 이름만 들어도 설명이 필요 없는 조직들과도 일을 해봤다. 풀타임으로 일하던 시기에는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이탈리아, 캄보디아, 베트남 등 여러 국가의 프로젝트를 다뤘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는 이런 생각도 있었다. 전 세계에 여덟 개뿐이라는 아이비리그 중 한 곳에 들어왔는데, 수만 개 이름 모를 회사들 중 하나쯤, 수백만 개 의자 중 하나쯤은 내 자리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 뽕’이 가장 차 있던 시기였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때였다. 하지만 내가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돈을 내면서 사회에 속하는 것과, 돈을 벌면서 사회에 속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
브라운 대학은 학부가 오픈 커리큘럼(Open Curriculum)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석사 과정 역시 전공 필수 과목 외에 선택과목의 폭이 굉장히 넓고 학기 초에는 가능한 많은 강의를 직접 들어보고 결정할 수 있는 ‘Shopping Period’가 있다. 실제 수업을 체험한 뒤 수강 여부를 정하는 시스템이다.
투자 관련 강의를 처음 들으러 가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캠퍼스가 익숙하지 않아 늦을까 봐 너무 일찍 도착했기 때문일까 강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장 먼저 도착해, 적당히 눈에 띄지 않을 중간쯤 창가 자리에 앉았다. 갓 깎은 잔디 냄새가 스며든 공기가 들어오고, 새 학기 특유의 설렘과 어색한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오래된 건물에서 나는 나무와 먼지 냄새,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공간의 무게 같은 것이 느껴졌다.
첫 수업이어서 그런지 내용 자체는 크게 새롭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내가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실감 때문이었다. 학부 시절엔 관심도 두지 않았던 투자와 금융 과목을, 졸업학년이 되어서야 커리어를 바꾸겠다며 독학으로 따라잡으려 했던 시간들. 남들보다 늦었다는 조급함에 인터넷 강의를 듣고, 새벽까지 혼자 공부하던 날들. 그렇게 증권사에 적응하고, 몇 년 만에 다시 방향을 틀어 미국 석사를 준비하며 잠을 줄여가던 작년 한 해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어쨌든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공기는 쌀쌀해졌고, 캠퍼스는 한층 더 또렷해 보였다. 동화 속 캠퍼스타운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듣고,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는 교수들에게 배우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운 좋게도 전설적인 교수로 불리는 Barrett Hazeltine 교수 밑에서 석사 조교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난 1년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브라운대를 한창 준비했었을 작년 같았으면 그냥 잘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브라운에 오기 전,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이 내 시야를 조금 바꿔놓았다. 해외에서 일하는 것도 막연한 꿈이 아니라,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늦가을, 가벼운 마음으로 이력서를 다시 점검하고 LinkedIn 프로필을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조금 더 찾아보다가 알게 됐다. 여름 인턴십은 그전 여름, 혹은 초가을에 대부분 마감된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입학하자마자 지원했어야 하는 일정이었다. 잠깐만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한 프로세스이다. 수십에서 수백 명을 뽑는 대형 인턴십인데, 인터뷰와 채용 절차를 마무리하려면 몇 달 전부터 프로세스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이듬해 1월에서 3월 사이에 오퍼가 나오고, 여름에 실제 인턴십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당연한걸 한 번도 진지하게 계산해보지 않았다. 나는 이미 늦어 있었다.
그래도 큰 타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MBA도 아니고, 이제 막 시작한 단계였으니까.
LinkedIn을 훑어보며 이름을 아는 기업 몇 군데에 지원했다.
반응이 없다. 당연히 별다른 충격도 없다.
기업 투자를 해왔고, 미국 뉴스와 신문을 꾸준히 읽어왔으니 미국 시장이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채용 시장에 들어와 보니 처음 보는 회사들 천지였다. 신기했고, 동시에 약간은 막막했다.
몇 군데 더 지원했다.
엑셀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학원 지원 때 만들었던 파일이 떠올랐다. 피식 웃으며 새 파일을 열었다. 이번에도 해낼 거라고, 별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붙들고.
며칠 뒤, 처음 지원했던 회사에서 첫 서류 탈락 메일이 왔다.
그다음부터는 탈락 메일이 꾸준히 쌓이기 시작했다.
가뭄에 콩 나듯 컴퓨터 기반 인성검사나 비디오 인터뷰 제출 요청이 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 정도면 시작은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앞으로 일 년 동안, 수천 통의 탈락 메일을 더 받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