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몇 가지 버전으로 나눠 지원하기 시작한 뒤, 인터뷰로 이어지는 비율이 눈에 띄게 늘었다. 처음에는 100건 정도 지원하면 한두 건 정도 인터뷰가 왔다. 그런데 이력서를 나눠 쓰기 시작한 이후에는 수십 건 지원하면 한두 건 정도 인터뷰가 오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거의 계속 지원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패턴도 보이기 시작했다. 자주 연락이 오는 회사들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그 회사들에 조금 더 집중해서 지원했다.
인터뷰는 대부분 리크루터가 이메일로 연락을 주며 시작된다. 일정 조율을 하는데, 나는 매주 주말마다 다음 주 인터뷰 가능 시간을 미리 정리해 두고 템플릿으로 만들어 두었다. 이메일이 오면 그대로 복사해서 보내는 방식이었다. 인터뷰가 많을 때는 한 주에 네다섯 회사와 인터뷰를 보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나면 워드 파일에 질문을 전부 정리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회사별로 정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질문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는 달라도 궁금해하는 영역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몇 개 회사에서 인터뷰를 반복하다 보니 질문에도 일종의 ‘풀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예를 들어 Goldman Sachs의 첫 질문은 항상 “Please walk me through your CV”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질문은 반복된다. 그래서 모든 질문을 회사별이 아니라 직군과 주제별로 묶어 정리했다.
처음에는 이게 맞는 방법인지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정리하다 보니 질문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지원하는 분야와 산업은 한정돼 있고, 이력서를 몇 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결국 나라는 사람은 한 명이다. 인터뷰어는 매번 다르지만, 그들도 결국 제한된 시간 안에서 제한된 정보로 지원자를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질문도 생각보다 비슷하다.
나는 이렇게 모아둔 질문과 답변을 거의 외우다시피 준비했다. 물론 문장을 그대로 읽거나 통째로 외우면 금방 티가 난다. 그래서 문장을 외우기보다는, 카테고리별로 사용할 수 있는 사례와 경험을 통째로 정리해 두는 방식이었다. 요즘 내가 면접관으로 Zoom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화면을 보며 읽는 사람은 금방 티가 난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다르고 생각을 하는 타이밍이 좀 다른 느낌이다. 가끔은 혹시 AI로 답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그런 느낌만으로 탈락을 시키지는 않고 다만 기억은 해 두는 편이다. 그리고 다른 라운드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70% 정도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거나 비슷한 포인트를 리뷰에서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면접을 보는 사람들도 같은 환경에서 같은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식이나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이 ‘족보’ 파일은 취업을 할 즈음 수십 페이지 분량이 되었다. 질문을 정리해 둔 것이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예시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나는 답변할 때 실제 업무에서 겪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방식, 즉 STAR 기법을 사용했다. 질문의 표현은 달라도 궁금해하는 영역은 겹치는 경우가 많았고, 매번 새로운 사례를 떠올리기보다 몇 개의 경험을 중심으로 여러 질문에 대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캄보디아 13개 도시의 상수도 요금 청구 및 수납 효율 개선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한 가지 경험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여러 주제의 질문에 대비할 수 있다.
• 이해관계자가 다른 프로젝트를 조율한 경험
(정책 담당자, 재무 담당자, 기술 전문가 등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했던 사례)
• 내가 가진 역량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
(기술, 재무,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배경을 활용해 문제를 풀어낸 사례)
• 프로젝트 및 현업 경험
(실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결과를 만들어낸 경험)
• 새로운 분야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경험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새로운 산업이나 기술을 빠르게 학습했던 사례)
• 큰 그림을 보고 의사결정을 한 경험 (Seeing the Big Picture)
(개별 이슈가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 구조 및 국가단위의 영향을 고려해 판단했던 경험)
• 소규모 팀에서 일한 경험
(제한된 인력과 자원 속에서 협업하며 결과를 만들어낸 사례)
이렇게 정리해 두니 질문의 표현이 조금씩 달라도 결국 비슷한 카테고리 안에서 대응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많이 볼수록 질문의 종류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결국 바뀌는 건 질문의 문장이지, 궁금해하는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건 내가 미국, 한국, 영국에서 지원자로서 부딪히며 배운 것들, 그리고 지금 채용을 맡으며 더 분명해진 생각들이다. 벤처 및 투자전략실을 이끌고, 싱크탱크 프로그램 면접과 취업 특강을 하며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1. 답은 길수록 좋은 게 아니다
인터뷰에는 정해진 시간이 있다. 인터뷰를 많이 해보면 느끼게 되는데, 좋은 답변은 보통 1분 안에 끝난다. 이미 처음 30초에 답이 되었는데 3분씩 설명을 이어가면 인터뷰어는 말을 끊어야 하거나, 아니면 그냥 시간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결국 지원자 스스로의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다.
즉, 두괄식으로 말하라. 결론을 먼저 말하고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 뒤 추가 질문이 있는지 묻는 방식이 좋다. 한국에서는 배경 설명을 길게 하는 것이 성실하게 보일 때가 많지만, 미국 인터뷰에서는 질문에 바로 답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2. “왜 우리 회사인가”는 반드시 준비한다
많은 사람들이 “great reputation”, “industry leader”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은 어느 회사에도 할 수 있는 말이다. LinkedIn 원클릭 지원이든, 리크루터의 추천이든, 심지어 회사에서 먼저 인터뷰를 제안한 경우라 해도 인터뷰는 결국 같이 일할 동료를 뽑는 자리다. 최소한 회사에 대해 한 번은 찾아봤다는 흔적은 보여주는 것이 좋다.
만약 준비하지 못했다면 인터뷰 마지막에는 거의 항상
“Do you have any questions?”라는 질문이 나오는데, 이때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지원자가 굉장히 많다. 하다못해 회사나 팀에 대해 한두 가지 질문은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3. 인터뷰는 시험이 아니라 대화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시험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인터뷰를 형식을 갖춘 짧은 비즈니스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적이 아니라, 앞으로 동료가 될 수도 있는 관계다. 이 시간은 회사가 지원자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원자 역시 회사를 평가하는 자리다. 인터뷰는 발표가 아니라 대화다. 질문에 답하고, 필요하면 되묻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인터뷰 단계에 따라 힘의 균형이 조금씩 바뀐다는 것이다. 인터뷰 초반에는 힘이 회사 쪽에 있다. 하나의 포지션에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다시 채용 공고를 올리면 된다. 하지만 인터뷰가 뒤 단계로 넘어갈수록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회사도 이미 여러 시간을 들여 지원자를 만나고 평가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 포지션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그 미묘한 변화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다.
“이 회사는 나를 원해서 몇 달 동안 여러 사람의 시간을 조정해 가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4. 상대방은 당신을 모른다
대부분의 인터뷰어는 이력서를 보고 인터뷰에 들어오겠지만, 우리는 모른다. 그 사람이 정말 이력서를 꼼꼼히 읽었는지, 아니면 회의에 치이다가 바로 들어왔는지.
실제로 나는 한 투자은행 Zoom 인터뷰를 보던 중 인터뷰어가 갑자기 접속을 못 해 전화 인터뷰로 바뀐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집 차고 문이 고장 나서 그걸 수리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력서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 내 경력을 다시 설명해 달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던 것 같다. 대화는 잘 이루어졌지만 그때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내 인터뷰는 그 사람의 차고 수리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몇 번씩 준비한 답변을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듣게 될 수도 있다. 혹은 갑자기 잡힌 클라이언트 미팅 때문에 인터뷰가 미뤄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미 내 이력서를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지 말자. 같은 맥락에서 대면 인터뷰라면 이력서를 한두 장 더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5. 인터뷰는 결국 ‘같이 일할 사람’을 찾는 과정이다
많은 지원자들이 경력, 학벌, 기술을 이야기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인터뷰를 많이 보다 보니 결국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하나였다.
“이 사람이랑 같이 일하면 괜찮을까?”
너무 완벽한 답을 하려고 하기보다,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3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히려 더 좋은 인상을 남길 때도 많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한국에서는 겸손한 표현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미국 인터뷰에서는 이런 표현이 자신감 부족으로 들릴 때가 많다.
“제가 부족하지만…” 보다는
“이 경험을 통해 이런 역량을 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침 이번에 협상 관련 글을 쓰면서 화상 미팅과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해당 글 하단에는 참고할 수 있도록 Goldman Sachs의 Zoom 인터뷰 가이드라인도 함께 넣어 두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요즘은 AI를 활용해 인터뷰 연습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질문에 답해 보고 피드백을 받는 방식으로 스스로 인터뷰를 점검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영국계 투자은행 Barclays에서 공개한 인터뷰 준비 자료들이 있어 참고용으로 함께 첨부해 둔다.
※ 이 글은 채용 정보 플랫폼 IN THIS WORK의 “취업 준비를 위한 추천 아티클”로도 소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