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디테일 (3)

나는 누구와 협상을 하고 있는가

by James

협상의 대상 설정은 핵심 변수다.

이는 전술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협상 구조와 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MIT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초기 미팅에서 주요 교수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 협상 전략을 전면 수정했으며 그 결과 클로징 일정은 약 한 달 지연되었고 접근 방법과 BATNA의 강화 또한 새로 설계해야 했다. 개발도상국 프로젝트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관찰되었다. 대표의 은퇴 계획과 의사결정 구조를 파악한 이후에야 협상 일정과 접근 방식이 재조정되었다.


즉, 협상의 당사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실행 단계의 문제가 아니라, 선행적으로 규정되어야 할 구조적 변수다. 다만, 특정 기준을 일반화하는 것은 어렵다. 동일한 투자 구조와 협상 환경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직급이 높은 인물을 협상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는 모든 경우에 유효하지 않다. 특히 마지막으로 다룬 바이오테크 및 (이다음으로 다룰) 딥테크 사례에서는 기술 검증 및 시장성 검증이 선행되지 않으면 어떠한 의사결정도 진행될 수 없었다.


이러한 경우, 형식상 직급은 낮더라도 기술 담당 애널리스트의 판단이 실질적인 게이트 역할을 수행한다. 해당 인력이 납득하지 못하면, 상위 의사결정 단계로의 진입 자체가 차단된다. 즉, 공식적인 직급과 실제 의사결정 권한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협상 대상은 이를 기준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투자에서의 협상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회사’ 단위에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협상에 참여하는 임직원은 형식적으로 회사를 대표한다. 특히 창업자 중심 조직에서는 개인과 조직이 높은 수준으로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표의 판단이 조직의 방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그러나 실무 협상 과정에서는 개인과 조직 간의 불일치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개인은 합의에 도달했으나 조직이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 또는 조직의 이해관계는 명확하나 해당 인력이 이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협상의 방향을 변경시키는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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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나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된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말이 통하고, 고개가 끄덕여지고, 상대는 이해한다고 말하고, 나는 설득되었다고 느낀다. 이때 하나의 질문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요번 바이오테크 딜에서였다. 창업자팀과 몇 차례 미팅을 거치며 분위기는 긍정적으로 형성되었다. 상대는 과학적 판단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우리는 그 확신이 근거 없는 오만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리스크에 대한 질문에도 회피가 없었고, 데이터가 부족한 부분은 명확히 인정했다. 몇 번의 논의 끝에 그는 말했다. “그 정도 조건이면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명확한 긍정 신호였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동일한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회사 역시 동일한 판단을 하고 있는가. 해당 케이스를 구조적으로 보면, 의사결정 주체는 단일하지 않았다. 초기 투자자, 공동 창업자, 그리고 공식 이사회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문 교수들까지. 창업자는 명확한 의사결정권자였지만, 동시에 복수 이해관계자의 균형 위에 서 있는 위치였다. 미팅을 시작하면서 몇 개의 조건에 대해서 창업팀과 토기 투자자들의 투자 조건이나 몇 가지 사항에 있어 얼라인되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조직 전체의 의사결정과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개인은 합의할 수 있다. 조직은 다르다. 여기에 더해, 에피소드를 단순화시키기 위해서 이야기에서는 제외했지만 우리 투자자 측에는 이번 라운드에 관심을 보이던 다른 투자자들 (다른 회사)까지 존재했다. 미팅룸에는 없었지만, 분명히 협상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이다. 투자자는 결국 수익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당연한 전제가 협상의 결과를 쉽게 뒤집는다. 시장 상황이 바뀌고, 다른 옵션이 생기고, 리스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순간, 방금 전까지의 합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합의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방 안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회사는 아직 설득되지 않았다. 협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질지 몰라도 투자는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 결정된다.


실무적으로 그리고 좀 더 단순하게 접근해 보자.

우리가 형체가 없는 회사와 형체가 있는 협상의 당사자를 혼동할 수 있으니, 비교적 단순하고, 어쩌면 뉴욕이라는 소송의 도시에서 꽤 현실적으로 와닿는 예시가 하나 있다.

“변호사의 ‘클라이언트’는 누구인가.”


Attorney-client privilege는 변호사와 클라이언트 간의 비밀 커뮤니케이션을 보호하는 원칙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하다. 누가 변호사를 고용했는지, 누가 비용을 지불하는지, 계약서에 클라이언트가 누구로 명시되어 있는지. 결국 변호사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에 따라 ‘클라이언트’, 그리고 그 보호의 대상이 결정된다.


만약 회사가 변호사를 고용했고, 계약도 회사가 체결하고, 비용도 회사가 지불했다면 원칙적으로 클라이언트는 회사다. 물론 예외는 있다. engagement letter에 내 이름이 클라이언트로 명시되어 있고, 변호사가 “James 개인”을 대리한다고 명확히 한 경우. 즉, 회사는 단지 비용만 부담하는 구조라면 다르게 볼 여지는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변호사는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회사를 대리합니다. 당신 개인을 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Upjohn warning이다.


이게 왜 중요할까.
이 사람 좋은 변호사는 분명 나와 대화를 하고 있고, 나는 이 사람이 나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세상 모든 것에서 자기만 믿으면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 나를 도와줄 것 같은 못소리와 몸짓 그리고 신뢰를 준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은 나를 포함하는 더 큰 원, 즉 ‘회사’라는 다른 원을 지키고 있을 수 있다. 벤다이어그램을 예를 들면 겹쳐 있지만, 완전히 동일한 집합이 아닌 대상을 클라이언트라고 상정하고, 그 대화의 창구로서 나를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처음이라면 이 간극을 놓치기 쉽다. 협상에서도 비슷한 착각이 자주 발생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Upjohn Co. v. United States의 핵심은 이렇다. 회사 변호사가 법률 자문을 위해 직원에게 업무 관련 사실을 묻고, 그 답을 받아 기록했다면 그 커뮤니케이션은 attorney-client privilege로 보호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직원도 보호받는 거 아닌가?”


그런데 중요한 건 다음이다. 보호받는다는 것과 직원 개인의 권리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Privilege는 직원 개인의 것이 아니다. Privilege의 소유자는 회사다.

즉, 직원이 변호사와 나눈 대화는 회사 이익과 관련된 범위에서 보호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보호를 유지할지, 아니면 포기할지는 회사가 결정한다. 직원은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해도 이를 막을 수 없다.

같은 맥락을 조금 더 단순하게 풀어보면 이렇다.


회사 = 집주인
직원 = 세입자
변호사 = 집주인의 변호사

이 상황에서 직원이 집주인의 변호사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다면, 그 대화는 보호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보호를 유지할지, 혹은 공개할지는 결국 집주인이 결정한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착각이 생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와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느끼기 쉽다. 대화가 잘 통하고, 공감이 형성되면 더 그렇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담당자는 회사가 아니다. 협상은 심리전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구조의 문제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연결되면 진전이 있다고 느끼지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하자면 계약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 위에서 체결된다.


테이블 위에서는 모두가 동의했지만 회의실 밖에서는 다른 힘이 작동할 수도 있다. 혹은 반대로, 테이블에서는 보이지 않던 요소가 마지막에 결정을 바꾸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종종 관계에 기대를 건다. 접대나 네트워킹을 통해 사람을 움직이면, 그 사람이 조직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완전히 틀린 접근은 아니다. 해외영업 101에 등장하는 중국의 관시(关系)나 중동의 Wasta (واسطة) 혹은 접대 등, 이름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사이의 관계에 기반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관계를 만들고, 신뢰를 쌓고, 대화의 온도를 낮추는 데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 사람이 내부에서 우리 쪽 논리를 한 번 더 검토하게 만들거나, 논의의 흐름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지점까지는 현실적인 작동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서 착각이 생긴다.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사실이 곧 조직의 의사결정이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는 의미로 생각되기 쉽다. 실제로는 개인은 의사결정 구조의 일부일 뿐이고, 최종 판단은 그 개인을 포함한 더 큰 조직 위에서 내려진다. 내부 이해관계, 기존 투자자, 시장 상황, 그리고 그 시점의 리스크 판단까지 모두 함께 작용한다. 물론 관계 형성이 의미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회사나 거래라는 시스템도 사람이 설계한 것이고 결국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도 마지막에 서명을 하는 것도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는 종종 간극을 사람의 문제로 이해하려 한다. 관계를 더 만들고, 신뢰를 더 쌓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과정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의사결정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장치라고 믿는 순간, 판단이 흐려진다. 개인이 움직인다고 해서 구조가 함께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명시적으로 구분해 두는 편이 낫다. 지금 내가 설득하고 있는 대상이 개인인지, 아니면 조직인지. 그리고 이 대화가 실제 의사결정 구조 어디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이걸 한 번 분리해서 보면, 관계가 잘 형성되고 있다는 신호와 실제 딜이 진전되고 있다는 신호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감정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이유로 확신을 앞당기지 않게 되고, 어느 지점에서 한 발 물러나야 하는지도 더 선명하게 보인다.


사람과 회사는 동일하지 않다. 내 앞의 담당자를 존중하되, 그가 서 있는 구조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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